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민낯’ 저자 ‘하이힐과 고무장갑’ 인터뷰
평균 나이 마흔 초중반 여자 6명이 행복을 찾겠다고 의기투합했다. 모임 이름은 ‘하이힐과 고무장갑’. 커리어우먼을 대변하는 하이힐, 살림의 필수품인 고무장갑을 합친 말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 꺼낸 행복지수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왜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행복지수가 하위권일까. 행복의 기준이 뭐길래. 어쭙잖은 행복학 개론서나 감상에 젖은 에세이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손에 잡힐 듯한 행복, 행복의 쌩얼은 뭘까’. 이들은 30일간 행복에 대한 실험을 하고 변화된 모습을 담은 책 ‘행복의 민낯’(샨티)을 펴냈다. 이들이 말하는 행복에 대해 들어봤다.
도대체 행복이 뭐야?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6명은 오자마자 남편 얘기, 저녁 얘기 등 할 말이 참 많아 보였다. 여자 3명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데, 6명이 모였으니 오죽하랴.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했다.(책에는 실명이 아닌 닉네임만 나와 있다.)
“안토니아(최주영‧43)예요. 20년 차 직장인, 10년 차 워킹맘, 1년 차 대학원생이죠.”
“젠느(김영숙‧45)예요. 전직 IT컨설턴트였고 지금은 심리상담 인턴으로 일하고 있어요.”
“달나무(김난희‧42)예요. 10년간 출판사에서 일했고 동남아(동네에 남아 있는 아줌마)가 된 지는 3년 됐습니다.”
“나무(김재용‧56)예요. 운영하던 카페와 옷가게를 접고 수필가로 등단했어요. 혼자 놀기의 고수랍니다.”
“백신 개발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워킹맘 선향(조영미‧45)입니다. 남편과 두 딸, 시어머니와 살고 있어요.”
“약국을 운영하다 지금은 철학 공부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 하라(정경화·47)입니다.”
자신을 ‘동남아’라 지칭한 달나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전 행복은 친구네 집 가족사진 속에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선향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행복보다 중요시 했었어.” 이들이 걸어온 삶의 행적이 궁금했다. 전직 워킹맘 4명, 현직 워킹맘 2명으로 구성된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먼저 약사였던 하라가 말한다. 하라는 중학교 3학년의 아들을 키우고 있다.
“제가 막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했던 말이 있어요. ‘아이를 낳게 한 원인 제공자는 남편인데 왜 고생은 내가 하지?’ 제일 불만은 남편과 저 똑같이 일을 한다는 거였죠. 그런데 육아의 일차적인 책임은 엄마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약국이 집 가까이 있어도 쉽지 않았어요. 둘째를 낳지 않았죠. 남편하고도 많이 싸웠어요. 이후에는 이모님(베이비시터)들을 구해서 전적으로 맡겼죠.” 약사였던 하라는 전문직이라고 육아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워킹맘의 고통을 토로했다.
가만히 있던 젠느가 거든다. “출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출산을 하고 승진이 누락된 적이 있어요. 과장 진급 때 밀려서 그 다음 해에 진급했죠. 프랑스 로레알그룹은 세쌍둥이를 낳았다고 승진 발령까지 냈다는데…. 재미있는 건 남편이에요. 재작년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맞벌이 부부와 외벌이 부부를 비교한 결과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시간 차이가 겨우 1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젠느의 말에 일제히 표정이 심각해진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하라가 말한다. “그러고 보면 일 때문에 쌓인 과로로 다들 피로하니까 즐길 시간이 없어요. 몰아서 놀려고 하니까 기형적인 여가 시간이 많은 것 같아요. 정부의 정책보다도 기업 문화가 먼저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시어머니와 살고 있는 선향은 애로 사항이 없었을까. “사실 전 결혼하고 줄곧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집안 살림은 시어머니 영역이었어요. 샴푸랑 린스는 물론이고 옷, 구두, 심지어 속옷까지 사온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일까요. 집에서도 나만의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집안 살림은 시어머니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신경을 안 쓴 거죠. 방관자가 된 느낌이라고 하면 맞겠네요.”
