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가방 등이 놓인 흰색 철제 진열대 한켠에 당구대가 놓여 있

다. 에이포파트너스의 최미경(37)사장이 디자인 한 토탈브랜드 ‘닥

터 마틴’ 압구정점의 실내 모습이다. 제품매대를 하나라도 더 놓아

야 할 공간에 과감하게 들여놓은 당구대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율을

한층 높임으로써 고객의 머리속에 다른 매장과 차별화된 분위기를 확

실히 못박아 놓았다.

갤러리, 스튜디오, 패션매장, 기업체 중역실, 레스토랑, 병원, 빌

딩, 전시회 등의 디자인 설계 및 시공을 주로 하는 (주)에이포파트너

스 최미경 사장은 요즘 매스컴이 “유행 따라 옷갈아입듯 인테리어를

부추기는 짓”을 가장 싫어한다. 연평균 2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인

테리어업체 사장의 발언 치고는 다소 오만함이 느껴지기도 하다. 그

런데도 그는 문화센터에서 인테리어 강의를 할 때면 수강생들에게 늘

“돈 들여서 인테리어할 필요없다. 특히 아파트 거주자들은 더욱 불

필요하다”라고 외친다. 차라리 아파트 구조에 대한 불만사항을 많이

건의함으로써 굳이 가구를 들여놓지 않고도 수납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등의 개선점을 늘려 나가라는 것. 에이포파트너스는 89년

5월에 설립되었다. 어머니가 늘상 “남에 밑에서 월급장이 노릇을 할

성격은 못되는 사람”이라 말한 것대로 삶이 풀려나간 것일까. ‘서

울대 미대 응용미술과 재학시절 실습을 나갔던 ‘공간사’건물에 매

료되어 건축분야로 눈을 돌림, 대학원에서 공업디자인 전공, 87년 선

배와 ‘디자인 시드’설립, 인테리어 부분 전담’이 이력서에 채워진

경력사항들이다. 큰 돈도 못 벌면서 일주일에 이틀밤은 꼬박 세워야

했던 첫 사업은 1년 3개월만에 마감했다. 88년에 일본으로 2달 동안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진로를 고민, 89년에 독립을 선언했다.

회사명을 놓고 머리를 싸매다가 우연히 복사기로 눈을 돌린 것이 화

근(?)이 되어 복사용지 규격 중 하나인 ‘에이포’에 ‘파트너’를

갖다 붙여 ‘에이포파트너스’라는 회사이름이 탄생했다.

서초동 세프라인 탑스 갤러리, (주)뿌리깊은 나무 본사, 신성일 영

화사, (주)에스콰이아 비아트 명동 본매장, 준오미용실 3개 지점, 상

계 백병원, 압구정동 패션빌딩 ‘누NOUS’, (주)동양기전 인천남동공

장, (주)유공 코엑스 전시장, 세종문화회관서 열린 ‘아름다운 한글

전’, 엑스포 93꿈돌이 안내관 등이 주요 실적이다.

“인테리어도 성격이 있어요. 공간에 대한 성격을 최대한 살리는 것

이 중요합니다. 상황의 컨디션을 그 공간의 포인트가 되도록 하는 것

이죠.”

어떤 것이 좋다고 해서 그 공간에 끼워맞추는 식의 디자인은 절대

안한다. 준오미용실 돈암동 지점을 작업할 때는 입구 계단을 못자국

이 드러나는 철제를 씌워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내느데 중점을 두었

다. ‘패셔너블한 머리’를 입구계단을 통해 연상케 할 목적이었던

것.‘헐렁한 티에 바지 차림’이길래 참 편해 보인다고 말은 하면서

도 혹시 사장의 위엄이 떨어져 말발을 못 세우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자신의 일이‘상당한 노가다’임을 강조하는 최사장은 “공

사현장에서 정장을 빼입고 목에 힘주다가는 페인트 묻히고 먼지만 뽀

얗게 덮어쓸 것”이라며 웃는다. 못이라도 박고 걸걸한 목수들과 격

의없이 어울리기 위해서는 편한 복장이 최고라고. 사실 현장에서 도

목수와의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 초보 사장시절에는 ‘먹물 든 여사

장’에 대한 괴리감에 괄시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현장에서 도목수

와 정보를 주고 받으며, 그들에게 배울 것이 있으면 철저히 학생역할

을 맡았다.

이러한 노력은 10년 전에 같이 일했던 목수와 아직까지 일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직원들과 버스를 대절해 야유회를 갔을 때였다.

버스기사가 사장이 누구냐고 찾았고 기사 앞에 선 최사장을 보고 “

아가씨는 들어가라. 장난치지 말고 사장 나와라”라며 외쳐댔다. 결

국 사장이 누군지 안 버스 기사는 도목수만 상대했고 버스를 타고 가

면서도 계속 “처녀사장님 나와서 노래나 해봐라”고 외쳐댔다. 직원

들이 중재에 나섰고 결국 최사장이 분을 삭이는 것으로 끝내야 했다.

“우리나라 여성 기업인들은 대부분 잘사는 부모 만나 그냥 사장이

된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거죠. 결국 그 버스기사는 그런 식

으로 나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했지요.”

10명의 직원들과는 ‘각개전투’를 벌인다. 추진력있게 일할 수 있

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경영인의 큰 몫이라고 여기는 최사장의 직

원 중에는 벌써 몇명의 직원들이 독립해서 나갔다. 아낌없이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다. 그는 직원 채용시 한가지 특기만 있으면 뽑는다.

고학력에 대단한 학벌을 가졌어도 드러내놓을만한 장기가 없으면 과

감히 고개를 내젓는다. 다른 것 다 못해도 인간성만 좋으면 뽑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 회사를 확장할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않는다.

이 규모로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디자인분야에서 자리잡고 싶은 것이

최사장이 부리는 유일한 욕심이다.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수입에 의

존할 수 밖에 없는 인테리어 소재를 연구 개발하는 것이다. 가사분

담이 잘되는 남편은 현재 그의 일을 도와주고 있고, 엄마젖을 먹으며

건강하게 자라는 아들(4개월)을 둔 최미경 사장은 사회생활을 하려는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남자들에게 양보하지 마세요. 자

기를 부수고 일하려는 욕심을 가지세요. 여성이 돌아갈 곳은 가정만

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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