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창간 11주년을 맞아 사이버공간 안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각계각층 네티즌들이 축하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들의 목소리

를 통해 21세기 정보화·여성의 시대에 튼튼한 여성주의언론으로 성

장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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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광순/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운영위원, 홍명한의

원장

전기가 발명된 것은 불과 1백여 년 전이다. 컴퓨터가 개발된 것은

불과 30여 년, 그리고 일반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앉아서 세계를 돌

아볼 수 있게된 것은 불과 3년여. 지난 1세기 동안 지구촌 사람들은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왔다.

최근에 세계인구가 60억이 넘었다고 한다. 의복이나 식생활, 주거

양식 등 일상의 생활은

‘전통적인 것’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우습게도 절반의

인구, 30억 여성 중 대부분은 아직도 남존여비의 가부장적 전통 속

에 남겨져 있다. 세계의 여성들은 억압적 전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

지만 가부장제 속의 남성우월주의자들은 남녀의 ‘전통적 관계’가

깨지면 가정이 콩가루가 되고 국가가 무너진다고 두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친다.

첨단통신 속의 네티즌 중에도 ‘길들여진 남성우월주의자’들은 오

히려 익명성을 악용하여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차별적이고 야만적인

언설을 서슴지 않는다.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치는 남자, 전철에서

내 옆에 앉아있는 남자일지도 모르는 그들의 잔인한 폭력성에 나는

혀를 내두른다. 이런 사회 속에서 그대로 고개 숙이고 살 수는 없다.

부드러운 눈길을 마주하고 남녀노소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고 싶은

우리들 아닌가.

여성신문이 없었더라면 우리 한국여성들이 어떻게 서로 만날 수 있

었을 것인가, 어떻게 감히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었겠는가 가끔

생각한다... 여성신문사 사장님 이하 직원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여성신문 기자들의 선구자적 역할에 힘입어 부계

혈통제가 부모양계혈통제로 변화해야 ‘전통적인 여성차별’은 뿌리

뽑히게 된다고 믿는다. 함께 가자. 우리 내부의 편견과 저들의 편견

을 깨고 살 맛나는 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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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내선/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웹진 'DEW' 초대 편집장

인터넷에 글을 쓸 때는 두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스크롤바를 내리

며 ‘휘리릭’ 읽을 수 있게 할 것, 둘째, 눈에 띄는 디자인을 쓰되,

눈이 아프지 않도록 할 것이다.

당연한 말 같아도, 이 두 조건은 매체의 혁신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기존의 종이매체에서는 읽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

면 ‘뚫어지게’ 읽으면 됐다. 그게 그것인 디자인도 들어있는 내

용에 가려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가 오

면 모든게 달라진다. ‘남성적 문체’라 일컬어지는 무미건조한 문

체는 환영받을 수 없다. ‘남성적 디자인’으로 무장한 주먹구구식

편집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그러나 이젠 문학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여성적’ 글쓰기가 환영

을 받는다. 전기세, 전화세라면 벌벌 떠는 국민들이 ‘휘리릭’ 읽을

수 있는 문체가 필요하다. 깔끔한 디자인은 수많은 사이트에서 네티

즌의 발목을 잡는 미끼다. 여자들이 언론을 장악할 수밖에 없는 상

황이다. 이제 소수의 남기자들은 자기들끼리 클럽을 만들고, ‘남기

자 칼럼’을 쓰겠다고 편집장에게 애원할지 모른다.

하지만 걱정은 말자. 여자들이 언론을 장악하면 권언유착이니, 사이

비언론이니 하는 말은 사라질테니. 11년이나 된 여성신문이 그동안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던가. 이런저런 조건으로 볼 때 여성신문은

‘즐겨찾기’할 수밖에 없는 사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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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여성신문' 인터넷기자

대학 다닐 때 여성신문의 창간을 보며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일’이라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여성신문사에서 일하고 싶

다는 욕심도 가졌을 것이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여성신문과 다시 만난 건 인터넷을 통해서였

다. 끝도 없는 사이버공간에서 나는 여성신문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

덕택에 인터넷기자라는 화려한 직함까지 얻게 되었다. 명칭만 기자

지 하는 일은 기자와는 꽤 다르지만. ‘인터넷기자마당’은 직업과

성별과 계층에 상관 없이 누구나 직접 발언할 수 있는 여론의 장이

다. 흩어져 있는 개인들이지만 그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인터넷기자

마당으로 모이고 여성신문이란 매체로 뭉치면 커다란 사회개혁의 힘

이 된다. 인터넷기자마당은 사이버공간의 긍정성과 그것이 현실에

미치는 힘을 보여주는 훌륭한 본보기다. 진보적인 매체답게 일반 독

자들, 생활인들에게 아낌없이 언로를 열어준 여성신문에 새삼 고마

움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넷기자마당에 직

접 참여하라고 권하고 싶다.

