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개혁이 또다시 좌초위기에 몰리고 있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

사를 통해 조세개혁의 의지를 천명하고, 국세청이 ‘정도세정(正道

稅政)’을 선언하고 나섰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은 그리 곱

지 않다. 왜일까?

올 4월 국민연금 확대실시를 계기로 자영자에 대한 소득파악은 이

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임이 ‘우연하게(?)’ 확인되

었다. 이제 “봉급생활자가 봉이냐?”는 불만은 국민연금뿐만 아니

라 의료보험, 세금에 이르기까지 커져만 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자영자 소득파악은 불가능한 일인가?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재실시’와 ‘부가가치

과세특례제도의 폐지’가 이루어진다면 제도개선에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투명성’에 근거한 ‘형평

성’ 확보와 직결되는 것이다. 시민단체와 노동단체는 역사상 최초

로 ‘조세개혁’을 요구하는 집회와 서명운동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정부와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결국 재경부는 올 정기국회에 ‘금융소득종합과세의 2001년 재실

시’와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의 2000년 7월 폐지’안을 제출하

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해 많은 시민단체들이 다소간 아쉬움이

남지만 중요한 진전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결국 가장 우려하

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과세특례제도가 폐지될 경우 영세사

업자의 세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를 내세우면서 국민회의와 자민

련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의기양양하던 재경부는 곧바로

꼬리를 내리면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혔고, 청와대에서는 또

‘예정대로 폐지한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하는 등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조세개혁 일정의 첫단추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과연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일부 국회의원들이 과세특례제

도 폐지를 진정으로 ‘영세사업자 보호’를 이유로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원래 재경부가 국회에 제출하고자 했던 과세특례제도 폐지

안에 따르면 기존에 ‘간이과세자’로 분류되던 사업자는 4년동안에

걸쳐 점차 일반과세자로 전환되고, 연매출액 2,400만원에서 4,800만

원 사이의 ‘과세특례자’는 업종별로 다른 부가가치세율을 적용받

는 지금의 간이과세자와 마찬가지의 부가가치세를 내게 되어 있다.

현재 과세특례자 124만여 명 가운데 부가가치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영세사업자’는 110만명 가량 되기 때문에, 과세특

례제도 폐지로 세부담 변화를 겪게 되는 사업자는 10만여 명에 불과

하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란 소비자가 물건값에 포함해서 사업자에게

미리 지불한 세금이다. 따라서, 정확한 근거에 의해 사업자가 세금으

로 내지 않는다면 소비자만이 손해를 보는 셈이 된다. 따라서, 신용

카드 영수증이나 세금계산서를 통해서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

다 중요하다. 지금 과세특례제도 폐지가 논란이 되는 것은 영세사업

자를 핑계로 삼고 있지만, 오히려 특례제도의 우산 아래 숨어 있는

일부 고소득자영업자들의 세원노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이다.

정치권은 이들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 즉 지역유지들의 불만에 민

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당락이 그들에게 달려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제까지 관행이었고, 현실이었다. 하지

만, 이제 분명히 해 두자. 조세개혁은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삶과 가장 직결되는 현실이다. 너무나 확연한 불평등, 그리고

그로 인한 부담에 또다시 눈감는다면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

하리오’. 조세개혁없이 그 어떠한 사회개혁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국민 모두가 절실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맵디 매운 표맛’을 보여줘야 한다.

'홍일표/ 참여연대 조세팀 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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