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포르노그래피에 여성 주체적 시선 조명
조의 공허함·외로움, 우리의 모습과 닮아

 

여자 색정광을 뜻하는 ‘님포 매니악’은 평생을 오르가즘만 원하는 여성 조가 성을 매개로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 남성에게 들러주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사진은 어린 조(스테이시 마틴). ⓒ엣나인필름
여자 색정광을 뜻하는 ‘님포 매니악’은 평생을 오르가즘만 원하는 여성 조가 성을 매개로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 남성에게 들러주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사진은 어린 조(스테이시 마틴). ⓒ엣나인필름

여기, 이미 두 살 때 자신의 성기의 감각을 익힌 여자가 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단 하나. 오르가슴뿐. 첫사랑 남자에게 재빨리 순결을 내어 준 후, 기차에서 남자 꼬시기 내기를 했고, 직장을 다니면서 하루에 9명의 남자와 섹스하느라 다른 일은 꿈도 못 꿀 지경이었다. 그녀 조, 그녀는 여자 색정광이다.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곧바로 병원에서 섹스할 남자를 찾는다. 오직 평생 오르가슴을 찾아 헤매는 그녀에겐 이성도 도덕도 사랑도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자, 이 여자, 목숨 같은 오르가슴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새 영화 ‘님포 매니악’의 주인공 조는 영화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여성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온몸이 멍투성이로 낯선 거리에 쓰러져 있던 조를 지나가던 행인 셀리그만이 구조해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천일야화처럼 조는 셀리그만에게 자신의 성적 편력을 이야기해 준다. 영화는 상영 내내  낚시, 다성악, 등반, 피보나치 수열 등등을 통해 그녀가 겪었던 모든 성을 은유적으로 시각화한다. 그녀의 이야기마다 조악한 낚싯대, 파이프오르간 등의 장면을 끼워 넣고, 조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셀리그만의 주석과 해석을 덧붙인다. 

사실 조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Joe)라는 이름조차 지저스(Jesus·예수)의 여성화된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가 막상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자 오르가슴을 잃고 괴로워하는 장면은 마치 자신의 신성성을 잃고 헤매는 예수의 수난사를 보는 것 같다. 조는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지만 결국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눈이 오는 날 아이가 베란다에서 부모를 기다리는 장면은 영화가 명백히 전작 ‘안티 크라이스트’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에는 인간의 원죄를 상징화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영화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식의 성을 아우른다. 사도마조히즘, 동성애, 소아성애를 그대로 화면에 옮긴다면 영화는 포르노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포르노의 연출 방식을 뒤집어 거꾸로 인간의 특정 제도와 개념을 사색하게 만든다. 사실 조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만이 제롬이라는 의미 있는 이름을 지녔고, 나머지 남자들은 다 알파벳으로 불린다. 즉, 이 영화에서 제롬을 제외한 남자들은 완벽한 타자이자 대상일 뿐이다. 

 

여자 색정광을 뜻하는 ‘님포 매니악’은 평생을 오르가즘만 원하는 여성 조가 성을 매개로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 남성에게 들러주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사진은 조(샤를로트 갱스부르)가 길 거리에서 자신을 구해준 남성 셀리그만(스텔란 스카스가드)에게 이야기 하는 영화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여자 색정광을 뜻하는 ‘님포 매니악’은 평생을 오르가즘만 원하는 여성 조가 성을 매개로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 남성에게 들러주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사진은 조(샤를로트 갱스부르)가 길 거리에서 자신을 구해준 남성 셀리그만(스텔란 스카스가드)에게 이야기 하는 영화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여성의 성기가 클로즈업 된 후 롤 샷으로 회전을 하면, 조의 눈과 병치되는 장면이다. 즉 이 영화에서 여성의 성기는 더 이상 감추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 라스 폰 트리에는 여성의 몸에 부착된 모든 금기를 투명하게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남성 위주의 제도와 시선을 박살내고 엿 먹인다. 그래서 옷을 홀딱 벗고 조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흑인 남성의 성기 사이에 조가 끼여 있는 상태로 이들의 성기를 묵묵히 쳐다보는 장면은 기존 포르노그래피에 여성의 주체적인 시선을 끼워 넣은 의미 심장한 미장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조가 피학적인 성에 탐닉할수록 흥분대신 어떤 슬픔이 느껴진다. 조에게 새디즘을 행하는 남자가 폭력적이라서가 아니라, 여자에게 어떤 애정도 없기 때문에 피학적이라고 느껴진다. 세상 어디에서도 안식을 못 얻는 여자가 허리를 굽히고 매 맞는 장면에선 심지어 예수의 채찍질을 떠올리게 만든다. 결국 여자는 거울 속 소녀를 쳐다보고는, 성 중독자 모임에서 벌떡 일어서서 ‘내 추잡한 욕정을 사랑한다’고 선언한다. 

조는 평생 아주 단순한 그것, 오르가슴만을 원했다. 조는 성을 매개로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맨 일종의 여성 순례자다. 결국 그녀는 이름 모를 돌산의 정상에서 자신의 영혼을 상징하는 물푸레 나무를 찾아냈다. 샐리그만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 여자는 쓸쓸이 ‘석양이 좀 더 아름답길 바랐다’고 말한다. 조 역할의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스테이시 마틴(젊은 조 역할)은 영화 내내 벗고 또 벗고 또 벗지만, ‘내 모든 구멍을 메워달라’고 중얼거리는 이 여자의 ‘구멍’이 단지 성기에 국한돼 있는 것일까. 

여자는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섹스했고, 아들을 잃고도 섹스했다. 리비도와 타나토스를 합치시켜, 마음 깊숙이 뚫려버린 모든 구멍을 메우려 몸부림 치는 한 여자의 절규는 때론 유쾌하게, 때론 절절하게, 때론 도발적으로, 때론 슬픔으로 다가온다. 조는 그런 면에서 공허감과 외로움에 허덕이는 실존적인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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