여성이, 소수가, 비전문가들이 발언하는 사이버공간에 희망과 즐거

움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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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월간 'PC라인' 기자

21세기는 인터넷 세상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인터넷=남성들의 전

유물’이란 생각이 팽배해 있지만, 이미 인터넷에는 용기있는 여성

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전체 16%였던 여성 인터넷 이

용자들이 올해는 27%로 늘어났다는 조사결과가 그 증거다. 미국에

서는 이미 여성 인터넷 이용자들이 남성을 앞질렀다고 한다. 여성

이용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참으로 놀라운

성장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적으로나 기업에도 그렇지만, 인터넷은 특히 여성들에게는 역

사상 다시 오지 않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인터넷 자체가 평등

정신에 입각한 매체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라면, 앞으로 펼쳐질 인

터넷 비즈니스의 구매 세력인 여성에게 주어질 권리와 힘이 엄청날

것이란 것이 실질적인 이유다. 또한 인터넷은 지리적으로 구애를 받

지 않고 손쉽게 정보교류를 할 수 있다는 잇점 때문에 여성 정보의

중요한 자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성신문은 지난 11년 동안 가부장적인 남성 이데올로기가 지배하

는 우리 사회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다가오

는 21세기 인터넷 시대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여성신문’의 역할과

가치가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확실한 방향성,

맑고 투명한 정치의식, 소소하고도 자질구레한 보통 여성들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여성신문’이 가상공간에서도 여성정론지로서의 역

할을 제대로 수행해내길 바란다. 더불어 사이버 공간에서 여성 문제

를 공유하고, 여성 세력화를 이루려는 모임들의 구심점 역할도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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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응휘/ ‘평화마을’(PeaceNet) 사무처장

타자기와 전화기가 여성을 좀더 자유롭게 만들었느냐 아니면 오히

려 더 속박했느냐는 정보화와 관련된 고전적인 질문이 있다. 이러한

기술발달이 보다 많은 여성들에게 취업기회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

만 여성들이 보다 단순한 업무에 묶여 더 이상의 발전을 제약당했다

는 곱지않은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그 논박의 어느 입장에 서든지

간에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한가지 사실은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결과적으로 여성들의 잠재적 가능성의 실현과 결속에 플러스가 되었

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정보통신 네트워크는 극단적으로 개인

미디어의 가능성까지도 구현하고 있다. 소수집단이 별다른 어려움없

이 미디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 기쁜 소식이며 주

류미디어의 외면속에서 대안미디어 혹은 반미디어를 자처해온 여성

신문으로서도 반겨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자유가 곧 평등을 보장하

는 것이 아니듯이 수많은 자유로운 목소리속에서 진솔한 평등의 옥

석을 가리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무수한 빛깔로 채색된 자유로움의

향연속에서 평등을 꿋꿋이 지켜낼 뿐 아니라 자유로운 평등으로 거

듭나는 일이야 말로 새시대가 부과하는 가장 근원적인 도전일 것이

다.

새로운 세기는 사이버공간이라는 낯선 땅을 창조했지만 자본의 음

험한 흉계가 사이버공간을 방치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은 모양이다.

네티즌으로서의 시민권을 획득한 여성은 여성대로 일견 자유로운 듯

보이는 사이버공간에서 또다른 스토킹의 위협을 만나야 하고 네티즌

의 문턱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또다시 “대지의 저주받은 이들"의

운명으로 전락하는 악몽속에서 시달려야 한다. 바짝 줄어든 시공간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은 씨줄과 날줄로 몇겹씩 얽혀야 하고 지역과

대륙, 지구촌을 넘나들며 또다른 창조의 긴장을 겪어야 한다.

여성신문 또한 그러한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으리라 믿는다. 늘 그

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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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영란/ 캐나다 토론토대 과학기술사학과

박사과정, '남성의 과학을 넘어서' 공동 편저자

아직도 기존 언론매체들이 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의 일하는 모습을

외면하고, 성차별주의에 관한 소식을 희화화 또는 축소하고, ‘여

성’ 란을 주로 육아, 요리, 외모가꾸기 등에 국한하고 있습니다. 이

러한 현실 속에서, 여성신문은 여성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왔고 성

차별주의를 폭로하고 싸워왔고 여성들이 제시하는 비전을 담아왔습

니다.

11년 전 여성신문의 창간을 친구로부터 전해들었을 때 부끄럽게도

어렸던 저는 ‘과연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라는 회의를 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저의 우려는 여성신문의 의미나 중요성에 대한 의

심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척박하고 열악한, 그리고 변화를 강하게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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