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서 돌아온 남자 노래만 있고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노래는 90년대 돼서야 등장

 

광복의 기쁨은 남녀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대중가요에서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은 그리 평등하지 않다. 사진은 지난해 광복절을 맞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행진을 하고 있는 시민들. ⓒ뉴시스·여성신문
광복의 기쁨은 남녀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대중가요에서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은 그리 평등하지 않다. 사진은 지난해 광복절을 맞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행진을 하고 있는 시민들. ⓒ뉴시스·여성신문

해마다 맞는 8월이고 광복절이지만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채 일본은 재무장을 했다. 이런 답답한 해에 다시 8월을 맞는 기분은 아주 복잡하다. 일제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광복의 기쁨이야 남녀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대중가요에서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과 시기를 꼼꼼히 살펴보면 그리 평등해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시대적 배경이 광복 직후임을 알리기 위한 음악으로 자주 쓰는 ‘귀국선’만 해도 그렇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울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이인권 ‘귀국선’ 1절(손로원 작사·이재호 작곡, 1949)

광복 직후에 일본이나 동남아시아에 있던 한국인들이 귀국선을 타고 돌아오는 모습을 눈에 선하게 그린 노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노래가 나온 것은 광복 직후가 아닌 1949년, 즉 무려 4년이 지나고 나서다. 일차적으로는 음반산업의 조건이 크게 작용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에는 음반회사가 없었으므로, 그때의 모든 조선어 노래 음반은 다 일본 음반이었다. 광복이 되자 한국에는 음반을 생산할 시설도 재료도 없어, 몇 년 동안 생산이 거의 끊어져버렸고, 어렵사리 다시 생산을 하게 된 것이 1948년 즈음이었다. 한편으로 단독정부가 수립되면서 월북할 사람들은 대충 사라진 이후였고, 대중가요 종사자들이 어떤 색깔의 노래를 내놓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감을 잡은 시기이기도 하다. 

바로 이때 ‘귀국선’이나 ‘고향만리’ 같은, 광복의 기쁨이나 귀국의 감격을 노래한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나오는데, 하나같이 이들은 일제 말을 고생스레 겪은 남자들의 목소리다.

1. 남쪽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눈에 익은 너의 모습 꿈속에 보면/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바닷가 저 편에/ 고향산천 가는 길이 고향산천 가는 길이/ 절로 보이네

2. 보르네오 깊은 밤에 우는 저 새는/ 이역 땅에 홀로 남은 외로운 몸이/ 알아주어 우는 거냐 몰라서 우느냐/ 기다리는 가슴속엔 기다리는 가슴속엔/ 고동이 운다

                         현인 ‘고향만리’(유호 작사·박시춘 작곡, 1949)

이 노래는 그냥 흔한 고향 노래로 받아들여지는 감이 있지만, 사실 동남아시아에 징병 나갔던 군인의 귀국 이야기다. 화자가 있는 곳은 ‘보르네오’ ‘이역 땅’, 한반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십자성’을 볼 수 있는 ‘남쪽 나라’다. 이 남자는 전쟁이 끝나 귀국할 배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역 땅에 홀로 남은 외로운 몸’이라 노래한다.  

해방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귀국하지 못한 채 낯선 땅에서 살거나 죽었다. 혹은 돌아오는 도중에 죽기도 했다. 나의 아버지는 북만주로 징병을 나가, 해방 이후 걸어서 서울까지 귀환했고, 일본에 노동자로 가 있던 시아버지의 가족은 배를 얻어 타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모두 운 좋은 분들이었다. 이런 분들에게 ‘고향만리’는 얼마나 가슴 절절한 노래였을까 싶다. 

그러나 대중가요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돌아오지 못한 ‘여자들’에 대해서는 노래하지 않았다. 성노예나 다름없었던 이른바 ‘위안부’에 대한 노래가 나온 것은 20세기가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하긴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수평선 해거름 지는 사이판에 가면/ 자살절벽 있다지 봉숭아 물든 조선 처녀들/ 꽃잎처럼 몸 던진 자살절벽 있다지/ 눈부신 햇살 번지는 사이판에 가면/ 신혼부부 있다지 밀월여행 즐기는 아담과 이브/ 밤이 오면 무르익는 사랑노래 있다지/ 잡초 크게 웃자란 절벽에선 지금도/ 처녀들 신음소리 바람에 실려오고/ 한국인 위령탑엔 갈 곳 없는 고혼들/ 떠돌고 있다지 맴돌고 있다지/ 낭만의 섬 낙원의 섬 사이판에 가면/ 전설 같은 정신대 조선 처녀들 남긴 아리랑/ 아라리오 부르는 원주민들 있다지/ 아라리오 기억하는 원주민들 있다지

                    이지상 ‘사이판에 가면’(민병일 작시·이지상 작곡, 1998)

1990년대는 한창 사이판이 새로운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얻던 때였다. 신혼여행지와 자살 절벽, 신혼부부와 위안부로 끌려온 조선 처녀들을 대비시킨 이 노래는, 흥분하지 않고 아주 차분하고 잔잔한 톤으로 우리의 무관심을 일깨운다. 

그런데 이렇게 뒤늦게 나온 이 노래는, 그나마 민중가요 출신 언더그라운드 자작곡 가수의 것이다. 당대 최고의 가수 현인이 1940년대가 가기 전에 ‘고향만리’로 남성들의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기억했던 것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1992년에 시작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아직도 계속될 수밖에 없음은, 이들 노래에서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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