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생활에 관한 젠더 판례는 어떤 게 있을까.

광복 후 국가의 기본질서와 운영원칙을 규정한 헌법은 1948년 제정될 때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성별 등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뿐 아니라 “혼인은 남녀동권을 기본으로 한다”는 조항도 두었다.

그러나 1954년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를 보호·양육하고 신분과 재산에 관한 법률행위를 대리하는 친권을 부모 중 아버지가 우선적으로나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한 법 조항은 사회의 생활 실태나 남녀 간의 교육 수준 등을 살펴볼 때 성별에 따라 차등을 둘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1958년 가부장적인 전통과 관습을 기반으로 가족법이 제정됐고 1961년 혼인에서의 남녀동권을 명시한 헌법 조항이 폐지됐다. 이에 따라 여성차별적인 의식과 관행, 제도, 판례, 정책은 유지됐다.

헌법의 평등 이념을 가족관계와 남녀관계에 구현하고 여성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많은 여성이 노력했고 그 결실로 1980년 헌법이 개정될 때 “혼인과 가정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조항(제36조 1항)이 신설됐다. 1987년의 개정 헌법은 이 조항에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그런데도 1992년 대법원은 종중은 공동 선조의 후손 중 남성을 종원으로 해 공동 선조의 분묘 수호와 제사, 종원 상호 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므로 여성은 종중원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가족관계 판례의 획기적인 변화는 1997년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비롯됐다. 헌법재판소는 성과 본이 같은 사람은 혼인을 할 수 없다고 한 동성동본 금혼조항이 충효 정신을 기반으로 한 농경 중심의 가부장적·신분적 계급사회에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기능해왔으나 자유와 평등을 근본 이념으로 하고 남녀평등의 관념이 정착되고 산업사회인 현대의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는 사회적 타당성 내지 합리성을 상실하고 헌법 제36조 1항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2000년에는 자녀의 국적을 아버지의 국적에 따르게 하거나 한국인 부와 외국인 모 사이의 자녀와 한국인 모와 외국인 부 사이의 자녀를 차별 취급하는 것은 헌법의 남녀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2003년에는 호적에 등재된 가족을 대표하는 호주의 지위는 남계혈통의 남성이 승계하고 여성은 남성이 가족이 없거나 호주를 포기할 때 호주가 될 수 있으며, 여성은 혼인하면 친가에서 제적되고 남편 호적에 등재되므로 외동딸이라도 결혼하면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호주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은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최고의 가치규범이므로 이에 어긋나는 어떠한 관습이나 전통은 유지될 수 없는데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해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고 남성 우월적 서열을 매기는 제도라고 평가한 것이다.

2005년 대법원은 1992년의 판결을 뒤엎고 종중원에 여성을 배제하는 종래의 관습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종중의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것인데 양성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변화된 우리나라 법질서에 맞지 않으므로 법적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부부 사이의 가정폭력에 관한 2009년과 2013년의 대법원 판결도 가정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해야 함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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