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주체도, 국경도 없는 가상 화폐
4년 만에 1000달러로 가치 치솟아
익명성 때문에 돈세탁에 악용되기도
디지털 가상 화폐 ‘비트코인(Bitcoin)’에 대한 관심이 치솟고 있다.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지역에서 유행하던 ‘골드러시’에 빗대 ‘비트코인 러시’로 불릴 정도다.
비트코인에 대한 높은 관심은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9년 1월 4센트(약 400원)에 불과하던 1비트코인의 가치는 발행 4년10개월 만인 12월 11일 현재 1067달러(약 112만원)로 치솟았다. 최근 정부가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비트코인 거래소가 속속 세워지고, 실제 상품을 살 수 있는 상점이 등장하면서 비트코인 열풍은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비트코인은 베일에 싸인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프로그래머가 2009년 네트워크 기반 디지털 가상 화폐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세계 어디에서나 네트워크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은행이 발행 규모를 정하고 조폐공사가 돈을 찍어내는 기존 법정화폐와는 달리 누구나 돈을 발행하고, 사용자끼리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비트코인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비트코인 마이너(Bitcoin Miner)’로 불리는 사이트에 접속해 복잡한 수식을 풀거나, 돈을 주고 사야 한다. 금광에서 금을 캐듯 비트코인을 ‘채굴(mining)’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채굴은 연산능력이 탑재된 고성능 컴퓨터 없이는 어렵다. 일반 가정용PC 1대로 문제를 풀기 위해선 5년이 걸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거래는 더 단순하다. 주식처럼 비트코인 거래소에서 시세를 확인하고 사면 된다. 국내에도 이미 코빗, 비트업 등 거래소가 활동하고 있다.
현재 비트코인 경제 규모는 1조원에 달한다. 채굴되거나 구입한 비트코인으로 산 피자와 맥주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고, 집에서 편안히 음식 배달도 시킬 수 있다. 호텔에 투숙할 수 있고, 1억원짜리 전기차도 살 수 있다. 키프로스에서는 대학 등록금도 비트코인으로 내고, 미국에선 연방 선거운동 후원금으로도 쓰였다. 비트코인 보관 계좌인 ‘비트코인 지갑’을 스마트폰에 설치하면 주소가 입력된 QR코드가 나오는데 계산할 때 제시하면 된다.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한 가게(파리바게뜨 인천시청역점)가 얼마 전 처음 등장했다.
비트코인 지갑을 만들 때 개인 신상정보를 입력할 필요는 없다. 수수료도 매우 저렴하다. 익명 거래가 가능하고, 거래 비용이 싸다는 장점은 탈세나 돈세탁에 악용되기도 한다. 실제 온라인 사이트 실크로드(Silkroad)는 비트코인으로 마약을 밀거래하다 적발돼 폐쇄됐으며, 온라인 도박 사이트인 사토시다이스(Satoshidice)도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우려로 비트코인 최대 사용국인 중국은 정부가 비트코인 거래를 제한했다.
그러나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지급 수단이 될 것”이라고 호평한 반면,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통화로서 가치가 의심스럽고 거품”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의 미래를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NEXT MONEY 비트코인’의 저자 김진화씨는 “비트코인의 급성장과 갑작스러운 부상이라는 현상 뒤에는 전 세계를 지배해 온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며 “아직 실험적인 비트코인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