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시의 신은 어디로 갔나
‘목화밭 여왕’으로 불리는 흑인노예… 농장주 집착의 표적
성폭행 당하고 학대 겪어… 노예 120년 흑인여성사 오버랩

 

흑인이자 노예, 여성이란 이중삼중의 타자인 팻시는 백인 농장 주인에 의한 강간, 원치 않는 임신, 아이들과의 생이별을 겪는다.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cialis coupon free prescriptions coupons cialis trial coupon
흑인이자 노예, 여성이란 이중삼중의 타자인 팻시는 백인 농장 주인에 의한 강간, 원치 않는 임신, 아이들과의 생이별을 겪는다.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cialis coupon free prescriptions coupons cialis trial coupon

그녀는 주인에게 일명 ‘목화밭의 여왕’이라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노예가 평균 200파운드의 목화솜을 골라낼 때, 그녀 혼자만이 520파운드의 목화솜을 고르니까. 들판에서 태어나 들판에서 살다 들판에서 죽을 운명인 이 여성 노예의 이름은 팻시. ‘노예 12년’의 남자 주인공 솔로몬에 버금가는 연민의 공명을 일으킨 그녀 루피타 뇽은 팻시 역할로 2014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그러쥐었다.

남부의 흑인여자 노예 역할인 팻시의 스펙트럼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투는커녕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하는. 이 가운데 흑인, 노예, 여성이란 이중 삼중의 타자로서 백인 농장 주인에 의한 강간, 원치 않는 임신, 아이들과의 생이별이란 어떤 등식 위에 세워져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루피타 뇽은 그녀만의 풍부한 감수성으로 팻시라는 역할에 입체적인 명암을 드리운다. 콧노래를 하며 수수 다발로 인형 만들기를 즐기는 팻시는 처음에는 아직 앳된 소녀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 520파운드의 목화 따기를 통해 자신을 다른 노예와 차이를 두어 스스로 누구인가를 입증하려는 굳게 다문 입술. 그녀의 도드라짐은 그녀의 노예 주인 에드윈 앱스의 집착의 표적이 된다. 다소의 편집증이 있는 앱스는 한밤중에 노예들을 깨워 흥겹게 춤을 추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혼자의 흥으로 마음껏 춤을 추던 팻시는 그만 농장주 아내가 던진 병에 얻어맞아 쓰러져버린다. 그녀의 도드라짐은 농장주 아내에게도 표적이 된 것이다.

이제 팻시의 내면에는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판타지가 생겨난 듯하다. 예쁜 옷을 차려입고 이젠 농장주의 아내가 된 다른 흑인 여성의 집에 놀러가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 여성과의 성적인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언정, 그녀가 흑인이기에 그녀를 탐하는 농장주에게 불러일으키는 수치심이란 부메랑을 피할 길이 없으니.

그녀에게 집착할수록 앱스는 솔로몬 같은 다른 흑인 남성 노예들을 의심하고, 그녀를 성폭행하는 쾌락을 탐닉하면서도 엄청난 양의 목화 따기로 그녀의 노동력 역시 착취한다. 착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착취하면서도 앱스는 그녀와의 성관계를 비밀에 부친다. 주인 여자 역시 질투심으로 인해 그녀를 심리적으로 학대해 팻시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멍해져 간다.

그녀는 마침내 솔로몬에게 찾아와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이때 그녀의 눈빛은 슬프다 못해 절절할 지경이다. 비록 솔로몬에게 거절당하지만. 솔로몬이 다른 농장에서 임대 노역을 마치고 다시 앱스의 농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눈에는 핏발이, 피멍이 들어 있는 상태다. 심지어 이웃집에 비누를 빌리러 갔다 도망갔다는 누명을 쓰고 채찍질 당하는 그녀의 표정은 이미 자신의 삶을 놔버린 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감독 스티브 매퀸은 이 장면을 스테디 캠으로 길게 촬영해 팻시의 비통함, 증오, 분노, 자기 학대의 욕망이 함께한 얼굴과 주변 인물들의 반응을 한 화면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당신은 악마’라는 솔로몬의 말에 앱스는 자신의 재산을 지킨 것이고 오늘이 기쁘기 그지없다며 하늘을 쳐다본다.

앱스도, 솔로몬도, 팻시도 같은 신을 믿는다. 앱스는 소유한 노예들을 학대하는 권리는 성경에 의해 인가된 것이라고 믿고 성서의 여러 구절을 자주 읽어준다. 그렇다면 팻시의 신은 어디로 갔는가. 마침내 솔로몬은 착한 떠돌이 백인 목수의 손에 자유의 몸이 되지만, 팻시는 떠나는 그를 꼭 껴안을 뿐이다. 솔로몬은 팻시를 구하지 못한다. 팻시는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가.

‘노예 12년’은 흘러가는 연도도, 지나가는 시간도 표시해두지 않았다. 팻시의 변화는 몇 년에 걸친 것일 터인데 카메라는 아무 설명 없이 묵묵히 그녀의 뒤를 쫓을 뿐이다. ‘한낮의 우울’이란 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흑인 여성들은 내면의 우울을 숨긴 채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고 한다. 팻시의 후예들은 강함이란 방패로 스스로를 무장하지만. 여전히 피부색과 성이라는 이중 타자의 위치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노예 12년으로도 모자란 노예 120년의 흑인 여성 역사에 마음 한편이 가라앉는 오늘이다.     

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