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2월. 여의도 Y 호텔 11층. 여기서 20대 남녀 한쌍이 몸을 던

져 투신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송’이라는 성

의 동성동본을 가진 젊은 연인들. 이들이 투숙한 호텔방에서는 한장

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죽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이 더 무서

워 함께 죽는다”고만 적혀 있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곧바로 동성

동본 금혼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시켰다.

肝사건을 계기로 여성계는 동성동본 금혼 폐지운동을 가족법 개정의

최고 항목으로 삼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사건 직

후 ‘동성동본 혼인문제 신고센터’를 개설하는가 하면 ‘동성동본

불혼제도 개정촉진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해 12월 정부는 동성

동본 부부를 구제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으로 ‘혼인에 관한 특례법

’을 제정, 한시적인 구제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한시법은 78년, 86

년, 96년 세차례에 걸쳐 적용됐다.

지난 7월 16일 “동성동본 금혼을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809조 1항

은 헌법에 불합치하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여의도 Y 호

텔 투신자살사건 후 20년만의 일이다. 그리고 58년 민법에 이 조항이

생긴 이래 40년만의 일이다.

헌법재판소(주심 황도연 재판관)는 민법 제809조 1항에 대한 위헌

법률심판제청사건에서 “헌법상 결혼과 가족생활의 권리를 침해한다

”며 “국회가 98년 12월 31일까지 이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한다”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또 “법원 기타 국

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회가 법을 개정할 때까지 이 조항의 적

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6만여쌍의 사실

혼 관계의 동성동본 부부는 이날부터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돼 법

적인 부부로서의 지위를 갖게 됐으며 혼인신고를 하지 못해 의료보험

을 비롯한 각종 생활상의 제약과 신분상 불이익을 받아온 부부들이

떳떳한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여성계는 헌재의 이같은 결정에 “뒤늦게나마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혼인의 자유를 보장받게 됐다”며 일제히 환영했다. 한국여성단체연

합(공동대표 지은희·한명숙)은 16일 성명을 통해 “헌재의 결정은

여성계의 오랜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며“이번 사건을 통해 부계혈

족 중심에서 모계혈족 중심으로 이양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으며

한국여성단체협의회(회장 이연숙)는 17일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

되고 남녀평등의식이 확산되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현명한 결정”

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 한국가정법률상담소도 “헌법에 위배

되는 전근대적인 독소조항은 오래전에 폐지됐어야 했다”며 “말못

할 고통을 당하는 수많은 동성동본 부부와 예비부부들에게 다행스런

일”이라며 헌재의 결정을 환영, 국회 여성특별위원회(위원장 신낙

균)역시 “헌재의 결정은 여성계와 동성동본 부부들이 쏟은 노력의

결실”이라며 “헌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린 만큼 이른 시일내에 관련

법조항을 손질하겠다”며 환영했다.

요란스러울 정도의 여성계의 환영. 이는 헌재의 이번 결정이 여성계

로서는 너무나‘뜻밖’이기 때문이다. 동성동본 부부 8쌍의 위헌제청

신청을 받아들여 서울가정법원이 위헌심판 제청서를 제출한 것이 95

년 5월. 2년을 넘게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려오면서 여성계 일각

에서는 사실상 포기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89년 3차 가족법 개정

이후 가족법개정운동 바람이 한풀 꺽인 데다가 세차례의 혼인특례법

으로 구제받은 피해자들이 개정운동에 별다른 참여의사를 보이지 않

으면서 사실상 가족법 개정운동이 소강상태에 접어던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시법이 적용된 작년 한해동안 가정법률상담소

의 ‘동성동본 금혼 피해자신고센터’는 혼인특례법을 홍보하는 수준

에 그쳤으며 피해사례는 한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또 이번 대선에서 동성동본금혼과 호주제폐지를 주요 골자로 한 가

족법 개정요구를 최우선으로 해야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돼

왔지만 유림측의 반대와 법조계의 무관심을 뛰어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오히려 더 우세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침체된 분위기에서 헌재의 동성동본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으로 여성계는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다. 여성계는 이제 앞으로 남은

가족법 개정 마지막 과제는‘호주제 폐지’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동성동본금혼 헌법불합치’결정은 “실효성없는 구시대 유물에 종

지부가 찍혔다”는 의미가 가장 크다. 사실 동성동본 금혼규정은 인

구 급증으로 동성인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현대에는

적용할 수 없는‘구시대 유물’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가 세차

례나 특례법을 통해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부부를 구제한 것도 동성

동본 금혼제도가 법으로서의 실효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

도 했다. 다만 이 규정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일 때마다 유림측이

거세게 반발해 지금까지 유지돼온 것에 불과했다. 또 헌재의 결정은

합리적 근거없이 무조건 남자쪽 성에 따라 혼인을 금지해온 남계중

심의 구습을 타파함으로써 헌법상 남녀평등정신을 실제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제 근친사이의 혼인문제는 법적으로는 동

성동본금혼제를 제외한 여타 민법규정으로 규제하고 이를 넘는 금지

혼의 범위는 변화하는 윤리와 도덕관념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그 이상을 법적으로 규제할 사회적 기반은 이미 붕괴되었거나 근본

적으로 동요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부계와

모계의 8촌이내의 혈족이거나 인척인 경우 혼인을 금지하고 있는 현

행 민법의 규제만으로도 우생학적 문제가 되는 근친혼의 범위를 벗어

났다”고 밝혔다. 8촌 이내의 친인척관계의 동성동본 부부는 민법

제815조의 혼인무효 규정에 따라 여전히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

“민법 801조 개정 안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

한편, 헌재의 결정에 유림측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다. 최근덕 성균관장과 기세훈 성균관 가족법개정대책위원장은 16일

전국 유림일동 명의의 성명서를 내고 “소수에 불과한 동성동본 부부

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이 조항을 폐지하는 것에 단연코 반대한다”

며 “이는 민족정기와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대

책위 이종화 부원장은“유림은 우리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

을 동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유림측의 이같은 반발이 별다른 반향을 가져올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여성계가 섣부른 가족법 개정운동을 벌일 경우

불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일부의 의견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

다. 헌재의 결정으로 민법 제809조의 효력은 정지되고 98년 12월

말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99년 1월1일부터 이 조항의 법적효력

이 자동적으로 상실된다. 그런데 민법 809조를 개정하겠다고 할 경우

법개정 과정에서 유림의 압력 때문에 809조의 효력이 부활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헌재의 결정을 따르기만 한다

면 809조는 98년 12월말까지는 효력이 상실된 상태로 있다가 99년 1

월부터는 효력이 정지되기 때문에 오히려 법 개정까지 갈 필요가 없

다는 주장도 일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최윤 진숙 기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