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아주 공격적인 여성운동가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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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아주 공격적인 여성운동가가 나와야 한다"

참여연대가 9월10일로 창립 5주년을 맞았다. 이제 막 다섯 살이면

서도, 우리사회 강력한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참여연

대. 이곳에서 사무처 살림을 총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사무처장 박

원순 변호사다. 82년 검사로 출발해 1년 만에 인권변호사로 유턴, 94

년 참여연대 창립당시 집행위 부위원장을 맡았다가, 96년부터는 전

업 시민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는 소신파. 그는 수입 좋은 변호사일

을 접고 시민단체를 선택한 이유를 ‘친구따라 강남간 격'이라고 둘

러댄다.

지금은 매일 일에 쫓기고 살고 있지만 앞으로는 자유롭게 책을 쓰

는 것이 꿈이라는 박원순 사무처장은 시민운동가들 가운데 대표적인

‘친 여성계 인사'로 꼽히는 법조인. 인권변호사 시절, 변호사가 드

물었던 여성계에서 그는 말없이 돕는 지원군이었고, 지금까지도 여

성계 현안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조언자다. 그는 여성단체가

초청하는 남성 인사 가운데 가장 출연 빈도수가 높은 사람에도 손꼽

히고 있다.

“세상을 한꺼번에 바꿀 순 없다"며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

는 자세로 일을 하고 있다"는 박원순 사무처장을 창립 5주년을 맞은

당일, 쉴새없이 전화벨이 울리는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나보았다.

-참여연대가 오늘로 꼭 창립 5주년인데, 그동안 초고속으로 성장했

다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이렇게 성장한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두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우선 외형적인 성장은 어

느정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사실 아직은 초보에요.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전문적이어야 하는데 이제 겨우 기반 구축을 하는 단계에 속한

다고 할까요.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초고속 성장이라는

말은 그동안 우리가 노력한 것을 사장한 말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지난 5년이 짧아보이지만 사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동안 한국사회

의 썩고 병들고 말도 안되는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볼 수 있는 매듭

이 없을까 하는 고민으로 밤낮 부대끼고, 때로는 병원에도 실려가고

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니까요."

-소액주주운동을 비롯한 재벌개혁, 검찰개혁 등 참여연대가 제기한

이슈들은 그동안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선 너무 이슈만

쫓아가는 게 아니냐는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까?

“사실과 조금 다른면이 있어요. 예컨대 백화점식이면서 전문성이

떨어진다든지, 이슈만을 쫓아다닌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저희가 활동

하는 걸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저희는 다양한 분야에

서 아주 꾸준히 그리고 일상적으로 일하고 있어요. 가령 현대증권

사건만 해도 저희는 검찰 수사가 들어가기 몇 달전부터 현대주식 사

지말자고 운동 벌이면서 주가조작을 밝히라고 주장해왔어요. 검찰

개혁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언론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는 것만

보도하다보니까 이런 시민단체들이 이슈만 쫓아간다는 인상을 주게

만들거든요. 그저 참여연대가 대법관으로 누구를 추천했다, 뭐 이런

것만 보도된다는 거에요.."

-참여연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세요?

“비교적 순수함이라고 할까요. 시민운동을 하면서도 깨어있는 사람

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국민들은 다 알아본다고 생각해요.

저희들은 임원 모두가 당적을 가질 수 없게 돼 있어요. 정치권에 절

대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정치판에 가기 위해 징검

다리로 걸치려는 사람은 일체 발붙일 수 없도록 정관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저 분이 정치성이 있다 하면 추천부터 안할 정도로 아주

결벽증이 있어요. 그런 방식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운동가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걸 상당히 반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계에 좋은 분이 가서 정치개혁을 많이 하면 좋

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쪽 영역은 아직 초창기거든요. 할 일이 너

무 많아요. 여기서 밭매다 저기 가서 밭맬 여유가 없어요. 매고 있던

밭이나 잘매야지요. 이게 풍성해지면 못갈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그

러나 저는 이게 한세대에 끝나는 게 아니라고 보거든요. 한국사회

권위주의 정부하에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위축된 생활을 했습니

까. 시민단체 회원들이 몇십만명, 몇백만명까지 돼서 전반적으로 시

민사회가 성숙해지기까지엔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고 봅니다."

-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 전업하셨을 때는 비상한 결심 같은 게

있지 않았나요.

“저는 줄을 잘 서라는 말을 합니다. 자기 혼자 외로운 결단을 내리

기는 어렵지만 친구따라 강남가는 건 쉽거든요. 제가 바로 그 케이

스에요. 75년에 대학에서 제적되고 그때부터 맺은 인연에 의해 여기

까지 온 거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이 변호사 업무와 전혀

다르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이런 법률적인 힘이 곧 참여연대의 힘

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런 측면에서 여성단체에서도 상

근하는 변호사가 있다면 훨씬 달라질 거라고 봐요. 법적인 측면은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바로잡아야 하는 게 많잖아요."

-실생활에서 상당히 평등하실 것 같은데요, 실제로 그렇습니까.

“그렇진 않아요. 저도 경상도 남자입니다. 저는 일곱형제에 위로 누

님이 네분이고 형이 하나 있어요. 끔직하게 아들을 생각하는 집안에

서 컸기 때문에 지금도 본질적으로 변하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데 인권문제를 접하다 보면서 아,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구나하는 교

육을 많이 받은 건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우조교 성희롱 사건도 제가 페미니스트였기 때

문에 맡은 것이 아니라 인권법률가로서 맡은 거였어요. 집에서도 좋

은 점수는 못받아요. 가사일도 많이 못하거든요. 가끔 주방에 물먹으

러 갔다가 설거지가 쌓여 있으면 보이는 대로 처리하는 정도라고 할

까요."

-부천 성고문 사건부터, 우조교 성희롱 사건, 그리고 최근엔 이시형

할머니 변론까지 맡으시면서 여성계 현안엔 빠지지 않는 인물로 꼽

히시던데요.

“여성문제에 관련해 많이 맡았던 건 사실이죠. 하지만 특별히 여성

이라고 해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여성문제라는 의식보다 우리의 보

편적인 인권문제로 보았습니다. 이시형 할머니의 경우도 그래요. 여

성인권 차원이라기보다 재판부의 판결은 너무 비인도적이라는 측면

이었죠. 전 여성인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차별없는 사

회, 평등한 사회는 보편적인 과제라고 보거든요."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흐름을 주욱 지켜보셨을 텐데요, 조언 한마디

해주시죠.

“워낙 열심히 일하시는데 제가 무슨 조언을 하겠습니까. 여성운동

은 더 열악한 조건에 있는데 우리가 제대로 힘있게 지원하지 못하는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하지요. 다만 여성운동가들이 제한된 안목을 넘

어서는 게 이젠 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수동적이고 방

어적인 자세를 넘어서 종합적인 마인드를 가지되 적극적이고, 아주

공격적인 여성운동가가 나와야 해요. 그래서 차별철폐 목소리도 좋

지만 여성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주요 공략지점을 다시 정하

라는 겁니다. 물론 그런 걸 안하고 있다는 건 아니에요. 지금도 충분

히 열심이지만 조금만 마인드를 바꾸면 사업의 스타일이 달라질 거

라고 봅니다. 재정이 어렵다고 여성한테만 지원을 요구하지 말고, 돈

있는 남성들이 과감히 돈을 내놓을 수 있게 하는 논리와 전략을 짤

수도 있지 않겠어요? 공격적인 여성운동가들에 의해 남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전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거죠."

'최진숙 기자 jins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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