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변호인 1000만 관객 돌파 기념 무대인사 행사에서 출연배우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변호인' 1000만 관객 돌파 기념 무대인사 행사에서 출연배우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흥행 1위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1330만 명)보다 빠른 속도다. 따라서 향후 새로운 흥행 기록 달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 영화는 1981년 9월 발생한 ‘부산의 학림(學林) 사건’(일명 ‘부림釜林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1981년 3월 출범한 제5공화국의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 기반을 확보하고자 민주화 운동 세력을 탄압하던 시기에 일어난 대표적 용공(容共) 조작 사건이다. 당시 재판부는 부산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한 뒤, 정부 전복을 꾀하는 반국가 단체의 ‘이적 표현물 학습’과 ‘반국가 단체 찬양 및 고무’로 날조해 5~7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상고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잠시 판사 생활을 한 송우석 변호사(송강호)로 나온다. 그는 판사를 그만둔 후에 세법변호사로 변신해 요트를 갖고 있을 만큼 풍요로운 삶을 누리다가 부림사건의 무료 변론을 계기로 인권변호사로 변신한다. 이런 사실들은 노 전 대통령과 일치한다. 물론 이 영화는 실제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허구를 띠고 있다. 한국 영화에서 전직 대통령과 같이 특정 정치인을 직접 다룬 영화가 이렇게 흥행에 성공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성인 국민 4명 중 1명꼴로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달려갔을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국민의 내재적 갈망이 그 이유라고 본다. 영화 속 주인공이 공권력의 부당한 집행에 대해 “이라믄(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고 거세게 저항하는 데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것 같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과연 이 영화가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 표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사실과 허구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며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사안은 아니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또한 “야권이 영화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야권과 진보진영은 ‘변호인’의 흥행 돌풍을 고무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당 지지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당의 정체성을 환기하고 진보를 재결집시키며,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층의 각성을 촉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연이은 패배 이후 궁지에 몰려 있는 친노 진영의 재기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영화가 노 전 대통령의 삶을 소재로 채택함으로써 그에 대한 ‘향수 효과’가 유발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이 영화는 지난해 12월 19일에 개봉됐다. 12월 19일은 2002년 “특권과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목청껏 외쳤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날이면서 2012년에는 문재인 후보가 낙선한 날이다. 그만큼 영화 ‘변호인’은 특정 정치적 목적이 있는 영화라는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일부 보수층에서는 영화가 “노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영웅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영화를 보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모든 판단은 현명한 국민이 한다.

‘변호인’ 흥행 돌풍 속에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3월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안 의원은 “지금의 정치는 건강하지 않고 정치에서 국민의 삶이 사라졌다”며 “낡은 틀로는 아무것도 담아낼 수 없고 새 정치세력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제 6·4 지방선거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안철수 신당 세력이 경쟁하는 3각 구도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안철수 신당과 야권 주도권 경쟁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얻으려면 영화 관객 숫자와 노무현 향수에만 빠져 있으면 안 된다. 친노 정서에 기대지 말고 민주당 스스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더불어 왜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그토록 염원했던 진보의 가치를 실현시키지 못했는지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호남은 어머니에게 꾸지람 듣고 갈 곳 없는 아이가 찾아가는 외할머니의 툇마루와 같은 곳”이라는 지역 감성에 호소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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