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자 정당방위, 왜 인정 안 하나
가정폭력 피해자 정당방위, 왜 인정 안 하나
  • 김엘림 /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한국젠더법학회 회장
  • 승인 2014.03.19 13:50
  • 수정 2014-03-25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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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지난해 12월 3일, 한국여성의전화는 세계여성폭력추방 주간의 행사로서 가정폭력에 의한 살인사건에 관한 판례를 평가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에서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들과 여성주의 연구자, 변호사,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협력해 가정폭력 가해자(남편)가 피해자(아내)를 살해한 사건 121건과 가정폭력 피해자(아내)가 가해자(남편)를 살해한 사건 21건에 관한 판결을 분석해 문제를 규명한 ‘살인과 젠더’라는 제목의 발제가 진행됐다.

이 발제는 아내를 살해한 가정폭력 가해자(남편)에 대해 형벌을 감경한 판례들이 제시한 감경 이유 중에는 “동종 전과 없음” “우발적 범행” “반성”이 가장 많았고,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점” “아내의 불륜과 폭력, 가정 소홀로 인한 스트레스” “배우자 상실로 인한 죄책감으로 살아가야 하므로 피고인 자신이 최대 피해자인 점” 등도 있는 등 비교적 관대한 반면 가정폭력 피해자(아내)가 가해자(남편)를 살해한 사건에서 가정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인정한 판례는 단 1건도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형법은 제21조(정당방위)에서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 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은 술을 먹고 온갖 폭언과 폭행을 하고 공기총이나 칼로 자신과 가족을 위협하는 남편, 자신은 물론 딸에 대해서도 구타와 성폭력을 하는 남편 등으로 입원하기도 하고 지옥 같던 일상을 보내던 아내가 부부싸움 중에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한 경우에도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월한 가치인 생명을 앗아간 행위는 가정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방위행위나 가정폭력을 벗어나기 위한 소극적 저항 수단이라고 볼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장기적인 반복적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지만 남성의 힘에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구타와 학대를 감내하며 살아가게 되는 이른바 ‘매맞는 아내 증후군’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상습적이고 심한 가정폭력으로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이 폭력행사 후 잠들자 넥타이로 목졸라 살해한 사건에서 법원은 “남편이 아내에 대해 현재 부당한 침해를 하지 아니하였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여 폭행으로부터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인한 것이므로 정당방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오랜 기간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경우에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인정하여 감형되거나 집행유예 등을 선고한 판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서울고등법원은 2005년 5월 이같이 판결했다.

“피고인(아내)은 피해자(남편)의 지속적인 가정폭력과 성적 학대로 인하여 형성된 만성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중등도의 우울증을 앓아 오던 중 이 사건 범행 직전 피해자로부터 본인과 아들이 폭행을 당하고 딸이 성추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자 딸이 언젠가는 피해자로부터 강간까지도 당할 수 있다는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감, 그리고 딸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머니로서의 책임감 및 죄책감 등으로 인하여 상당한 정서적 혼란을 겪으면서 사물에 대한 판별능력과 그에 따른 행위통제능력이 저하된 상태에 빠져 자살 충동의 한 연장으로서 갑작스럽게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추단되므로,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당시 심신장애의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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