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관계… 화학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세상의 관계… 화학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3.12.06 11:43
  • 수정 2013-12-15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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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간 강단에 서며 인문학적 접근법 시도… ‘화학에서 영성을 만나다’ 펴내 관심
“슈퍼우먼으로 여성의 역할 다하길 강요하는 시대를 살았기에
화학 원리에 이 고통과 극복·순화 과정을 넣어 글로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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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화학은 물질, 영성은 비물질성이다. 이 둘 사이는 도무지 생각해도 공통 연결 끈이 없다. 그런데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이 두 이질적 요소를 하나로 묶어 해석하는 과학자가 있다. 물론 과학이론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삶 속에 들어온 과학 이야기이고, 과학이 주는 예기치 못한 감동이다.

2010년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로 잔잔한 반향(책은 교육과학기술부 서울과학고 등에서 우수 추천도서로 선정됐다)을 일으킨 화학자 황영애(사진) 상명대 명예교수가 전작의 연장선상에서 ‘화학에서 영성을 만나다’를 펴냈다. 과학 대중화를 키워드로  책을 주류 남성 과학자들은 심심찮게 보지만, 여성 과학자 중 이런 작업을 하는 이로는 그가 거의 유일하다. 인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영성, 그는 대중에게 과학 언어를 활용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3년 전 펴낸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 연장선상에서 ‘영성’으로 진입

“흔히 영성을 얻는다 말할 때, 그것은 영성의 결정체를 얻는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고 반짝이는 그런 것들을 이뤄내 얻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성을 얻기 위해선 고통스러운 기도 수련이 필요하고, 기도는 절박할 때 더 간절히 나온다. 화학에서도 이 원리는 적용된다. 화학의 화합물에서 ‘단결정’(불순물 없는 용액 결정체에서 나오는 순수한 혼합 결정체로, 3차원으로 볼 때 규칙적으로 원자들이 배열돼 있다. 물질의 경우 단결정이어야만 그 구조를 알 수 있다)을 얻어내는 것이 이와 비슷하다. 화합물을 아무리 걸러내 순수한 용액을 만들어놔도 결정체의 핵 단결정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화합물에 약숟가락으로 충격을 가하거나 풀어지는 용액을 넣는 등 고통을 가하면 그때 비로소 결정이 생겨난다. 1,2년간 수많은 실험을 통해서도 얻기 힘든 단결정을 얻는 순간 화학자들이 ‘기적’을 느끼듯 영성을 얻는 것 역시 인간에게 주어진 기적이자 축복이다.”

책은 독특하게 신부의 감수를 받았다. 전원 신부는 책에 대해 “힐링(healing)을 넘어 영성(spirituality)의 차원을 얘기”한다고 말한다. 저자도 “누가 나를 상처 주면 그 상처를 아파하고 스스로 치유하기에 급급한데, 영성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처 준 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라며 “상처를 주는 사람도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라 규정한다.

“45년간 교단과 실험실을 오간 외길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실험실 안에서 실험실 밖의 세상을 보곤 했다. (자식이 없는 큰아버지 가정에 입양돼 친부모와 일생 갈등을 빚으며 산) 남편의 복잡한 가정사, 육아와 일 사이에서의 갈등 등 여성이니 실제 삶에서 느끼는 것들이 남성 과학자들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슈퍼우먼 되길 은연중 강요당했고, 여성이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일에 대해선 조금의 양보나 용서가 없었던 시대를 살았기에, 내 전공인 화학의 원리에 이 고통과 극복, 순화 과정을 대입해 글로 토해냈다.

한때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도 참 많이 했지만, 실험을 하면서 조그만 입자들이 있는 힘을 다해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얘네도 이렇게 하는데 못 한다는 게 말이 돼?’ 하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들곤 했다.

가령, 탄소 원자 1개는 손이 2개 있는 셈이어서 2개 원자와만 만나게 돼 있는데, 메탄가스를 만들려면 손이 4개는 있어야 안정된 화합물을 만들게 된다. 이때부터 탄소는 굉장히 힘든 변신을 감행해야 한다. 그 변신이란 자기희생, 즉 죽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고, 그래서 ‘부활’에 비유될 수 있다. ‘죽어야 살리라’란 역설적 삶의 진리가 물질 변환으로도 설명되는 순간이다. 이를 지켜보는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탄소가 몸이 다 무너져 죽어 가는데도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것 들어봤냐? 그런데, 우리는 어떠하냐? 얘도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 있느냐’고 독려하곤 했다. 아이들을 향한 얘기는 실은 내 고백이기도 했다.”

