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 직접 가보니
6월 19일 개관, 4만 명 이상 다녀가…일부 공간만 24시간 개방
1섹터 열람 까다로워…도서목록 안내·권독사 역할 강화 등 보완 필요
“인문학 강연, 음악회 함께 진행할 것”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사진은 방문객이 1섹터에 진열된 기증도서를 보고 있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사진은 방문객이 1섹터에 진열된 기증도서를 보고 있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0도 무더위의 평일 오후, 도시 냄새 물씬 풍기는 네모반듯한 회색 시멘트 재질의 건물을 통과하자 천장까지 솟아 있는 높이 8m의 거대한 종이 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있는 경기도 파주의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892㎡(270평)의 공간. 20만 권의 책으로 울창한 삼림을 이룬 ‘지혜의 숲’이다. 

지난 6월 19일 개관한 지혜의 숲은 국내외 학자와 지식인, 출판사, 유통사로부터 기증받은 책으로 조성됐다. 사서가 아닌 책을 권하는 권독사가 있고, 열람만 가능한 24시간 개방 도서관이다. 26곳의 학자‧지식인‧전문가 단체가 기증한 도서가 소장된 ‘지혜의 숲1’과 38곳의 국내 출판사와 유통사의 기증 도서 코너인 ‘지혜의 숲 2·3’으로 구성돼 있다. ‘지혜의 숲3’만 24시간 개방이고 1과 2섹터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섹터별 공간은 모두 연결돼 있다.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지혜의숲은 국내외 학자와 지식인, 출판사, 유통사로부터 기증받은 책으로 조성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지혜의숲은 국내외 학자와 지식인, 출판사, 유통사로부터 기증받은 책으로 조성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 서가에 눈에 익은 이름이 들어왔다. 대학 시절 수업을 들었던 한경구 교수(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가 기증한 약 3000권의 도서 들이 빼곡하게 있었다. 지혜의 숲1에는 석경징 서울대 영문학 명예교수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까지 문학·역사·철학·사회과학·자연과학·예술 분야 등 기증받은 다양한 분야의 도서들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빨간 네모 판에는 이름과 소속만 적혀 있을 뿐 도서목록은 없다. 출판도시문화재단은 기증 도서의 목록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열람이 쉽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 유진태 재일 사학자 코너에 있는 한국사회사연구회 논문집의 일본군‘위안부’ 정책의 본질이라는 논문을 읽기 시작하자 권독사가 다가와 열람을 제지했다. 1섹터의 책을 열람하려면 회원 가입이 필수이기 때문. 가입 절차는 안내데스크를 통해 바로 진행할 수 있지만 회원증이 나오는 데 1주일이 걸려 사실상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열람이 불가능하다. 도서관보다는 박물관 느낌이 강한 1섹터를 뒤로하고 곧장 2섹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사진은 2섹터에서 방문객들이 독서를 하고 있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사진은 2섹터에서 방문객들이 독서를 하고 있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혜의 숲2는 좁은 미로 같았던 앞선 공간과 상반된 느낌이다. 원두 볶는 소리가 들리고,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중년의 노부부가 책을 펼쳐놓고 수다를 떠는 광장의 풍경이 펼쳐졌다. 온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광장에는 그림 병풍들이 곳곳에 배치돼 다채로운 공간을 연출했다. 채광이 좋은 창가 자리에서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혜의 숲은 기존 도서관과 달리 도서 분류코드가 아닌 출판사별로 책이 진열돼 있어 읽고 싶은 책을 바로 찾을 수는 없다. 

5살 딸과 함께 온 오경남(36·경기 김포)씨도 검색이 안 되는 점을 단점으로 꼽았다. 오씨는 “아이에게 읽힐 만한 책이 있을까 찾아보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오게 됐다”며 “자유롭게 책을 꺼내 볼 수 있는 것은 좋지만 도서관처럼 검색 시스템이 안 돼 있는 부분은 아쉽다”고 말했다.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평일임에도 아이를 데리고 와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나 가족단위 방문객이 비교적 많이 눈에 띄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평일임에도 아이를 데리고 와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나 가족단위 방문객이 비교적 많이 눈에 띄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섹터에서 3섹터로 넘어가는 통로 왼쪽에는 테라스가 마련돼 있어 책을 읽다 바람을 쐴 수 있게 조성해 놨다. 김혜련 작가의 ‘책 속으로, 김혜련의 병풍놀이’라는 회화와 설치작품이 전시돼 있는 통로를 지나 3섹터로 향했다. 탁 트인 유리창 너머로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내부에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소파에 앉은 방문객들은 음악을 벗 삼아 깊은 상상 여행에 빠져들어 있었다. 잠에 취한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도서관보다는 숲속 한가운데 조성된 쉼터 느낌이랄까. 

3섹터 교보문고 기증도서 코너에서 만난 송은영(44·경기 파주)씨는 “다양한 책들이 많아 좋은 것 같다. 기존 도서관과 분위기가 달라 함께 온 12살 된 아이도 좋아한다”면서도 “어린이 도서 섹션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같이 오는 가족이 더 많을 텐데 어수선해질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3섹터 공간은 앞으로 인문학 강연과 음악회를 여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3섹터 공간은 앞으로 인문학 강연과 음악회를 여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실제 이날 만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어린이 도서코너가 따로 없어 불편하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지혜의 숲은 현재 2섹터 중앙출입구 쪽에 어린이책 별도 코너를 마련해 뒀다. 안내 표지판이 없어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 것 같다.  

권독사의 역할이 미약한 점도 보완해야 할 것이다. 출판도시문화재단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인으로부터 자원봉사 신청을 받아 기본 교육 이수 후 약 30명의 권독사를 현장에 투입했다. 최소 주 1회, 하루 4시간, 3개월 이상 활동을 기본으로 한다. 하루 3타임(오전 9시30분~오후 1시30분, 오후 1~5시, 오후 4시30분~8시30분)으로 운영된다. 권독사는 향후 100명까지 추가로 인원을 늘릴 계획이다.  

소효령 출판도시문화재단 지혜의숲 담당자는 “권독사는 방문객들에게 시설을 안내하고 개인 기증자의 연구 내용이나 장서 소개, 각 출판사 특징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계속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며 “기본적인 책 정리 작업은 기존 직원 3명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관 이후 ‘어린이 책잔치’가 같이 열려 최소 3~4만 명이 다녀갔다. 지난 주말 방문객은 4000명 정도다. 야간 개방하는 3섹터에는 밤 늦게 오셔서 새벽까지 작업하다 가는 분도 있고, 일을 마친 워킹맘들이 아이와 함께 책을 읽다 가는 경우도 있다”며 “도서관보다는 종합 문화공간 개념으로 봐달라. 다음 주부터 인문학 강연과 음악회도 진행할 것이다. 지혜의 숲을 통해 방문객들이 책을 가까이 하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지혜의숲은 국내외 학자와 지식인, 출판사, 유통사로부터 기증받은 책으로 조성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만권의 장서가 비치된 24시간 개방 도서관 ‘지혜의 숲’이 지난달 19일 개관했다. 지혜의숲은 국내외 학자와 지식인, 출판사, 유통사로부터 기증받은 책으로 조성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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