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제 인식 필요
“전쟁이 끝났지만 우리에겐 아직 해방이 오지 않았어요”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8일 수요일 정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22주년을 맞았다. 이날도 어김없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는 3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 위해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평화의 소녀상을 마주보며 일장기를 펄럭이는 대사관의 창은 여느 때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가 발생한 지 77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2년 동안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김복동(89) 할머니는 이날따라 더 비장해 보였다. 김복동 할머니는 “집회를 시작할 때, 60대의 젊은 아줌마였던 나는 꼬부랑 할머니가 다 됐는데 변한 게 없어요.”라며 세월의 흐름을 한탄했다. 길원옥 할머니(87)도 함께였다. 길 할머니는 당뇨와 췌장염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이 자리에 나왔다.
일본군 ‘위안부’(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는 1937년 전쟁터에 있는 일본 군인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만든 21세기에 유래 없는 성 노예 제도로, 2차 세계대전 동안 조선, 중국, 태국인 등 20만 어린 여성들을 속임수, 납치, 인신 매매 등으로 유인해 성적 학대뿐 아니라 감금, 폭행, 고문, 강제 유산, 신체 절단, 살인 등을 자행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70여년을 고통 받아온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요구한 것은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 올바른 역사를 후대에 남기는 것뿐이었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을 찾았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이루어진 것은 여전히 하나도 없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해 온 이들은 우리 사회의 미온적 태도에 대해 토로했다. 92년 위안부 수요집회가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한 윤미향(50)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는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것만 해도 고통스러운데 성폭력을 해결하라고 요구해야 사회가 듣는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피해자들이 말하지 않아도 국회, 여성단체, 시민단체, 지식인들이 이들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야 하는데 피해자들이 부르짖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게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또 위안부 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신권(53) 나눔의 집 소장은 “지금도 양성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성차별적인 부분이 여전히 있다.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문제인데 할머니 개인의 문제로 인식을 하는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할머니 인권이 회복되는 날 우리나라의 여성인권이 전반적으로 상승할 거다.”라고 강조했다.
이제 집회에 나와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단 두 명이 됐다. 1992년 첫 집회를 시작할 때만해도 집회를 열면 십여 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함께 했었지만 22년이란 세월의 주름이 가는 동안 할머니들은 하나둘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갔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 276명 중 현재 생존자는 56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외부활동을 할 만한 이들은 손에 꼽는다.
송도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52)는 더 늦기전에 일본의역사 왜곡을 바로잡기위해 국내를 너머 세계시민들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계획이다. 송 대표는 “역사적인 단절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안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현실이 여전히 존재하고, 가해국인 일본에서 반역사적 행태와 망언을 쏟아내며 다시 군사대국을 꿈꾸고 있다. 이제 정부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모아 유엔이나 국제사회에서 적극 중재해 반드시 살아있을 때 이행할 수 있게 모든 역량을 모아내는 원년이 됐으면 한다. 재외 국민뿐 아니라 해외 동포나 외국인 등 전 세계시민의 목소리를 담는 운동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