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6월 30일 자정을 기점으로 세계 8위의 무역국가인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다. 고도의 자본주의에 익숙한 6천3백만명의 운명이

사회주의라는 상이한 토양에서 다시 시작되게 된 셈이다.

영국에서 중국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홍콩반환을 둘러싼 일련의 논

쟁과 혼란을 속도감 있는 영상기법으로 다룬 영화가 곧 개봉예정이

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영화는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

작품으로 선정되어 홍콩의 중국반환이 아시아 영화, 나아가 아시아

의 장래에 미칠 영향의 파장을 관객으로 하여금 새삼 가늠해보게 하

는 계기가 됐다.

홍콩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중인, '조이 럭 클럽', '스모크' 등

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웨인 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제

레미 아이언스, 공리, 장만옥 등의 세계적 연기자들이 주연으로 활약

한 '차이니즈 박스 Chinese Box'. 제목이 암시하듯, 홍콩의 현재

모습이 마치 상자에서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보듯 만화경처럼 펼쳐

진다.

역사적으로 전환기에 선 홍콩의 자화상을 그리는 가장 효과적 방법

으로 감독은 등장인물들에게 홍콩의 현재를 대변하는 상징성을 덧입

힌다. 즉, 기자로서의 한창 때를 홍콩에서 보내며 홍콩에 대한 애증

으로 갈등하는 영국 기자 존(제레미 아이언스)은 홍콩에서 이제는

퇴장해야 되는 ‘영국’을, 중국 본토에서 희망을 지니고 홍콩으로

건너와 사창가를 전전하는등 온갖 고난을 겪다가 놀라운 적응성으로

홍콩사회에 진입하나 마음속으로는 늘 자신의 성장배경을 감추고 싶

어하는 비비안(공리)은 홍콩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듯하다.

또 과거에 영국인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자살을 시도했다가 이

제는 생존 외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듯한 무표정함과 돌출적이

고 불안정한 행동으로 일관하는 진(장만옥)은 주인이 바뀌는 역사의

굴곡을 온 몸으로 체험, ‘돌연변이적 모습’을 띠게 된 홍콩의 일

면을 나타내는 듯하다.

영화는 이 세 주인공을 축으로 전개되면서 존의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홍콩의 어두운 풍경을 담아낸다. 사창가, 투견 훈련장, 닭, 생선

등이 잔혹하게 도살되는 시장 한 귀퉁이등. 존과 비비안은 서로를

향한 애증으로 갈등하고,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존은 자신의 남은 삶을 홍콩을 ‘정의’하기 위해 바친다. 그 와중

에 그의 렌즈에 우연히 잡힌 진에게서 새로운 일면을 발견하고 몰두

하게 되나 결국 더욱 큰 혼란에 휩싸일 뿐이다...

'차이니즈 박스'는 홍콩의 중국반환을 기념하며 그 과거를 다시 한

번 일별해 보는 회고성 짙은 영화다. 감독은 중국계지만 미국에서

활동한 경력 탓인지 상당부분 서양인의 관점을 유지해 나간다.

“홍콩은 정직한 창녀다. 이제 뚜쟁이만 바뀐 셈이다”, “반환 직전

의 홍콩은 화산폭발 직전의 폼페이와도 같다” 등의 대사는 홍콩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시선을 그대로 투영한다. 반면 “홍콩에 대한 영

국의 영향력은 중국이란 거대한 바다에 던져진 한 알의 소금에 불과

하다” 등의 표현은 이제 판이한 체제속에서 운영될 ‘돈덩어리’

홍콩의 미래에 대한 서구의 의심섞인 불안과 더불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홍콩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무위로

끝난 좌절감을 드러낸다.

결국 여러 감상과 예측이 복잡 교묘하게 얽혀있는 첨예한 교차점에

홍콩이 현재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박이 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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