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초청 여성정책 TV 토론회…노무현 웃고 이회창 울다

한국의 월드컵 사상 첫 4강 진출과 주한미군 여중생 사망사건 등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2002년, 범여성계 최대 행사가 열렸다. 78개 여성단체가 주최하고 여성신문과 미즈엔 등 4개 여성주의 언론사가 후원한 ‘대선후보 초청 여성정책 TV 토론회’가 그것. 지난 1997년 본지가 단독으로 주최하고 88개 여성단체가 참여해 처음 개최됐던 토론회는 2002년 대선에서도 후보들의 여성관을 검증하는 시험대로 활약했다.

여성계는 여성의전화, 여성민우회, 21세기 포럼 등의 단체로 구성된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초청 여성정책 토론회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11월 21일부터 26일에 걸쳐 나흘간 토론회를 진행했다. 아침 11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한국방송공사(KBS)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여성의 비전, 새로운 리더십’을 주제로 가톨릭대 사회학과 이영자 교수가 전체 사회를 맡고, 각 분야별 전문가 5명(전체 15명)이 패널로 참여해 후보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2002. 11. 22. 702호, 범여성계 대선후보 초청 TV토론 연다)

토론회에 참석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호주제 폐지, 여성 노동자 고용 안정과 고용 창출, 보육 공공성 확보 등 여성계가 요구한 핵심 과제들을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최대 화두였던 호주제 폐지에 대해 노 후보는 “유림과 보수층을 설득해 호주제를 1년 안에 폐지하겠다”고 약속했고, 이 후보는 “여야 합의가 우선이다. 개혁은 국민이 공감해야 가능하다”면서도 “대통령이 되면 임기 안에 호주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사실상 폐지를 수용했다.   

본지는 토론회 후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게 판정승을 거뒀다”고 평가하며 “토론회 주관처와 시청자, 방청객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노 후보가 이 후보보다 잘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2002. 12. 06. 704호, 노무현 웃고 이회창 울다)

여성계는 토론회가 여성문제를 공론화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남윤인순 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현 민주당 국회의원)은 “여성계가 줄기차게 주장해 온 핵심 과제들이 방송에 나가면서 여성들 사이에 공감대를 만든 것이 큰 성과”라며 “대선후보들의 다양한 대답이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기준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연합 신혜수 상임대표(현 UN 경제사회문화 권리위원회 위원)는 “대선 후보들에게 호주제 폐지 공감을 얻은 것은 물론 여성의 위상을 한껏 끌어 올렸다”고 평했다. 김효선 비즈우먼 대표(현 여성신문사 발행인)는 “토론회 진행 경험은 여성운동 전체가 일궈낸 성과인 만큼 여성계의 공동자산으로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002. 12. 06. 704호, 여성문제 심각성 알린 성공작)

토론회는 당시 전체 유권자(3501만여명)의 절반이 넘는 1781만여명(50.9%)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정책 토론회와 온라인 등에서 여성유권자들의 호감을 얻은 노 후보는 그 해 12월 19일 치러진 선거에서 1201만4277표(48.9%)를 얻어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토론회의 전통은 2006년 5월 서울시장 후보 초청 여성정책 토론회와 2007년 7월 대선 경선 후보 초청 여성정책 토론회로 확대, 계승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