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이며 포토제닉한 외모…
허위 사실 유포한 기자 실형 살게 하고
촬영 불허한 루브르박물관 감시관 설득한 강단

 

 

영화 ‘순애보(1968, 감독 김수용)’에 출연한 배우 윤정희(위)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cialis manufacturer coupon open cialis online coupon
영화 ‘순애보(1968, 감독 김수용)’에 출연한 배우 윤정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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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윤정희의 본명은 손미자. “누가 지은 예명인가요?” 1967년 여름, 나는 지프 뒷자리에 그와 나란히 앉아 ‘안개’를 촬영하러 가는 길에 물었다. 그녀는 읽던 책에서 눈을 떼며, “제가 지었는데요. 조용히 살고 싶어요.” 책에는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조용히 산다는 것과 여배우의 길은 어쩌면 다른 것인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윤정희는 ‘청춘극장’(감독 강대진)으로 데뷔했지만 두 번째 작품이라 아직 신인배우의 연기력밖에 없어 ‘안개’의 세련된 현대 여성을 힘들게 소화했다. 그러나 지적이며 포토제닉한 얼굴과 선천적 감수성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한국 현대영화의 효시처럼 ‘안개’를 말하게 된다. 그래서 제14회 아세아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도쿄에서 기립 박수를 받았다.

윤정희와 감독은 그 후에도 같은 계열의 ‘야행’ ‘화려한 외출’을 만들었고, 후자는 1977년 칸 영화제에 출품된다. 그러나 필름 수송이 늦어 영화제가 끝난 다음 날 현지에 도착해 우리들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때 파리에 유학 중이던 윤정희는 한국대사관 강당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 영화의 시사를 함으로써 직성을 풀었다. 

아름다운 여배우일수록 스캔들의 공세가 심하다. 윤정희도 예외가 아니어서 동생이냐 딸이냐를 놓고 어떤 신문사 기자와 오랫동안 싸우다가 결국 기자가 실형을 받고 끝장을 봤는데, 한때 요상한 소문이 떠돈 일도 있다. 높은 사람과 관계를 맺어 그 부인이 분노한 끝에 프랑스로 다음 날 추방했다는 루머는 터무니없다. 윤정희는 유학 비자를 받기 위해 1년을 기다린 사람이다. 

1978년 나는 차범석 희곡 ‘화조’를 찍기 위해 프랑스로 갔다. 여성 화가 나혜석 이야기인데, 상대역 최린에 신영균이 출연했다. 그때는 백건우와 결혼하고 한껏 행복한 신부 윤정희, 그 어머니도 일행으로 함께했다. 우리는 승합차에 짐을 싣고 스위스, 이탈리아를 다니며 즐거운 촬영을 했다. 마지막으로 루브르 미술관을 갔을 때 난관에 부닥쳤다. 관내 촬영이 불가하다고 여기저기 써 붙어 있었고 감시원이 많았다. 우리는 촬영기를 분해해 코트 속에 감추고 입장해 화장실에서 조립했다. 그리고 요령껏 도둑 촬영을 감행했다. 그러다가 모나리자 앞에서 여감시원이 카메라를 막았다. 그때 윤정희가 나섰다. 두 사람의 불어는 불꽃이 튀었다. 끝내는 감시원이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우리는 그 사이에 촬영을 끝냈다.

 

 

영화 ‘화려한 외출(1977, 감독 김수용)’에 출연한 배우 윤정희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화려한 외출(1977, 감독 김수용)’에 출연한 배우 윤정희 ⓒ한국영상자료원

 

지금은 주거 환경이 향상됐다고 하는데, 그 무렵의 윤정희네 파리 집은 소박했다. 삐거덕거리는 나무 계단을 5층쯤 올라가 방 2개짜리 아파트였다. 방 하나에는 딸 진이가 아기 침대에 누워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백건우의 피아노가 모셔져 있었다. 세월이 흘러 30대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어 활동하고 있는 딸은 아빠 얼굴과 붕어빵이다.

1970년대 말 트로이카는 무너졌다. 문희와 남정임이 신랑을 찾아 영화계를 떠난 후 윤정희는 같이 싸울 상대가 없어지고 작품은 세 사람 분이 밀려왔지만 의욕은 떨어졌다. 유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작은 꿈이 꽃필 때’를 남해의 연대도에서 촬영했는데, 비자를 기다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밤마다 밤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윤정희가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백건우이다. 지금은 세계 각국으로 연주여행에 분주한 남편의 매니저로 동분서주하지만 가끔은 서울 연주도 있어 만나게 된다. 무대 위에서 건반을 두드리던 백건우의 그 큰 손. 그 신의 손과 악수하며 우리는 한국 음식점에서 술도 마신다. 윤정희는 말한다. “글쎄, 백선생의 희망이 영화감독이었어요. 내가 음악 쪽으로 유도한 겁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백건우의 영화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이 연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함께합니다.>

윤정희

1944년 광주 출생. 중앙대 영화전공 석사, 파리 3대학 영화전공 학사·석사. 66년 합동영화사의 신인 모집에 당선되어 ‘청춘극장’으로 데뷔, 이후 7년 동안 300여 편의 영화에 출연. 청룡상, 대종상 등에서 여우주연상만 29번 수상. 73년 프랑스 유학, 76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 이후 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점차 잊히다가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에 주연으로 출연하고 칸 영화제에 초대되어 10분간 기립박수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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