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 최초 미 연방대법원 세 번째 여성 판사 ‘소니아 소토마요르’
가난과 차별·소아당뇨 딛고 아메리칸 드림 실현

 

‘소니아 소토마요르’ 안토니아 펠릭스 지음, 세리프 펴냄. ⓒ웬즈데이
‘소니아 소토마요르’ 안토니아 펠릭스 지음, 세리프 펴냄. ⓒ웬즈데이
 

여성 전기작가인 안토니아 펠릭스의 신간 ‘소니아 소토마요르’에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한 여성의 삶이 펼쳐진다. 2009년 5월 26일 미국의 세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이자 히스패닉 최초 대법관이 된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대법관 지명 기자회견에서 어머니가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고백한다.

“어머니는 저와 남동생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저는 자주 말합니다. 어머니가 계셨기에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다고. 저는 어머니 그릇의 절반도 안 되는 사람입니다.” 

백발 곱슬머리에 푸른색 정장을 입고 앞줄에 앉아 있던 어머니 셀리나 바에스 소토마요르는 17살이던 1944년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푸에르토리코에서 건너온 이민 1세대다. 남편을 여의고 간호조무사로 홀로 두 자녀를 키운 싱글맘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콘돌리자 라이스’와 ‘로라: 미국의 영부인’ 등 15권 이상 논픽션을 집필한 저자는 소니아 소토마요르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수십 명의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뉴욕 빈민가 브롱크스에서 자란 푸에르토리코계 소녀가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법조인으로 인정받는 연방대법관이 됐는지 보여준다.

 

사진=소니아 소토마요르 페이스북.
사진=소니아 소토마요르 페이스북.
 소토마요르는 아버지의 죽음과 소아당뇨 등 어린 시절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에 굴복하지 않았다. 탐정소설과 TV 드라마를 보며 법관의 꿈을 키운 그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미국 명문 프린스턴과 예일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맨해튼 검찰청에서 법조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소수 인종과 여성으로서의 차별적 경험은 오늘날의 그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소토마요르는 대학 시절 소수민족 학생들을 모아 불공정한 처사의 개선을 학교와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했고, 로스쿨 시절엔 유명 로펌과의 면접에서 인종차별적인 질문을 받자 과감히 공개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일부러 바지 정장을 입으며 남성 위주의 보수적인 법조계에 맞서기도 했다. 대법관 지명 후 상원 청문회를 준비하는 기간에도 일부는 소토마요르의 경력을 능력이 아닌 소수 집단 우대 정책의 산물로 깎아내렸지만 그는 고비를 지혜롭게 넘겼다. 

111번째 미 연방대법원 판사이자 220년 대법원 역사에서 세 번째 여성 판사, 그리고 최초 히스패닉 판사에 오르기까지 그가 경험한 무수한 유리천장은 한국 사회에도 전하는 메시지가 크다. 어머니를 롤모델로 삼아 외로운 도전을 했던 그는 이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의 롤 모델이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역사적인 지명 발표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니아 소토마요르가 대리석 계단을 밟고 올라가 미국의 최고 법원 판사석에 앉을 때 미국은 대법원 입구에 새겨진 ‘법 앞의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또 다른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여성을 포함한 이 시대 소수자의 권리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그의 힘찬 걸음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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