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키부츠’에 숨어 있는 정신

뉴욕 브로드웨이 알허시펠드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킨키부츠’(Kinky Boots)를 관람했다. 같은 이름의 영국 영화를 뮤지컬로 제작해 작년에 개봉한 작품이다. 이 뮤지컬은 작년 6월 ‘연극․뮤지컬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에서 작품상, 음악상 등 총 6개 부문에서 최다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1980년대 최고 팝스타이자 그래미상 수상자인 신디 로퍼가 작곡을 맡아 화제가 됐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해 가업인 신사화 공장을 물려받은 찰리가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연히 만난 드래그 퀸 쇼의 주연인 롤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무릎까지 올라오는 꼭 끼는 여장 남자용 ‘킨키부츠’를 만들어 공장을 되살린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뮤지컬 극장은 생각보다 협소했지만 열기는 대단했다. 배우들의 숨소리를 바로 느낄 정도로 생동감이 있었고 무대는 정말 화려했다. 단순히 움직이는 구조물을 활용해 순식간에 무대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발상과 기술은 참으로 놀라웠다. 필자는 이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뮤지컬 자체보다는 또 다른 묘한 느낌을 받았다.

우선, 아주 단순한 모티브라도 엄청난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뮤지컬은 노동자와 고용자 간의 관계와 여장 남자라는 성 소수자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상에서 차별과 무시를 받는 성 소수자들의 슬픈 이야기를 이렇게 공감을 일으키며 의미 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창조력에 놀라웠다.

둘째, 뮤지컬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아실현’이다. 킨키부츠는 단순한 부츠가 아니라 ‘진정한 나’의 상징이다. 주인공들은 그들 나름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세상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는 의지와 열정이 돋보였다. 이런 자아 실현 과정을 노래와 춤, 그리고 연기로 완벽하게 소화한 뮤지컬이기에 큰 감동을 줬다.

셋째, 미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상당한 문화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입추의 여지 없이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관객 90% 이상이 백인 중년 남녀들로 채워졌다. 사회적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사회적 약자보다는 사회 주류층이 훨씬 많이 즐긴다는 것이 일종의 아이러니로 다가왔다.

다만 뮤지컬이 끝난 후 배우들이 전원 무대에 올라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기부할 것을 홍보하는 장면을 보고 나도 모르게 “역시”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15세 이상 취업자 2507만 명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41.9%로 34개 회원국 중 29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여성 평균임금은 남성의 68%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3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남성 흡연율과 음주율은 감소한 반면, 여성 흡연율과 음주율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의 화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최근 폐막된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에서 양성평등을 위한 남성들의 목소리를 촉구하는 새 캠페인으로 ‘그녀를 위한 그’(He for She)를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새누리당은 최근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강남, 포항, 부산 사상구 등 6곳을 여성 우선공천지역으로 추가 확대하지 않고 대신 여성에게 자신이 얻은 득표의 10% 가산점제를 도입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정말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인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여성의 대표성을 확대해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이룩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무색할 정도다.

박 대통령이 최근 독일 드레스덴공대에서 ‘한반도 평화 통일구상’을 밝힌 것은 참으로 의미가 크다. 남북 간 인도적 문제 해결,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의 3대 제안과 이런 제안을 실현하기 위한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는 분명 ‘통일 대박’을 실현하기 위한 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이제 박 대통령은 통일만 대박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여성이 대박이다”는 믿음 속에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정치적 용단을 내리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