그가 실험실 안의 세상과 실험실 밖의 세상을 연결 짓고 새로운 논리로 이를 설명하기까지 제자들과의 체험이 큰 도움이 됐다. 교수 이력이 쌓여가고 나이가 들며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도 한몫했다.

실험실 안에서 오히려 실험실 밖 세상 성찰… “자기희생이 곧 부활” 체감

“미국에 유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학생들에게 아는 것을 다 가르치려는 의욕에 불탔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선생의 요구에 몰려 허덕이며 죽을 듯이 힘들어했다.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나면서 동시에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보다 즐겁게, 잘 가르칠 수 있을까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화학적 원리에 사람 관계를 대입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졸업하면서 내 강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인사를 하곤 했다.

제자 중 한 명은 교생 실습 때 내 교수법을 벤치마킹 해 아이들에게 가르쳤는데, 반응이 열렬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교생 실습 나간 학교는 물론 다른 학교에서까지 교사로 와달라는 제안을 받았고, 현재 고교 교사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과학과 인문학의 접점 사이에 선 그는 “진화론, 창조론엔 솔직히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과학으로 신의 영역을 증명”하기보다는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고,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며,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라는 각 영역의 독립성을 인정해주는 데서 멈춘다는 입장이다.

 

너는 비금속, 나도 비금속

너와 나는 모두 전자를 얻어야 행복해지는 운명

너도 내놓고 나도 내놓고 우리 함께 소유하게 되었네.

우리는 공유결합

 

너는 금속, 나는 비금속

너는 전자를 잃어야 안정되고 나는 전자를 얻어야 행복해지는 운명

너는 내놓고 나는 얻으니 황홀한 결합으로 그 힘도 강하네.

우리는 이온결합

 

금속과 비금속

너와 나는 다르지만

저마다 신이 내려준 자연법칙을 따르니

내놓아도 얻어도 온 세상에 행복한 운명을 가져온다네.

 

금속결합, 공유결합, 배위결합, 이온결합 등의 화학결합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시(대한화학회) 일부다. 여기서 그는 공유결합과 이온결합의 예화를 들어 부부 간, 부모와 자식 간 가족끼리 주고받는 상처와 치유를 설명한다.

“이온결합은 마치 자녀가 어릴 때 부모가 사랑이라는 전자를 내주며 양이온이 되고 자녀는 사랑을 받는 음이온이 되어 서로 강하게 결합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성인이 돼 ‘물’이라는 세상에 나가면 서로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인간사에 비유하면 더 이상 부모에게 기대지 말고, 자식에게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와 통한다. 또 공유결합은 마치 남자와 여자가 서로 평등하게 손을 맞잡고 있는 모양새다. 사랑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그들이 함께 했던 결정이 나쁜 결과를 낳더라도 상대방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함께 이를 극복해가라는 암시 같지 않은가.”

그가 화학에서 삶을 발견하고 치유의 길을 모색하게 되기까지는 개인사도 적잖이 작용했다. 그는 자신의 ‘공유결합’은 아직 미완성이지만 큰아들과 이제는 ‘이온결합’을 이뤘다고 말한다.

“두 아들을 뒀는데, 교육에 안달하느라 아이들을 믿어주지 못했고, 상처를 줬다. 후회했지만 너무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공부가 다가 아니고 아이들 마음을 읽고 사랑을 하면 다 해결되는데, 신뢰가 답인데 철이 늦게 들었다. 큰아들은 미국에서 공부 후 그곳에서 직장을 잡았는데, 아이가 그 과정에서 힘들어할 때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러면서 아들과 화해를 했다. 아들은 엄마가 상처를 줄 수밖에 없던 환경을 다 이해한다며, 그러나 당시 엄마는 분노를 조절할 줄 아는 어른이고 자신은 아무 방어도 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환기시켰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잘못했다는 용서를 청했으면 좋겠다고 담담히 말하더라. 그 순간 어떤 말로도 변명을 할 수 없었고, 오직 미안할 뿐이라며 울면서 용서를 청했다.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랬더니 아들은 ‘이제 됐어요’ 한마디로 끝내는 게 아닌가. 실은 아들은 이미 용서할 준비가 돼 있었던 거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먼저 ‘엄마, 사랑해요’ 하더라.

그래서 깨달았다. 모든 물질 현상이 그러하듯, 인간도 어린 시절 겪은 상처가 너무 아파 고통스럽지만 결국 그 마음의 상처가 우리에게 성숙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이온결합’의 완성 같았던 큰아들과의 화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전공한 무기화학, 그중에서도 촉매합성 분야가 마음에 든다. 화학 실험에 참여해 반응이 잘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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