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정국이 우리 경제를 탈진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반복해서 얘기하기도 괴로운 일이지만 우리경제가 중병을 앓고 있다

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올들어 대기업의 부도가 줄을

잇고 기아사태는 아직까지도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어음부도율은 10월들어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주가는 연일 폭락하

고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도 연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대외신용도가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나마 요즘들어 수출이 다소 회복되고 내수가 호전되면서 경기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관측이 나오고는 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이 대선정국이 빨리 마무리되어 내년부터는 뭔가 희망을

갖고 살았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지금 정권말기에

경제정책도 일관성을 잃고 공직자들은 몸사리기를 하는 판이지만 선

거가 끝나는 단 몇 달만이라도 큰 악재가 터져 경제가 더 나빠지지

만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이와 같은 시점에 대선을 의식한 정치권이 대기업을 매개로 상대방

을 공격하는 폭로전을 전개하고 있으니 경제가 휘청거릴 것은 자명

한 일이다. 사실 문민정부 들어 지금까지 중요한 경제사안들은 정치

논리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은 대선을 앞두고

이번에도 무차별 자금살포와 지역개발공약을 남발하여 물가나 폭등

시키지 않을까 걱정해 왔다. 그런데 이 정도가 아니라 집권당이 특

정기업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비자금 제공액수를 공개하니 그

냥 입이 벌어질 따름이다.

그 동안에도 전직대통령들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어 대기업 총수

들이 법원을 들락거리고 그 모습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한국경제는

부패의 온상으로 비쳐져 왔다. 우리경제의 관행이었던 정치권-금융-

기업간 연쇄고리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선별적으로 노출되고 은행가

와 기업가가 희생의 제물이 되곤 하였다. 필요하면 철저히 이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속죄양을 삼아버리니 누군들 기업할 의욕이 생기겠

으며 정치권이나 정부를 믿고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겠는가.

경제는 살아있는 예민한 동물이다. 따라서 기업가나 국민들의 심리

적 요인에 의해 경기가 많이 좌우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경기가 활

성화되려면 국민들이 미래에 대한 긍정적 확신속에서 심리적인 안정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안정적으로 투자를 결정하고

일반 소비자들도 상품구매에 나서게 된다.

가뜩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집권당이 대기업의 명단을

공개하면서까지 선전포고를 하고 있으니 국민들의 경제심리가 얼어

붙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긋지긋하게 계속되는 주기적 깜짝

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는 내팽개쳐도 된다는 무

모함. 언제까지 국민들은 그들의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가.

모든 대선캠페인은 정책대결이 되어야 하고,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

한 희망과 비전을 주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

해서도 경제를 볼모로 삼아서는 안된다. 더욱이 지금 우리경제는 벼

랑 위에 서 있다. 그대로 두어도 위태로운 판에 정치권이 등까지 밀

면서 절벽 밑으로 떨어뜨려야 되겠는가.

경제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국민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

느냐 보다 내년부터는 마음 편하게 희망적으로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 중요한 전환기에 단 몇달만이라도 경제를 더 망쳐

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