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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달나라 딸세포', 아래 '두입술'

이제 여성운동은 어머니세대가 아닌 딸세대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혼보다는 독립에 대해, 모성보다는 주체적 성에 대해 더 많이 이

야기한다. 좀더 일상으로 내려앉고, 개개인 여성들의 내면으로 스며

든다. 여성자치언론 '두입술'과 여성주의 웹진 '달나라 딸세포'가 바

로 그런 차세대 여성운동가들. 이들은 지상과 사이버상에서 자기 목

소리를 낸다.

여성의 일상을 읽는다 ‘두입술’

98년 5월 창간준비호를 시작으로 1년에 두 번 '두입술'을 발간하는

연세대 여성자치언론모임. ‘두입술’은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스트

이리가레이의 글 “우리의 입술이 함께 말할 때”에서 따온 말로 불

편함과 부당함에 대해 다물고만 있던 두 입술을 열어 말함으로써 전

복적 일상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연세대 재학생들을 주독자층으로

하고 있지만, 각학교 총여학생회와 여성위원회 등 많은 젊은 여성운

동가들을 독자로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의 승인과 검열 아래

있어야 하는 동아리체제보다는, 자율적이고 좀더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자치모임을 고집한다. 자치모임은 불리한 점도 많다. 10대

총여학생회의 자치모임 활성화 공약으로 만들어졌다, 총여가 바뀌면

서 공간도, 지원도 없어 한때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의

경험이 자생력을 키워준 ‘약’이 됐다고. 이들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광고를 직접 뛰기도 한다.

현재 가장 어려운 건 ‘공간’문제. 기획과 편집을 할 수 있는 안

정적인 공간이 없어 주로 다른 동아리방이나 멤버의 집을 돌아가면

서 전전하고 있다. 그렇다고 열악함을 빙자한 ‘대충주의’는 없다.

2호를 만들 때는 미진한 기획을 3번이나 뒤집고, 이미 모두 나온 원

고들을 폐기하고 다시 발간할 정도로 무서운 철저함이 이들에겐 있

다.

'두입술'은 89학번부터 98학번까지 모여있다. ‘한번 두입술은 영원

한 두입술’로 졸업한 초창기 멤버를 포함해 13명이 참여하고 있다.

두입술의 초창기 멤버들은 연세대 안에서 여성운동 경험자들. 편집

장 이현옥(정외4) 씨도 마찬가지다. 1학년 성정치위원회 활동을 시

작, 들꽃모임 등에서 활동했다. 2-3년 여성운동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뭔가 다른 여성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97년

말부터 '두입술'을 준비한 것.

“여성운동도 고정된 틀 안의 몇 가지 이슈만을 중심으로 판에 박힌

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 틀에서 빠져나가는 주제들도 얘기하

고 싶었고, 자꾸만 묻혀 버리고 소외당하는 우리 자신한테 힘이 되

는 일들을 하고 싶었죠. 그게 일차적인 욕구였어요.”

기존 여성운동 시각에서 보면 너무 느슨하지 않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일상’과 ‘나’와 좀더 밀착된 얘기를 하겠다는 게 그들

의 취지라고 이현옥 씨는 말한다.

선배학번들과는 달리 97학번 이후부터는 여성운동 경험자들보다는

'두입술'을 보고 직접 자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성운동을 머리

속으로는 이해하지만 내 삶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맨날 그 소리’

라고 생각한 젊은 여성들에게 연애, 독립, 구두 등 일상 속의 주제를

가지고 쉽고, 위트있는 문체로 공감을 이끌어낸 것.

이제 4번째 책을 만드는 중이다. 그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자체

평가를 내린다. 대학내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많은 잡지들이 남발

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속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그에 비하면 '

두입술'은 어느 정도 안정기반이 마련됐다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 '

두입술'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작업이 딱딱하고 이론적인 글이 아닌,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생활이 녹아든 쉽고 대중적인

글이기를 바란다.

사이버에 여성주의 깃발을 꽂자 ‘달나라딸세포’

지난해 7월 탄생한 국내 최초 여성주의웹진 '달나라 딸세포'

(http://dalara.jinbo.net).

여성의 상징인 ‘달’, 그리고 ‘딸들의 정체성’을 가진 젊은 여성

들의 새로운 대안적 주체 찾기의 노력을 의미한다. 학교에서 회사에

서 고립되어 외롭게 억압을 감내하고 있을 젊은 여성들과 같이 얘기

하고 같이 싸울 수 있는 잡지를 만들겠다는 생각, 특히 남성 이용자

가 절대적으로 우위인 인터넷에서 여성들의 공간을 마련하고 깃발을

꽂자는 생각이었다.

처음 9명의‘딸세포’로 시작, ‘세포증식’으로 현재 운영진은 15

명. 엘리스, 샤오리, 동이, 목련, 별족, 신지, 헤마, 이난다, 신딸기, 성

은이, 승진이, 여니, 유니, 우오기, 야옹이(통신 아이디) 등이다.

