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성매매의 시대… 가출 청소녀 민생고 해법은

 

가출 청소녀 전용 쉼터에서 10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성신문 DB
가출 청소녀 전용 쉼터에서 10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성신문 DB

세상은 가파르게 변화하고 여자도 대통령이 되는 시대다. 내가 맡고 있는 늘푸른여성지원센터를 활기차게 드나드는 주인공인 가출 여자 청소년들 역시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 2000년 설립된 센터는 멋진 카페들이 즐비한 홍익대 인근 골목에, 정원을 갖춘 아담한 2층 양옥집이다. 이 건물에는 학력 취득과 일을 배울 수 있는 자립학교와 훈련매장도 있으며, 의료진이 상주하는 건강센터와 성교육장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부임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나는 실무자의 업무 보고에 상당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나중에 생각해보니 ‘알파걸 출신의 페미니스트 사감’ 같은 표정이었으리라). 가출 청소녀 지원 프로그램에 포함된 ‘피부 관리’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거리에 나가면 온통 성형수술과 몸매 관리를 강매당하는 마당에,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우리 센터에서까지 ‘피부 관리’를 한다니?!

“다른 관리도 안 되는 형편에 피부 관리라니요?” 나의 날카로운 질문에 실무자는 이렇게 답했다. “소장님, 그런 피부미용 아니고요. 물리적인 의미의 피부요. 애들이 피부가 터지고 갈라지기도 하고 피부병이 심해요! 그런 걸 배워본 적이 없어서….” 청결, 씻기, 옴벌레, 냄새…. 줄줄이 이어지는 관련 단어들이 낯설기만 했다. 씻기, 가위질, 계산…. 이런 일상의 사소한 것들은 살면서 의당 저절로 익히는 것으로만 알았지, 학습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새삼 알았다. 이렇듯 열악한 여성들과 만나는 일은 내게 익숙한 문화와 계급성이 타인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제한적이고 일방적일 수 있는지를 깨우쳐 주곤 한다. 또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동일한 시대가 아닌 듯한, 시대의 비동시성과도 만나게 한다.

최근 청소년들의 가출은 꾸준히 늘고 있고 이 중 60~70%가 여성이다. ‘특히 가출(家出)’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가정의 기능과 역할이 붕괴된, 돌아갈 가정이 없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청소년 성매매 연구를 처음 시작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원조교제’는 가족의 계급, 학업성적 등의 차이를 넘어 나타나는 광범위한 사회적 현상으로 이슈화되곤 했다. 반면 최근에는 하룻밤 잠잘 곳과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한 ‘생계형 성매매’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물론 예전에 비해 성을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은 분명하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가족의 해체 등 사회적 안전망의 위기, 인터넷의 발달, 그리고 후기산업사회의 친밀성과 섹슈얼리티의 구조적 변동 등은 청소년 성매매와 위기 청소년들의 구체적인 삶을 형성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들의 체험에서 성폭력, 성매매, 연애에서의 성(sexuality)은 그 구별이 선명하지 않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몸뚱이일 뿐이다”라는 표현처럼, ‘나’의 인격과 분리된 성, 대상화된 성, 돈이나 관계 유지 등을 위한 도구로서의 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각각의 성적 실천을 구분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성 거래는 최후의 선택이다. 내가 만나온 그 어떤 청소년도 단지 유흥비를 위해서나 돈을 축적하기 위해 성매매를 지속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두렵고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잠잘 곳, 먹을 것을 치열하게 찾다가, 그러한 모색이 실패로 끝날 때 자신의 성을 돈벌이로 내놓는다.

요컨대, 여성이 성을 파는 일을 시작하는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그 일을 지속하는가의 답은 너무도 명확하다. 다른 대안이 있다면 여성들은 기꺼이 다른 일을 선택한다. 불특정 다수의 남성과 만나 성을 교환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성적 호기심이나 반항심, 명품 백의 유혹 등은 일시적인 것이다. 만약 학력이나 가족 등 다른 지지 기반이 있는 여성이라면 성산업으로부터 좀 더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이들은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성을 파는 문제는 가장 우선적으로 민생과 관련된 일,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가출 청소년의 경우, 투표권 없는 ‘미성년자’의 위치에서 가난을 견디고 있다. 더군다나 상당수가 낮은 계급의 가족 출신이거나, 가정폭력, 동성애 등 다양한 사회적 열악성을 공유한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온 10대들, 집을 나온 가난한 동성애 여성이 이성애 성판매를 하는 현상이 존재한다. 이렇듯 성별, 세대,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계급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한편 인터넷과 성산업의 유통구조로 인해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청소년들은 고립화·원자화되고 주변 관계와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더욱 단절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가출 청소년 중 상당수가 쉼터나 기존의 공적 시스템 이용을 기피하고 있다. 이들은 가출팸을 형성하기도 하고 다양한 폭력과 범죄에 노출되기도 하며 때론 폭력을 재생산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업 능력, 경쟁적 사회에서의 대응 능력, 신체 발달과 건강 등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기 마련이다.

경제적 양극화로 벌어지는 빈부의 차이는 더욱 극심해지고,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부족하다. ‘정상’ 가족의 지극한 보호와 치열한 경쟁문화 속에서 양육되고 훈련되는 ‘일반’ 아이들의 한편에서는 성을 팔며 하루하루를 사는 거리의 아이들이 있다. 남학생보다 우수한 알파걸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과 대비되는 거리의 소녀들, 이들은 정말 같은 시대를 사는, 동일한 세대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의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이들은 과연 서로가 ‘여성’임을 공유할 수 있을까? 여성의 가능성이 확장되고 대통령도 되는 시대, 가장 열악한 존재의, 가장 치열한 문제인 민생고를 돌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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