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순례 중인 희생자 가족들
도보로 단원고에서 팽목항 거쳐 교황 방문하는 대전까지
새벽 4시. 7월의 한중간이라 어느 때보다 일찍 날이 밝을 때지만 아직 여명조차 없는 이른 새벽이다. 밤새 뒤척이다 결국 잠들기에 실패하고 일어나 성당 마당으로 나갔다. 벌써 몇몇 분들이 출발 채비를 하고 있다. 어젯밤 잠시 인사를 나눴던 승현이 아버지도 벌써 나와 계셨다. ‘잘 잤느냐’며 기자를 챙기는데 그렇게 묻는 당신은 정작 못 잔 것 같은 얼굴이다. 검게 그을려 수척해진 얼굴에 듬성듬성 턱을 덮고 있는 회색 수염이 피곤해 보였다. 3시 좀 넘어 깨서 나와 있다고 했다. 전날 30㎞를 걸은 육신에게 잠시 회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아버지’는 다시 길 위에 섰다.
7월 14일 세월호 유가족 ‘십자가 도보 순례단’의 순례 7일째. 연일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5㎏의 나무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깃발을 들고 하루 평균 20~25㎞를 걷는 강행군이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56)씨와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52)씨, 승현군의 누나 이아름(25)씨는 지난 8일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진도 팽목항을 거쳐 다시 대전까지 장장 약 800㎞에 이르는 도보 순례길에 올랐다. 아직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귀환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바라며 나선 길이다.
전날 숙소였던 세종시 전의면 읍내리 전의성당에서 승합차로 10여 분을 달려 전날 걷기를 마무리한 충남 공주시 정안천변 23번 국도에 내렸다. 신부님의 기도로 유가족 3명과 당일 순례단에 합류한 천주교 수사들과 성도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순례단 소식을 접하고 찾아온 시민들까지 15명 정도가 7일째 여정을 시작했다.
아버지 두 분이 맨 앞에 섰다. 목에는 승현이와 웅기의 사진을 걸고 어깨에는 십자가를 졌다. 두 아버지가 번갈아 메고 가는 130㎝길이의 나무 십자가에는 고통스런 표정의 예수의 형상과 단원고 아이들의 메시지가 적힌 노란 리본 수십 개가 묶여 있었다. “깃발은 동행하는 이들에게 맡겨도 이 십자가만은 아무에게도 못 맡긴다”며 맨몸으로 걷기에도 버거운 길을 두 아버지는 묵묵히 십자가를 메고 걸었다. “승현이와 웅기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다”는 아버지들에게 십자가는 천근의 무게지만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고 소망이었다. 이들은 8월 15일 대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해 이 십자가를 교황에게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아침도 거르고 3시간쯤 걷자 아침 안개가 걷히면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됐다. 뒤따라오는 기자에게 간간이 농담을 건네던 아버지들의 걸음도 느려졌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은 그나마 나았지만 국도를 따라 걸을 때는 아스팔트의 열기와 자동차 소음, 먼지가 순례단을 괴롭혔다. 경찰차가 따라오고 있었지만 차들이 속도를 내는 국도변을 걷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면 이 지역 성당 성도들이 시원한 배즙과 간식거리를 싸들고 찾아왔다. 직접 재배한 방울토마토를 가져오거나 순례단이 지나는 길에 차를 세워두고 기다렸다가 생수를 건네주며 응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