출생부터 현재까지
1282년 만에 선출된 비유럽 출신 교황
아르헨티나의 이탈리아 이민가정에서 태어나…22세 예수회 입문
동성애자 차별 반대·교회 내 여성 역할 확대 강조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77)가 한국을 방문한다. 오는 14일 서울공항에 도착해 18일까지 대전과 서울 등을 순회하는 4박 5일의 방한 일정을 소화한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요한 바오로 2세의 1989년 방한 이후 25년 만이다. 한반도 평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교황의 역사적 방한에 국내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전 국민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탈리아 이민가정 5남매 중 맏이

 

교황 프란치스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 공식 홈페이지
교황 프란치스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 공식 홈페이지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 프란치스코는 시리아 출신 교황인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선출된 비유럽 출신 교황이자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첫 미주 출신,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교황의 아버지는 철도회사 회계원,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교황이 태어나기 전인 1929년 그의 가족은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왔는데, 1932년 대공황으로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아버지는 틈틈이 배달일을 하며 집안일을 돕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뜯어진 셔츠와 닳아빠진 바지로 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교황은 어린 시절 가족을 도와 중학교 때 양말공장에서 청소와 사무보조를 하고, 공업학교에 진학해 오전은 공장서 일하고 오후엔 학교에서 식품화학을 공부했다. 교황의 소박한 삶과 검소한 정신은 이때부터 자연스레 몸에 밴 것으로 전해진다.  

17세에 사제의 길 결심

평범했던 그가 신앙적 영감을 얻은 것은 17세가 되던 1953년 봄이다. 친구들과 별다른 이유 없이 간 ‘산호세 데 플로레스’의 본당 교회에서 한 젊은 사제를 만나 고해성사를 하던 중 영적으로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종교적 소명과 깊은 영성을 느끼게 된 그는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비야 데보토의 신학교에 들어갔다. 사제의 길을 걷기로 하면서 당시 마음에 품고 있던 한 젊은 여성에게 청혼을 취소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22세이던 1958년 예수회에 입문한 후 1963년 산미겔의 성 요셉 신학교에서 철학사 학위를 받았다. 1964~1966년 산타페 인마쿨라다대학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엘살바도르 대학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가르쳤다. 1967~1970년 성 요셉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2년여의 수련 과정을 거쳐 1973년 종신서원을 했다. 

199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주교, 이듬해 안토니오 콰라시노 추기경의 후임으로 대교구장이 됐다.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됐고,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아르헨티나 주교회 의장을 역임했다. 교황청에서 경신성사성, 성직자성, 수도회성, 가정평의회, 라틴아메리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최초 남미 출신 가톨릭 지도자 

지난해 3월 13일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제266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으로 선출됐다. 공식 교황명인 ‘프란치스코’는 이전에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명칭으로 청빈, 겸손, 소박함의 대명사인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삶을 따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가 된 후 주교관 대신 작은 아파트에서 지내며 시내버스로 출근하고 음식을 직접 해 먹는 등 청빈하고 겸손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 프란치스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 공식 홈페이지
교황 프란치스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 공식 홈페이지
소박하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삶은 교황이 된 이후에도 유지됐다. 과거 전임자들이 사도 궁전에 거주했던 데 반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녀 마르타 호텔을 자신의 거주지로 선택했다. 지난해 3월 19일 교황 즉위식 당시에는 다른 전임 교황과 달리 검은색 구두와 철제 십자가 목걸이, 화려한 장식이 없는 흰색 수단을 입어 화제를 모았다. 

남미 출신 답게 그는 탱고의 역사와 가수 이름을 줄줄이 욀 정도로 탱고를 좋아한다. 아르헨티나 프로축구 리그 ‘산 로렌조’의 클럽 회원으로 열렬한 축구 팬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립을 지키기 위해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경기가 있던 2014 브라질월드컵 결승전은 관람하지 않았다.  

동성애자·미혼모 포용

종교 전문가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교리에는 보수적이나 사회문제에는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낙태, 피임, 동성애, 안락사 등에 대해선 가톨릭교회의 보수적 신학관을 고수한다. 하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미혼모 세례 거부 등에 대해선 비판하며 교회 내에서 여성의 역할 확대를 강조해 왔다. 미혼모 자녀의 세례를 거부하는 사제들에게 “사람들과 구원의 길 사이를 갈라놓는 위선자들”이라고 질책한 바 있다. 

더불어 사회적 소수자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관용을 촉구하고 신자유주의시대 양극화와 빈익빈 부익부 등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거침 없이 비판을 해왔다. 2014년 3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50인 중 1위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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