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현장 수용할 만한 합리적 방안 내놓을 것”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시간제 일자리는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을 탄력적 근무를 통해 다시 노동시장으로 유인하려는 정책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공공부문에서 1만6500명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고, 민간 중소기업 사용자에게 인건비와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등의 일자리 창출 방안을 발표했다. 롯데, CJ, 삼성 등 주요 대기업들도 잇따라 채용에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선 나쁜 일자리를 양산해 여성 비정규직화를 고착시킨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시간제 일자리가 여성의 경제활동을 늘리는 적절한 대안인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봤다.<편집자주>
“결혼이나 육아를 이유로 교사직을 그만두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교육의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경제 논리로만 접근하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정부 입장에선 적은 돈으로 빈 공간을 막아 좋겠지만 교육은 눈 가리고 아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전남 지역에서 8년 차 초등교사로 재직 중인 고은혜(가명·32)씨는 지난해 말 정부가 발표한 시간선택제 교사 정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고씨는 “교사는 단순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학생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신뢰를 쌓고 인성 발달을 지도하는 것”이라며 “퍼주기 식의 자리에서 과연 누가 책임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겠느냐”라고 비판했다. 이어 “예산 부족을 이유로 매년 현장에는 정교사 대신 기간제로 메워지는 실정인데 시간제 교사가 도입되면 교육 현장은 더 열악해질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박근혜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내놓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추진계획(2013.11.13)’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특히 ‘시간선택제 교사제도’ 도입은 현직 교사와 예비 교사를 비롯해 학부모,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교사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오는 2017년까지 총 3600명의 시간선택제 교사를 공개경쟁 임용시험을 거쳐 선발, 현장에 투입하겠다는 방침이다. 법정 근무시간의 절반인 하루 4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주당 15~25시간 범위 내에서 반일제, 격일제 등 다양한 형태로 근무하는 정규직 교사다. 3600명은 유·초·중등 총 교원 수 48만3000명 중 0.06%에 해당하는 수치다.
현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원단체 및 일부 교육감, 교육대·사범대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제도 도입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고용 불평등이 심화돼 교원 간 위화감이 조성될 것이라는 것. 교총이 지난해 11월 유·초·중·고교 교원 41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2.7%가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석 교총 정책본부장은 “설문조사에서 여교사들의 90% 가까이가 제도 도입에 반대했다”며 “육아휴직 제도가 비교적 잘 돼 있는데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는 이 제도를 굳이 시행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현 전교조 본부정책실장은 “제도가 한 번 시행되면 선발 인원이 계속 확장될 것”이라며 “전일제 교원에 비해 책임성이 떨어지고 차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도화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육아나 출산으로 인해 탄력적 근무를 원하는 경우엔 초등의 경우 담임을 맡지 않는 교과 전담교사를 활용하는 식으로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문제 제기도 있다. 강원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김혜영(가명·25)씨는 “정규직이긴 한데 근무시간이 짧아 시간제 교사 급여로는 생활하기에 충분치 못할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중등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신윤아(가명·27)씨도 “시간제 교사는 정규직 아르바이트 또는 학원 강사나 마찬가지”라며 “베이비붐 세대 교사들이 대거 은퇴하는 시기를 기다리며 지원할 수는 있겠지만 제도 자체에는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실제 시간제 교사를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계층은 출산 또는 육아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20~30대보다는 연금을 오래 불입한 장기 경력 교사 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일부 교사들일 것이라는 것이 교육 현장의 예측이다. 초등보다 임용 경쟁률이 치열한 중등의 경우 예비 교사들이 임시방편으로 시간제 교사에 지원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부분의 예비 교사들은 전일제 교사를 희망하기 때문에, 선발 과정에서 전일제와 시간제로 나뉘면 상대적 박탈감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김 본부장은 “집이 부자가 아닌 이상 과연 50%의 보수를 갖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겠느냐”며 “성공 사례로 거론되는 네덜란드의 경우 전일제 교사와 시간제 교사의 급여 차이가 7%밖에 나지 않고, 국가에서 100% 노후 보장을 해주기 때문에 생활 유지에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생활양식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잡쉐어링(일자리 나누기)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지적도 있다.
양승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정책이고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커 현장 반발이 심한 것 같다"면서도 "전일제 근무가 좋다는 산업화 시대 인식은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달라지고 있다. 현재도 순환교사제도가 있는데 교육에 대한 요구가 다원화되면서 전일 근무가 필요없는 교과목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연구위원은 "제도가 시행되면 전문성을 이어가고 싶은 30대 엄마교사 또는 간병이나 자기개발로 여유시간이 필요한 교사, 장기경력 교사 등으로부터의 많은 지원이 예상된다"며 "교사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전일제 대비 비교적 경쟁률이 낮고, 일정기간 이후 전일제 전환이 보장되는 정규직이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관 부처인 교육부는 반대 여론이 심한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제도 시행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 교원정책과 관계자는 “교총, 전교조는 물론 학부모 대표들과 일반 교사들, 교장단, 학계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과 계속 협의 중”이라며 “현장에서 수용할 만한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 올 상반기 중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