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撤收)’ 리더십의 한계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통해 여론조사와 당원투표를 각각 50%씩 반영하는 방식을 통해 기초선거 무(無)공천에 대한 최종 입장을 재결정키로 했다. 안 대표는 이날 “선거를 눈앞에 두고 무한정 논란만 계속할 수 없다. 당내에 여러 목소리가 존재하는 만큼 당내 결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제 원칙과 소신이 아무리 중요해도 국민과 당원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꿈쩍하지 않던 안 대표가 입장을 바꿔 ‘여론 재수렴’을 선택한 이유는 당내 강경파들의 무공천 방침에 대한 거센 반발 때문이다. 대선에서 무공천을 공약했던 문재인 의원마저 “상대방인 새누리당에서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민주당만 무공천을 할 경우 일방적 선거 결과가 우려된다”며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무공천 이슈’를 매개로 ‘안철수 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다른 야당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한 것도 큰 부담이었다. 심상정 원내 대표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기초정당공천제 폐지는 잘못된 특권을 내려놓는 정치개혁이 아니라 책임정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새 정치가 아니라 반정치”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회동 거절은 결정적 요인이 됐다. 안 대표는 이례적으로 지난 4일 청와대를 직접 방문해 기초선거 무공천을 포함한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대통령과의 회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박준우 정무수석은 “기초공천 폐지 사안은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할 사안이 아니고, 여당과 논의해야 할 사안이니 여야가 합의를 이뤄주기 바란다”며 박 대통령의 ‘회동 거부’ 입장을 밝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선 현장의 혼란을 묵살한 채 당 지도부가 무공천 방침을 강행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안철수 대표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고, 기존 입장을 뒤바꾸는 ‘무공천 철회’ 쪽으로 결론이 났다. 선거가 새누리당은 ‘공천’,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공천’이라는 두 개의 룰에 따라 치러지는 초유의 사태는 막았다. 투표용지에서 기호 2번이 부활한 것이다. 일단 무공천 철회로 당내 반발을 가라앉히고 일선에서의 혼란을 없애는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통합 신당 출범의 모태였던 무공천이 철회돼 안철수 리더십이 흔들리게 됐다. 안 대표의 ‘회군(回軍) 리더십’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게 됐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느닷없는 후보 사퇴,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해 놓고 민주당과의 합당, 정치생명을 걸고 지키겠다던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 등 정치적 고비고비마다 던진 승부수는 ‘철수’(撤收)였다. 미래로의 전진이 아니라 과거로의 철수가 돼버린 무공천 철회 결정은 많은 정치적 함의를 내포한다.

우선,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명분이 사라졌다. 국민과 당원에 의해 창당 명분이 부정됐다는 것은 한마디로 ‘안철수식 새 정치’가 거부됐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안 대표 신임투표의 성격을 갖는다. 안 대표는 8일 의견수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정치생명을 걸겠다” “무공천 철회가 이뤄지면 대표직을 내놓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셋째, 이번 지방선거의 중요한 프레임 중 하나인 ‘약속의 정치 대 거짓의 정치’ 프레임이 사라지게 됐다. 이를 대체해서 ‘독선 대 민주’라는 새로운 구도가 자리잡을 전망이다.

안철수 대표가 어떤 정치적 행보를 할지 예측할 때 종종 ‘안철수’ 이름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대선에서는 ‘안전하게 철수해서 안철수’라고 했는데 최근의 행보를 보면 ‘옛날의 철수가 아니라서 안철수’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