달나무가 거든다. 워킹맘의 고통을 대체적으로 공감하지만, 전업맘도 만만치 않다는 반응이다. “워킹맘 고통지수? 공감은 가지만 전업맘도 힘들긴 마찬가지예요. 내 남편은 왜 이런 문자를 보내나 몰라요.(휴대폰에 온 문자를 보여준다.) ‘남편의 연봉이 5000이면 3000이라 생각하고 살아라.’ 돈 관리를 남편이 하는데 내가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수입원이 없으니까 은근히 눈치 주는 것 같아요. 요즘 시간제 일자리가 나오던데 근무 조건 자체는 혹하더라고요. 그런데 주변에서 하는 얘기가 은행이라 쳐도 어떻게 돈일을 시키겠냐는 거예요. 복사나 잡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 퇴근 시간이 더 늦어진다는 말도 있고요.”
옆에 있던 나무도 속내를 털어놓는다. “전 전업주부가 하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허드렛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불편했어요. 여성 모두 일이 있어야 한다며 자꾸 밖으로 나가라고 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자꾸 밖으로 나돌아 다녔는지도 모르겠어요. 집 안에 행복이 더 많았는데 말이죠.”
조력집단 만나기, 나를 위한 시간 갖기
한창 힘들다고 털어놓던 그녀들.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그래도 우린 행복해요.”
의아했다. 이러한 논쟁 끝에 여섯 여자는 결론에 다다랐단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이지?’ ‘난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지?’
어떤 멤버는 하루를 촘촘히 기록해 자신의 감정 상태를 들여다봤다. 어떤 멤버는 집 안 곳곳에 쌓여있는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면서 마음의 공간을 넓혀갔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쓴 일지와 변화 과정을 적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백한다. 없던 행복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있던 행복을 발견해내는 눈이 생긴 거라고.
그래서 늘 불안한 내일을 사는 안토니아는 ‘노는 인간(호모루덴스)’ 안토니아로, 머리로 행복을 분석하는 젠느는 ‘해피 투게더’ 젠느로, 행복은 남의 가족 사진 속에나 있는 것으로 여기던 달나무는 어린왕자처럼 자신의 행복을 길들이는 ‘행복한 여우’ 달나무로, 일상을 지루해하며 한 발은 안에, 한 발은 바깥에 놓고 살았던 나무는 ‘행복이 주렁주렁한’ 나무로, 곁가지가 아닌 중심이 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던 선향은 ‘자체 발광’ 선향으로,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으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줄 모르던 하라는 ‘이미 충분한’ 하라로 변했다고.
인생 선배로서 행복에 대한 조언을 구해봤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모든 걸 다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젠느는 워킹맘이건 전업맘이건 애로 사항을 함께 공감하고 만날 수 있는 장을 가까운 곳에서라도 찾아보는 것을 권했다.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면 편해진다는 것. 하라 또한 실질적으로 조력 집단을 만나 든든함을 느껴보라고 말했다.
나무는 ‘혼자 놀기’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혼자 잘 놀고 난 후부터 삶이 풍요로워진 것 같아요. 10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 요리한다면 자식이나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 자유로워질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외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곤 했다는 선향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해주고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며 “나 자신의 행복에 대한 단서들이 쌓일수록 행복으로 가는 길이 뚜렷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운동이랑 감사일기를 꼬박꼬박 작성하며 일상에서 감사를 찾았다는 안토니오는 “불행함 속에 머물지 말고 행복한 일들을 할 것”을 강조했다.
여섯 여자가 찾은 행복은 멤버들의 수만큼이나 형식도, 색깔도, 풀어가는 방식은 달랐다. 30일간의 행복 실험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정답은 없지만 각각의 사람에게 맞는 정답은 있다. 이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자기만의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이들이 많길, 용기를 얻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