서울대에서 여성운동을 주도하던 ‘관악여성모임연대’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97년 ‘여해그림’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웹진’만들기

에 착수, 이제는 서울대 출신뿐만 아니라 동국대, 이대, 명지대, 영상

원 출신 등 다양한 이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모두들 대학 졸업

후 직장이나 학업과 '달딸'을 병행하고 있다. 웹진에만 매달리는 것

보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일하면서 '달딸'을 병행하는 것이 오히려

더 발전적이라고. 1년에 서버 이용비 10만원 정도의 비용은 회원들

의 회비로 충당한다. 광고주들이 가끔 접근해 오지만 그들은 상업광

고를 거절한다. 돈이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

편집장 이가은(25) 씨에 의하면, 대부분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달

딸' 역시 처음엔 컴퓨터를 두려워했었다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우리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잡지발간

이라고 막상 결정했지만, 재정적인 문제가 너무 컸어요. 그래서 서버

를 빌리는 비용을 빼고는 거의 돈이 들지 않는 웹진을 만들자고 의

기투합하고 우선 컴퓨터 교육을 했죠.”

그나마 홈페이지를 만들 줄 아는 소수의 성원들과 주위사람 몇몇에

게 부탁해서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배워나갔다. 컴퓨터 네트워킹을

스스로 훈련하기 위하여 통신망인 ‘참세상’ 전자게시판에 방을 만

들어서 하루에 한 번 씩 들어가기 운동도 했다.

“사이버 여성운동은 그 공간이 사이버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기보다

는 그 곳에 여성들이 존재하고 그 여성들은 소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이가은 씨는 말한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여성들은 숫

적으로도 소수이지만, 서로 모이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 역

시 너무 협소하기 때문에 뿔뿔히 흩어진 채 남성중심적 공간들 안에

방치되어있다. 하지만 여성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사이버 상에서 여성운동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시공간을 초월해 다른 모임들과의 네트워크도 쉽고 좀더 나아가 국

제적인 네트워크도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잇점이 있단다.

웹진 '달딸'로 들어가면 호호아줌마에게 물어보는 즐거운 성생활,

TV부인, 달나라영화관, 순정만화평, 달딸미팅, 서평, 번역 등의 글을

만날 수 있다.

달딸과 두입술 연대로‘달과 입술’

“다양성이 존중되는 것이 강점인 여성운동이 여전히 ‘차이’보다

는 ‘같음’을 강조하는 것 같다. 현재 여성운동 공식에서 벗어나서

활동할 수 있는 좀더 다양한 운동, 그리고‘피해자’여성을 강조하

는 데서 이제는 ‘여성임을 긍정’하고, ‘희생’보다는 모두 ‘즐

거운’ 여성운동이 돼야 한다.”

기존 여성운동에 대해 두 팀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 작은 여성모임들이 많이 생겨

나고, 이들간의 활발한 연대가 이뤄지길 바란다.

현재 '달나라딸세포'와 '두입술'은 함께 모여 '달과 입술'(가제)이라

는 단행본을 준비중이다. '두입술'과 '달딸'이 각각 매체를 운영하면

서 경험하고 느낀 점, 90년대 이후 새로운 여성운동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책이다. 앞으로 '달과 입술'을 어떠한 모임으로 발전시켜나

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논의 중에 있지만, 젊은 여성들이 네트

워킹을 하고 그 안에서 기획력을 쌓아가는 모임이 되었으면 한다고

'달딸' 편집장 이가은 씨는 말한다.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두입술'도 웹진을 계획하고 있다. 웹진 활성

화로 경제적 해결도 모색하고, 기존 '두입술'의 감성을 가지고 여대

생 중심이 아닌, 좀더 대중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는 가끔씩 책크기도 달리해 ‘적나라한’ 어조의 특별호를

발간할 예정이다.

'달딸'은 꼭 웹진을 내기 위한 모임이 아닌 만큼 앞으로는 좀더 다

른 일들을 많이 해보고 싶단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축적한 기술들을

다른 여성모임들에 가르쳐 주거나 여성단체들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는 일들이다. 실제로 서울시립대에서 인터넷 강좌를 개최한 경험

도 있다. 또한 사이버 상에서 비슷한 여성모임들과 네트워크를 조직

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비용 때문에 좌절됐던 인쇄매체

발간의 꿈을 언젠가는 단행본이나 무크지 형태로 실현시키겠다고.

두 팀 모두 살아가면서 세상을 꾸준히 변화시키고, 삶 속에서 벌이

는 운동을 이야기한다. 80년대 운동권의 “운동을 접는다”는 말이

이들에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운동과 삶은 분리된 게 아니기 때문.

취직을 하거나 공부를 해도 계속 그들에게 여성의 삶과 운동은 지속

될 것이다.

'이김 정희 기자j hlee@womennews.co.kr'

'두입술·달딸'

'두입술'은 연세대 여성자치언론모임으로 출발, 98년 5월 여성주의문

화비평지 '두입술' 창간준비호를 발간한 후 반년간지로 지금까지 연

애, 독립, 구두 등의 주제로 한 3권의 책을 펴냈다.

(016-241-8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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