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랑주 VMD 연구소 대표
13년 근무 백화점 명품관 박차고 나와 재래시장 바꾸는 ‘미다스의 손’으로
남편과 1년간 전 세계 150여 개 시장 돌며 롱런 경영의 비밀 발견
“새로운 분야 개척은 타인의 불편함 들여다보면 돼”

 

이랑주 VMD 대표가 6월 27일 여성신문과 만났다. 이 대표는 “하려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것이라면 시간이 걸려도 분명 인정받을 것”이라며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신문 김소정 기자
이랑주 VMD 대표가 6월 27일 여성신문과 만났다. 이 대표는 “하려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것이라면 시간이 걸려도 분명 인정받을 것”이라며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신문 김소정 기자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행복하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하고 있는 절 발견했죠. 그런데 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선으로 진열하고, 홍시를 초록색 비닐봉지에 담았더니 매출이 오르고 할머니들 반응이 너무 좋은 거에요. 신나고 즐거웠어요. 그때 알았죠. 돈은 적게 벌더라도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걸요.”  

재래시장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는 이랑주(42) VMD 연구소 대표는 13년간 대형 백화점과 명품관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다 2006년 돌연 사표를 내고 시장으로 향했다. 작은 불편함이 발단이었다. “시장에서 먹기도 아까운 파프리카 과일이 신문지 위에 그냥 뒹구는거에요. 안타까웠어요. 상품 진열을 잘하면 더 잘 팔릴텐데. 할머니들을 대신해 제가 불편함을 해결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VMD(Visual Merchandising & Display)는 인테리어와 디스플레이 등 매장 환경을 브랜드 콘셉트에 맞춰 꾸미는 것으로 2006년 이 대표가 연구소를 설립한 때부터 재래시장에 본격적으로 적용됐다. 그는 생선가게를 하던 친구의 점포부터 시작해 3년간 무료로 시장 점포를 바꿔주며 VMD 알리기에 주력했다. 이 대표의 손을 거쳐 간 가게의 매출이 오르며 죽어있던 재래시장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과거 진열 방식을 고수했던 상인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이제는 바꿔달라는 요청이 더 많이 들어온다. 

“지난해 설립한 ‘한국VMD협동조합’ 식구들과 강원도 봉평시장의 간판에 사장님 얼굴을 넣어드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처음에 외면하던 상인들도 나중에는 우리를 잡아끌며 솥밥에 김치올려 먹고 가라고 할 정도로 친해졌어요. 감동이었죠.” 강원도 오일장인 봉평장은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이 이 대표에 제안해 함께 진행한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의 첫번째 대상이다. 그는 최근 성남시와 함께 스타점포 발굴사업 39개를 선정해 매장 전체를 컨설팅해주는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 대표는 2012년부터 1년간 세계일주를 다녀왔다. 남편과 함께 40개국 150여 개의 재래시장과 4000여개의 소상공인 점포를 둘러본 그는 당시의 경험을 담은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이라는 책을 지난 4월 출간했다. “한계를 느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살아남지 못하는 시장이 있었죠. 고민하다 해외로 나가보자는 생각에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떠났어요. 신랑은 잘 다니던 대기업에 사표를 냈는데 시어머니 반대가 엄청 심했어요.” 

 

이랑주 VMD 대표가 6월 27일 여성신문과 만났다. 포항 구룡포 시골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로 자란 이 대표는 절박감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간절함이 있으면 힘든 상황에서도 뭐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여성신문 김소정 기자
이랑주 VMD 대표가 6월 27일 여성신문과 만났다. 포항 구룡포 시골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로 자란 이 대표는 절박감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간절함이 있으면 힘든 상황에서도 뭐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여성신문 김소정 기자

1년의 시간은 큰 자양분이 됐다. 인도에서 시작된 시장 여행은 유럽을 거쳐 미국과 중남미로 이어졌다. 매장 인테리어나 상품 진열, 마케팅에 집중해 보던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중요한 것은 외관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리필을 하면 돈을 더 받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맛있게 마셔준 데 대한 보답으로 고객에게 50센트 동전을 주는 핀란드 헬싱키의 ‘레가타’라는 까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봉평장의 얼굴을 그려넣은 간판은 영국 런던의 버로우 마켓에서 벤치마킹했다.

포항 구룡포 시골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로 자란 이 대표는 절박감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통조림 공장을 다니던 어머니와 어부 일을 하는 아버지가 새벽 5시 일어나면 같이 밥을 먹고 직접 도시락을 싸 학교에 가곤 했다. 자립심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대에 진학한 그는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모두 자신이 번 돈으로 마쳤다. 그는 “비빌 언덕이 없으니 힘든 상황에서도 다 하게 되더라”며 밝게 웃었다. “생활력 강한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지금도 자식들한테 용돈도 받지 않고 오징어 말리고 나물 다듬어 팔면서 사세요. 금지옥엽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보다 본인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이 대표는 최근 남편과 함께 살 시골집을 알아보고 있다. 40대 중반 넘어가면 일을 줄이고 마당 있는 집에서 개를 키우면서 사는 것이 꿈이었다고. 솔직한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 “청년들이 찾아와 진로에 대해 조언해달라고 하면 그냥 좋아하는 일 하라고 해요. 직장 왜 들어가요. 한번 뿐인 인생인데. 스펙 쌓지 마세요. 하려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것이라면 시간이 걸려도 분명 인정받을 거예요. 기적은 발끝에서 일어나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면 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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