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를 불러 모은 건 일본 정부의 명령이다”
“위안부를 불러 모은 건 일본 정부의 명령이다”
  • 김소정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8.01.08 09:36
  • 수정 2018-01-08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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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무대장치부터 고발적 메시지 강해…올 하반기부터 해외 순회공연
19년 만에 재공연…출연 인원 늘리고 일부 대사 강한 어조로 변경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한 장면.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한 장면. ⓒ극단 에루무(일본), '위안부 진실을 위한 문화예술 지식인 연대'(한국)

1991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긴 침묵을 깨고 마이크 앞에 섰을 때 세상은 발칵 뒤집어졌다. 그로부터 23년, 매주 수요일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들은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검증하며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일본의 원로 연극인 후지타 아사야 연출가가 ‘목숨 걸고’ 만들었다는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는 이런 일본 정부에 돌직구를 던진다. 95년 한국과 일본에서 초연돼 파장을 일으킨 이 연극이 19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시나리오와 기본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출연 인원을 늘리고, 변화된 상황에 맞춰 일부 대사를 강한 어조로 변경했다. 

고발성 짙은 무대장치는 관객들을 시작부터 압도한다. 무대 위 달려 있는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는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스러져간 조선의 소녀들을 상징하는 듯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극우 정치인들의 위안부 관련 망언을 보도한 한국과 일본 기사들이 확대돼 무대 뒤를 가득 채운다. “일본, 위안부 자료 불태웠다” “위안부 할머니가 거짓말 하고 있다” 등의 굵은 글씨로 쓰인 제목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한 장면.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한 장면. ⓒ극단 에루무(일본), '위안부 진실을 위한 문화예술 지식인 연대'(한국)

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4명. 북, 장구 등 타악기를 다루는 남녀 고수 2명과 일본인 기자, 주인공 영자다. 제목을 보고 ‘주인공이 왜 거짓말쟁이일까’라고 의아해하던 관객들은 곧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한평생 자신의 과거를 속이고 살아온 영자와, 그런 영자가 어렵게 털어놓은 진실을 꼬투리 잡으며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일본인 기자의 모습은 한국과 일본 사회 모두에 전하는 메시지가 크다. 초연에는 남자 고수가 일본인 기자 역을 병행했다면 이번엔 일본인 기자 1명을 단독 배역으로 설정했다. 진실을 외면하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꼬집는 듯하다. 

일본인 연출가가 작심한 듯 직설적이고 강렬한 어조의 대사가 이어진다. “너희들 불러 모은 것은 일본 정부의 명령이다” “천황을 위해 죽어간 조선삐(조선인 위안부를 부르던 호칭)한테는 누가 잘못했다고 비는 건데?” 등 일본이 외면하고 싶은 말들이 직격탄으로 쏟아진다. 일왕의 책임을 강조하는 대사는 이번 공연에 추가된 부분이다. “그놈들 우리가 죽는 것만 기다리고 있으니까, 죽어도 죽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줘야지. 일본으로 가자”는 현재 상황을 반영한 영자의 대사도 들어갔다.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에서 영자 역을 열연한 배우 박승태.
연극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에서 영자 역을 열연한 배우 박승태. ⓒ극단 에루무(일본), '위안부 진실을 위한 문화예술 지식인 연대'(한국)
 영자가 위안소에서 일본 군인에게 처음 당하는 장면을 붉은 조명으로 처리한 부분은 인상적이다. 피로 물든 빨간 저고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간 14살 소녀 영자부터 수십 년 한 많은 세월을 홀로 살아온 할머니 영자 모두를 표현해 낸 배우 박승태의 혼신의 연기는 감동을 자아낸다. 땀에 흥건한 저고리, 목 놓아 부르는 밀양아리랑은 긴 여운을 남긴다. 다만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 다닌 위안부를 뜻하는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고수한 부분은 아쉽다. 일본에선 현재까지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여전히 혼용되고 있다. ‘종군’이라는 용어 사용은 변경이 필요해 보인다.

차분하게 때로는 강하게, 일본군‘위안부’의 역사와 오늘을 들려주는 영자 할머니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전할 것이다. 국내 도시 순회 공연에 이어 올 하반기 중국을 시작으로 필리핀, 일본 등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으로 순회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 대학로 정미소극장에서 20일까지 공연된다(9, 16일 공연 쉼). 문의 070-406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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