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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련/고교 교사

어두컴컴한 교실 비디오 화면 가득 앞머리로 눈을 거의 가리고 목

에는 번쩍거리는 목걸이, 헐렁한 힙합 바지를 걸친 ‘지누션’이 사

이키 조명 아래 열연하고 있다. 아이들은 가끔씩 “까악!~” 교실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른다. “오빠, 죽여 줘!”, “끝내 줘”가 터져

나온다.

열기와 고함으로 가득 찬 교실에 아이들이 왜 그리 열광하는지 궁

금한 나, 아이들을 이해하고픈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다. 그러나 아

이들이 소리를 질러대는 대목에서 왜 흥분하는지 감(感)조차 못잡아

사오정처럼 어리벙벙하다. 참을 수 없어 옆자리의 아이에게 묻는다.

-왜 소리 지르는 거야?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잖아요.

머리를 쓸어 넘기는데 왜 함성들을 지르냐고는 차마 못 묻는다. 답

답하다.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는 게 왜 아이들에게 죽이는 일

이 되는 걸까? 그 와중에 아이들이 또다시 “아악~ 죽인다!”한다.

눈을 부릅뜨고 봐도 특이한 행동은 없다. 그런데, 왜 이 대목에서 또

소리를 지르는가? 옆의 아이에게 또 묻는다.

-이번엔 뭐가 죽이는 거야?

녀석은 짜증스럽게 내뱉는다.

-지금 왼손으로 바지를 올렸잖아요.

이건 점점 오리무중이다. 왼손으로 바지를 올리는데 왜? 참을 수 없

는 존재의 답답함이여!

-바지를 올리는데 왜 소리를 지르니?

-멋있잖아요!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튀어나오는 말.

아이들은 또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게 “오빠! 옵빠!!” 거의 발악을

한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교실 가득 흐르는 흥분과 공감의 도가니

속에 혼자 바보가 된 듯 어릿거리다, 아픈 머리를 싸안고 슬그머니

나온다.

며칠 뒤 보강 시간에 2학년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닥터 K’

라는 약간 괴기스러운 분위기의 영화를 보고 있다. 같이 본다. 닥터

K가 대학시절 시체 해부 실습을 하게 되는 장면이다. 무언가에 홀

린 듯한 묘한 분위기로 시체의 팔뚝을 해부용 칼로 가르려는 순간,

아이들이 ‘까르르’ 넘어간다. 잔뜩 긴장해 있던 나는 영문을 몰라

한다.

-왜 웃니?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시체 팔뚝을 솜으로 닦잖아요.

-으응...그으래~

주인공의 행동에 빠져있던 내 눈엔 옆에 사람들이 있었는지조차 잘

안 들어온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걸 보고 죽겠다고 웃어댄다. 괴기

영화보다 영화를 보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더 기괴하다.

얼마 전 독서 시간에 영화를 보고 토론하기를 할 때 한 반에서 ‘변

검’이란 영화를 볼 때도 그랬다. 꼬마 여자 아이가 변검왕을 살려

달라고 지붕 꼭대기에 거꾸로 매달려 줄을 끊고 떨어질 때, 내 두

눈에선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리는데, 아이들은 한편에선

“우우~” 야유를 보내고 다른 편에선 “짜증 나!”하고 신경질을

냈다. 아이들이 유치해 하고, 지루해 마지않는 대목에서 훌쩍이던 나

는 빨리 거두어지지 않는 눈물 때문에 아이들의 눈총을 받았다. 이

래저래 아이들의 감수성을 따라가 보겠다던 나의 치기어린 도전은

여지없이 박살이 났다.

‘쥑(죽)인다’ ‘끝내준다’ ‘짱이다’ ‘멋있다’ 이런 짧고 단

순한 한마디로 자신들만의 정서를 공유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죽이고’ ‘끝내주는’ 게 뭔지 따라잡기도 어렵지만 더욱 어려운

건 그런 감각 언어에 의존하는 아이들의 사고 체계를 가늠하는 일이

다. 언어는 개념이고 개념을 통해 사고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거의

감탄사에 가까운, 언어라고 보기에는 오히려 타잔이 치타를 부를 때

지르는 “우우우~” 동물적 외침 같은, 지나치게 단순한 감각어를

쓰고 있는 이 아이들의 정서와 사고 체계를 거의 상상할 수가 없다.

이러다 아이들은 날 공룡으로 보고, 난 아이들을 E. T로 보는 날이

오지는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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