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함 견디고 인내심 가져야”
‘사물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 필요
최고의 한복 장인 ‘침선장’의 삶을 다룬 드라마 ‘왔다! 장보리’(MBC 주말드라마)가 시청률 10%대를 유지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통 복식을 다루는 명인들의 삶과, 신분이 뒤바뀐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는 한국 대표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58)씨가 제작 지원을 맡고 있다. 극중 인간문화재 침선장 김수미(김용림), 송옥수(양미경), 김인화(김혜옥), 장보리(오연서)가 입는 한복은 모두 그가 지은 것이다. 휴일이던 지난 6일 어김없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사옥에 나와 한복을 짓고 있던 그를 만났다.
올해로 30년째 한복을 짓고 있는 그는 한복 장인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고독함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라고 말했다. “한복을 잘 짓기 위해선 엉덩이가 무거워야 해요(웃음). 빨간 날 쉬고는 한복 못 만들어요.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밤 11시예요. 항상 긴장하면서 살아야 하죠. 한복 짓는 전 과정을 전수하기 위해선 최소 10년이 걸려요. 그래서 바느질을 배우려는 후배들에게 ‘한복은 인내와 고독의 결과물’이라고 말해줘요. 그걸 견뎌야지 자신 있게 이름 내걸고 한복 만들 수 있는 거죠.”
이와 함께 한복 장인이 되기 위한 덕목으로 ‘사물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꼽았다. 작은 들꽃 하나를 보더라도 남달라야 한단다. 옷을 짓는 사람이므로 자신을 가꾸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극 중심에 한복 장인들이 나오기 때문에 애정이 남달라요. 출연 배우나 작가에게 조언을 많이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죠. 한번은 촬영장에 직접 나갔는데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유리씨나 김혜옥씨는 평소에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인데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 180도 다른 사람이 되더라고요. 이런 활동들이 30년 한길만 고집한 저한테는 ‘딴 세상’ 구경이라 흥미롭기도 해요.(웃음)”
그는 200여 벌의 개인 한복을 가지고 있다. 입지 않으면 언젠가는 박물관 옷이 되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공식석상에 설 때마다 본인이 직접 지은 한복을 갖춰 입는다.
“한복 세트에는 10개의 부속품이 따라가요. 기본적인 치마·저고리를 비롯해 속치마, 속바지, 버선, 버선고정끈, 버선집, 손가방, 한복 담는 케이스까지 포함되죠. 장인 한 명이 2주 동안 ‘올인’해야만 완성할 수 있어요. 바느질은 두 번 박음질 후 깔끔하게 마감하기 위해 세 번째는 말아 박아요. 비싸도 고급 한복을 찾는 고객들은 계속해서 오세요.”
주변에서 고급 한복을 대여해주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올 때 마다 그는 완강하게 반대한다. “한복은 우리의 전통문화예요. 한 번 입고 만다는 생각을 버려야죠. 경영자 입장에선 대여 사업을 해야 돈을 잘 벌 수 있지만, 저는 우리 전통을 이어가는 한복인입니다. 지킬 건 지켜야죠.”
그러나 불황의 여파로 결혼식 규모를 작게 하는 사람이 늘면서 한복을 찾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본인 세대까진 괜찮지만, 앞으론 한복만 만들어선 안 되겠다 싶어 후배들에겐 조각보나 이불 짓는 법도 가르친다.
“드라마 제작 지원을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요즘 한복을 입는 사람이 줄고 있어요. 우리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아름다운 한복이 나오면 입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겠죠. 한복이 예쁘다는 외국인은 많지만, 그들이 지갑을 열지는 않아요. 최근에는 미국 하버드대학원생들이 소문을 듣고 사옥을 찾았는데, 그들에겐 일종의 체험일 뿐이죠. 결국 한국인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한복을 입어야 우리 옷의 명맥을 이을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