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
예슬양 유작과 구두·옷 실물 제작 총 41점 전시

 

서울 종로구 서촌 갤러리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고(故) 박예슬 양의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박양이 유치원 때부터 최근까지 그린 40여 점의 작품들이 무기한 전시될 예정이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종로구 서촌 갤러리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고(故) 박예슬 양의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박양이 유치원 때부터 최근까지 그린 40여 점의 작품들이 무기한 전시될 예정이다. ⓒ뉴시스·여성신문

4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효자동 서촌갤러리에는 열여덟 소녀가 펼쳐놓고 떠난 흔적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교복에 책가방을 멘 여학생들부터 그 또래 딸아이를 뒀을 법한 학부모까지. 이들은 모두 디자이너를 꿈꿨던 단원고 2학년 3반 17번 고(故) 박예슬양의 유작들을 보며 그를 추억했다.

 

박양이 디자인한 구두 2점은 이겸비 구두 디자이너에 의해 실물로 제작됐다.
박양이 디자인한 구두 2점은 이겸비 구두 디자이너에 의해 실물로 제작됐다.

64.5㎡(19.5평)의 작은 전시 공간은 박양이 유치원 때 그린 가족 그림부터 사고 이틀 전 그린 정물화까지 41점으로 채워져 있었다. 박양이 디자인한 구두 2점과 남자친구와 입고 싶다며 그린 옷은 각각 이겸비 구두 디자이너와 김숙경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실물로 제작됐다. 

 

박양이 그린 남자친구와 함께 입고 싶었던 옷은 김숙경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실물로 제작됐다.
박양이 그린 남자친구와 함께 입고 싶었던 옷은 김숙경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실물로 제작됐다.

좋아하는 옷과 구두, 가방 등의 사진을 모아 붙인 작품에는 여고생의 풋풋한 느낌이 묻어나왔다. 세월호 참사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그녀는 스트릿 브랜드 최고경영자(CEO)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꿈꾸고, 배우 공유와 쇼트트랙 이정수 선수를 좋아하는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박양이 좋아하는 옷과 구두, 가방 등의 사진을 모아 붙인 작품에는 장래희망, 좋아하는 연예인,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등을 상세히 적어놓았다.
박양이 좋아하는 옷과 구두, 가방 등의 사진을 모아 붙인 작품에는 장래희망, 좋아하는 연예인,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등을 상세히 적어놓았다.

벽면 한쪽을 장식한 부엌 인테리어 역시 밝고 명랑했던 그의 흔적을 물씬 풍기게 했다. ‘도트무늬가 어울리는 커튼’ ‘따로 사지 않아도 되는 오븐’ ‘심심함을 채워주는 스티커’ ‘대리석으로 된 화이트 싱크대’ 등 그만이 만들 수 있는 부엌이었다. 

 

갤러리 벽면 한쪽에 걸린 박양이 그린 부엌 인테리어 도면. ‘도트무늬가 어울리는 커튼’ ‘따로 사지 않아도 되는 오븐’ ‘심심함을 채워주는 스티커’ ‘대리석으로 된 화이트 싱크대’ 등이 적혀 있다.
갤러리 벽면 한쪽에 걸린 박양이 그린 부엌 인테리어 도면. ‘도트무늬가 어울리는 커튼’ ‘따로 사지 않아도 되는 오븐’ ‘심심함을 채워주는 스티커’ ‘대리석으로 된 화이트 싱크대’ 등이 적혀 있다.

40여 점의 그림을 따라가는 동안 전시장 안에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며 물소리가 좋다고 웃는 박양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어 가수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 노래가 갤러리 안을 가득 채웠다. 눈물을 닦는 일부 관람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림 진짜 잘 그린다”며 감탄하는 남학생들의 말이 들려왔다. 꿈을 향해 전진하던 그는 영원히 잠들었지만, 작품을 통해 여전히 이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박양의 전시 작품은 유치원 때부터 최근까지 그린 40점의 작품들이며 무기한 전시될 예정이다.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박양의 전시 작품은 유치원 때부터 최근까지 그린 40점의 작품들이며 무기한 전시될 예정이다.

이날 갤러리에는 유독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배진선(16·수원 영신중)양은 “오늘 시험이 끝나서 친구들이 놀러가자고 했는데 여기에 오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았다”며 그림을 보고 울컥했다고 털어놨다. 최정린·권남희(18·경기여상)양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전시회 소식을 보고 왔다. 같은 분야 진출을 꿈꾸는 학생으로서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세월호 뉴스를 보며 화도 많이 나고 사람들이 벌써 잊은 것 같아 불편했는데, 이런 전시회를 통해 희생자들을 기억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 40-2번지 2층에 위치한 서촌갤러리에서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등학교 2학년 박예슬 양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갤러리 건물 모습. ⓒ여성신문 김소정 기자
서울 종로구 효자동 40-2번지 2층에 위치한 서촌갤러리에서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등학교 2학년 박예슬 양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갤러리 건물 모습. ⓒ여성신문 김소정 기자

유명희(가명·49)씨는 “재능 있는 아이들은 이렇게 전시회로나마 추모할 수 있지만 평범했던 아이들은 이름조차 잊히는 것 같고 부모들이 상처받을까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며 “잘 알려지지 못한 학생들도 국민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시는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말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기한 운영된다. 박양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도 세월호 침몰사고 100일째인 24일, KBS를 통해 방영된다고 한다. 부디 오래도록 그녀의 흔적이 살아 숨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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