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구석구석 젠더정치’, 정치 안팎에서 ‘을’을 위해 달린다

 

7일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여성신문과 만나 젠더정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7일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여성신문과 만나 '젠더정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성신문 엄수아기자

지난 20년 진보 여성단체 살림살이 안에는 남윤인순(55)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있다. 그는 1989년 인천여성노동자회 창립멤버에서 2011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임기를 마칠 때까지 여성인권, 노동 정책의 한 축을 담당했다. ‘성평등 사회’란 삶의 주제를 따라가다 보니 여성운동가에서 여성정치인이 됐지만 국회의원의 삶도 이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6월 7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만난 남윤인순 의원은 "계층의 대변자가 아니라 가치의 대변자가 되고싶다"고 말했다. 하나의 범주로만 묶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여성들이 있듯 여성계 대표성을 가진 국회의원은 다양한 아젠다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인권, 노동, 보육, 교육, 가족 등 남윤 의원이 관심을 갖고 풀어내야 할 분야는 국회 상임위를 넘어선다. 새로 출간한 그의 책 제목은 그래서 '구석구석 젠더정치'다. 어느 한 구석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의지다.

국회의원이 된 2012년 첫해 유독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성폭력 사건이 많았다. 등교길 이웃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통영 어린이 성폭행 사건, 나주 7세 여아 성폭행 사건, 제주 올레길을 걷던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각 캠프는 성폭행 근절 정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남윤 의원 역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여성 정책을 담당했다. 국회는 여야공동으로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국회 아동여성대상성폭력대책특위가 그것이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인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과 여야 간사를 맡고 성폭력 관련 법안을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이 특위 활동으로 여성계가 오랫동안 폐지를 요구했던 '친고죄'가 폐지됐다. 혼자만의 노력은 아니지만 특위 야당 간사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가장 보람있었던 활동으로 꼽았다. 그는 "국회 특위에 대해 보통 '그냥 얘기만 하다 끝나는거 아니냐' 하는데 이 위원회는 입법권을 갖는 위원회였다"며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만 성폭력 범죄 수사가 개시되는 시스템이 바로 친고죄다.  친고죄는 반드시 폐지돼야 했다"고 말했다.

험악해진 여론으로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형량 강화, 약물치료, 신상공개 대상 확대 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남윤 의원은 성폭력 처벌 강화만으론 성폭력 사건이 줄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성폭력 예방체계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결과 친고죄 폐지, 성폭력 예방교육, 피해자 보호, 가해자에 대한 교화 강화, 지역사회 돌봄 체계 강화 등을 정책과제로 설정해서 법안을 마련했다. 이 특위에서만 성폭력 관련 법령 70여건 이상이 심사됐다. 그는 "법안은 마련됐지만 정부의 집행과정을 수시로 점검하고 주기적으로 평가해 입법 효과를 높이는 일이 남았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를 이끈 경험이 곳곳에서 배어나왔다.

 

남윤 의원의 새책 구석구석 젠더정치
남윤 의원의 새책 '구석구석 젠더정치' ⓒ남윤인순 의원실·해피스토리

남윤 의원을 오랫동안 알아온 이들은 그녀를 '철의 여인'이라고 부른다. 녹록치 않은 여성단체 여건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스스로 워킹맘으로 살아온 생활이 켜켜이 쌓였기에 가능했다. "결혼해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살림만 한 적이 없었다. 딸에게는 늘 일하는 엄마였죠. 늘 부족한 엄마"라는 말 속에 모든 일하는 엄마들의 마음이 녹아 있었다. 노동 운동을 하며 만난 남편 서주원 인천환경운동연합 대표의 내외조로 일과 가정은 그런대로 굴러갔지만 일·가정 양립은 그녀에게도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명절이나 제사 때 음식같은 건 서로 같이 만들었다. 딸 시각에서 보면 아빠는 바깥일, 엄마는 집안일 같은 고정관념은 없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남편 서씨는 책에서 남윤 의원에 대해 "눈물도 흘리고 갈등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따뜻하다"라고 적었다. 33년간 지켜봐 준 남편의 평이 따뜻하다. 

그의 책 '구석구석 젠더정치'는 '공감과 치유'를 강조한다. 따뜻함이 본질인 셈이다. 공감을 얻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리 좋은 법안이라도 해도 소용없다는 것, 제도 안의 '사람'을 보지 못하면 그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점에서다. 그는 "말로는 '사람 중심'을 얘기하지만 제도에 사람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제도,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빠트리지 말자는 것이 치유의 정치"라고 말했다. 그는 엄마들을 위한 보육정책을 낼 때 동시에 '보육교사의 처우개선'을 신경쓰고 있다. 노인 복지정책을 만들 때도 장기요양시설 근무자들까지도 염두에 놓는다. 장기요양보호사 대부분은 50대 여성이다. 그는 "노동의 질이 좋아져야 서비스 대상인 아이들과 노인들이 제대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래야 복지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윤 의원의 정치는 그래서 '을'을 위한 정치다. 정치는 기득권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면서 출발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당에서 '을지로위원회'가 생긴 것도 이런 뜻을 모은 것이다. 을지로의 '을(乙)'은 길, 법, 노력 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갑의 횡포로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을'들의 고통과 연대하고 피해를 구제하고 바로잡아 당연히 지녀야 할 사람다움을 살리자는 목표에서 시작됐다. 그는 "치유와 대안의 정치는 곧 약자를 위한 정치"라며 "제가 말하는 젠더정치는 여성만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젠더적 시각으로 계층을 대변하는 정치가 아닌 ‘가치’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고싶다"고 말했다. 

남윤인순 의원은...

1958년 인천 출생, 인일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입학했으나 민주화 운동으로 강제퇴학, 인천 부평에서 노동야학을 시작으로 노동운동, 1989년 인천여성노동자회 창립, 1994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2011년 상임대표 역임, 여성·시민정치 확산을 위해 ‘혁신과통합’ 상임대표로 활동, 현재 19대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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