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베리아에서 평화 구축, 2011년 노벨평화상 수상

 

엘런 존슨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교육받은 여성으로 국제기구를 활용할 줄 아는 정치인이다. 대통령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전문가로서의 능력, 국제기구 활동 경험 덕분이다.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
엘런 존슨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교육받은 여성으로 국제기구를 활용할 줄 아는 정치인이다. 대통령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전문가로서의 능력, 국제기구 활동 경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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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여성신문

여성 대통령 혹은 여성 총리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유형은 서구의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나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에 속한다. 안정된 정당정치와 비교적 남녀평등한 문화를 배경으로 정치에 입문해 남성과 경쟁하면서 다양한 정치적 경험을 하고 남성 정치인들과 마찬가지의 경로를 거쳐 대통령 혹은 총리의 지위에 오른 여성들이다.

둘째 유형은 서남아시아의 여성 대통령 혹은 총리들이다. 일반적으로 서남아시아는 여성의 사회참여 혹은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고 남녀 불평등한 문화가 특징인데 이러한 국가들에서 오히려 많은 여성 최고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세계 최초의 여성 총리인 스리랑카의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라퉁가와 인도의 인디라 간디 전 총리,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방글라데시의 할레다 지아 전 총리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이들은 유명한 정치인 가문의 딸 혹은 부인으로 남편이나 아버지의 뒤를 이은 정치인이다.

다른 한 유형은 아프리카같이 정치적 변동이 심한 국가에서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으로 여성을 대통령 혹은 총리로 선택한 경우다. 코소보의 아티페테 야햐가 대통령, 라이베리아의 엘런 존슨설리프 대통령이 속한다. 정치변동이 심하거나 내전 혹은 전쟁에 시달린 국가에서 국민이 국가의 상처를 싸매고 치유해줄 새로운 리더십으로 여성을 택한 경우다. 엘런 존슨설리프 대통령은 내전으로 얼룩진 라이베리아에서 평화를 구축해온 공로로 201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라이베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유럽 국가들의 식민 통치를 경험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로 19세기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두기 이전에 이미 설립된 국가다.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의 국가로 1820년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모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현재의 땅에 정착해 만든 국가다. 이들은 1847년 미국을 모델로 한 정부를 만들고 라이베리아공화국으로 국가를 명명하고 미국의 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의 이름을 따서 몬로비아로 자신들의 수도를 지칭했다.

1980년 원래 이 지역 원주민 중 한 부족인 크란족 출신의 새뮤얼 케니온 도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톨버트를 살해하고 정권을 차지했다. 당시 신냉전기로 접어들고 있던 세계 정세로 미국은 아프리카가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비록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도였지만 그를 재정적으로 상당히 뒷받침해 친미적 성향을 유지하게 했다. 그러나 정권은 미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을 유지하면서 부패와 정치적 억압을 일삼았다. 이러한 상황은 또 다른 쿠데타를 불러왔고 이어 또 다른 반란이 일어나면서 라이베리아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못하고 20여 년간 내전에 휩싸였다. 이 기간에 20만 명이 죽었고 수백만 명이 주변 국가로 피란하는 참극이 지속됐다.

엘런 존슨설리프는 몬로비아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경제와 회계를 전공했다. 17세에 결혼한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서 회계 공부를 계속했고 하버드대에서 행정학 석사를 받고 1972년 라이베리아로 귀국해 톨버트 정부에서 차관으로 활동했다. 이어서 재정부장관에 임명돼 일하던 중 새뮤얼 케니온 도의 쿠데타로 톨버트 대통령이 살해되자 조국을 떠나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귀국할 때까지 해외에서 다양한 국제기구 및 세계은행, 적도은행 등에서 활동했다. 이 기간 그는 유엔여성개발기금(UNIFEM)과 아프리카 통합기구 등에서 활동하며 평화 구축을 위한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1997년 귀국 후 대통령에 출마했지만 패하고, 이후 망명길에 올랐다가 2005년 귀국해 대통령에 선출됐다. 이어서 2011년 두 번째 임기를 위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2014년 현재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선거에 처음 도전했던 1997년 그는 비록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라이베리아 국민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었다. 이어서 다시 국가는 내전에 빠졌고 2003년 임시정부는 반란 그룹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정국을 안정시키는 방편으로 엘런 존슨설리프에게 과도정부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차기 선거를 준비하면서 과도정부를 차분히 이끌었고 이어서 대통령에 출마했다. 그녀의 강점은 국내의 군벌들과는 거리가 있는 중립적 인물이라는 것, 그리고 당시 라이베리아에는 드물게 미국에서 정규 대학교육, 그것도 하버드를 졸업한 엘리트라는 것, 마지막으로 국제기구에 잘 알려진 인물이면서 경제전문가라는 것이었다.

당시 라이베리아는 극심한 외채에 시달리고 있었고 정부의 제1과제는 외채 탕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전문가이며 세계은행, 유엔 그리고 아프리카기구들과 긴밀한 연계를 가지고 있는 엘런 존슨설리프는 그야말로 라이베리아의 희망이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하면서 주요 8개국(G8)으로부터 3억2000만 달러를 제공받아 국제통화기금(IMF)의 빚을 갚았다. 이어서 국제개발원조를 통해 상당한 외채를 삭감받았는데 이러한 삭감은 개발도상국이 받은 탕감 중에서 가장 큰 것이었다. 또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많은 외자를 유치해 라이베리아 발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또 그는 자신이 국내 군벌로부터 중립적 인물이라는 위치를 활용해 국가의 평화, 안보, 화해를 증진하기 위한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20년간의 내전을 조사해 50명의 인물을 처벌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전의 상처를 완전히 아물게는 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졌다고 할 수 있다.

엘런 존슨설리프는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교육받은 여성으로 국제기구를 활용할 줄 아는 정치인이다. 대통령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전문가로서의 능력, 국제기구 활동 경험 덕분이었다. 라이베리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내전으로 얼룩지고 피폐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비정치적이면서도 전문가적인 정치인이다. 이런 점에서 엘런 존슨설리프는 라이베리아에 가장 적합한 정치인이다.

아프리카는 지금 서서히 긴 잠을 깨고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미래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며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가지고 세계에 발돋움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엘런 존슨설리프의 행보는 아프리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변화하는 세계에 대처해야 하는 이중적인 어려움, 그러나 새로운 희망이 그들이 가야 할 길이다. 이런 점에서 엘런 존슨설리프가 걸어온 길은 아프리카 젊은 여성들에게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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