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이나 요즘이나 마을공동체의 주역은 단연코 ‘아줌마들’이다! 우스갯말이지만 예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고, 마을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백수’ 아니던가. 오늘날의 현대판 백수는 누굴까? 물론 아줌마들이다. 아이 돌보느라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전업주부 하는 아이엄마들이다. 그 다음으로는 세탁소아저씨, 슈퍼아줌마, 미용실언니 등 자영업 하는 분들이고, 그리고 대낮에도 동네를 어슬렁대는 예술가들이 또 있다. 진짜 백수는 사실 동네에 잘 없다. 일자리 얻으러 부지런히 다녀야 하니 말이다. 마을을 지키는 백수의 공통점은, 모두 낮 시간에도 마을에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새벽에 집을 나서 어둑해야 들어오는, 여관 드나드는 것과 진배없는 주민이 무슨 마을살이를 하겠나?
그러나 이른바 아줌마가 마을의 주역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결혼해서도 처녀시절 다니던 직장을 사수하는 이른바 맞벌이부부가 된다. 어느새 아이를 낳고, 하루하루 전쟁 치르듯 육아기를 무사히 보낸다. 언제 그날이 올까 싶었던 큰 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에 비로소 그동안 육아의 시름을 날려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1학년을 보내자마자, 아이는 예전의 우리 아이가 아니다. 2학년 말 종업식을 앞두고 찾아간 담임 면담에서 “엄마가 많이 바쁘신가 봐요?”라는 질문에 영문을 모르고 “네?” 하는데, 선생님이 “애한테 틱이 있어요. 신경 좀 쓰셔야겠어요” 한다. “아, 예…”하고는 들리지도 않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애가 좀 예민해서…” 라고 했지만, 가슴은 쿵쾅쿵쾅 집에 돌아와도 도대체 진정이 안 된다. “직장을 때려 치워야하나? 내년이 승진 케이스인데, 아니 애가 저 모양인데, 승진이고 뭐고 그게 대순가?, 그래도 어떻게 지켜온 직장인가? 늘어가는 생활비는 어쩌고, 내가 직장 더 다녀서 무슨 큰 영광 본다고, 둘째도 내년에 초등입학인데 잘됐다. 이참에….”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에 집중한다. 한 3, 4년 아이에 집중하니 애는 언제 그랬냐는듯 멀쩡하게 잘 큰다. 아니 이제는 지 혼자 컸다는 듯 엄마 품을 겉 돈다. 신랑이야, 알콩달콩하고 지내기는 함께 한 세월이 적지 않다. 부디 사고나 치지 말고, 다니는 직장이나 잘 다녀주면 그것으로 고맙다. 갑자기 찾아온 홀가분함이 어색하다. 다니던 직장에 복직도 생각해봤지만 어림도 없다. 여직 직장을 계속 다니는 입사동기는 벌써 간부가 되었단다. 연봉도 장난 아니란다. 갑자기 서글프고 나만 뒤처진 것 같아 도대체 맘이 안 잡힌다. 이제 갓 40을 넘겼는데도 몸도 전 같지 않다. 우울도 가끔 찾아온다.
“진아엄마, 우리 이거 같이 해보지 않을래? 창희네, 수진이네, 해솔이네도 같이 한다고 했어” 솔깃한다, 하지만 걱정이다. 사업을 아무나 하나? “사업은 뭔 사업, 돈 벌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 엄마들 다섯이서 동네카페 하나 내보자는 건데 뭐~.” 혼자였다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일이다. 하지만 비슷한 또래 애들 같이 키우면서, 친정 자매보다 더 살갑게 지내던 사이 아닌가. 용기를 낸다. 나도 뭔가를 해봐야지. 동업해서 잘되면 독립해서 커피숍을 운영해보는 거야. 과감하게 창업의 꿈도 꾸어본다.
마을에서 굵직굵직한 주요 프로젝트들이 대체로 이렇게 발주된다. 엄마들은 아이 낳고 기르며 쌓은 내공이 하늘을 찌른다. 특히 소통의 달인들이다. 마을기업을 하려면 우선 출자자를 모아 사업자금을 만들어야 하고, 또 출자한 주민들이 단골고객이 되니, 동네 이웃주민들을 출자자로 모으는 게 관건이다. 애 키운다고 직장 그만두면서 시작된 4, 5년의 짧지 않은 마을살이였지만, 그 덕에 동네 웬만한 이웃들은 대충 꿰고 있던 터라, 출자자 모으는 일은 별일이 아니다. 평소처럼 오가다 이웃 만나 수다떨다 보면, 그 이웃 어느새 출자가가 되어 있다. 게다가 이 엄마들 다들 한 때 잘나가던 커리어 우먼들이라, 나름 주특기 하나씩은 다 가지고들 있다. 회계며, 마케팅이며, 심지어는 인테리어까지 전문가 수준의 안목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
없으면 또 이웃 중에 누가 무슨 재주 가지고 있는지 훤하니 문제될 것 없다. 동네에서 일을 하다 보면 아이도 돌볼 수 있어서 좋다. 이미 커버린 아이, 곁에 딱 붙어있는 게 대수가 아니다. 조금 떨어져 있되 아이의 가시거리에 있으면 딱 좋다. 여럿이 동업으로 하니 개인적인 일도 병행할 수 있어 여유롭다. 경제적인 부담도 없지 않으나, 망한들 쪽박 찰 일 없고, 흥한들 대박날 일 없는 게 마을기업 아니던가? 육아기를 이제 막 끝내는 엄마들이 새로운 인생의 희망을 마을에서 찾아간다. 이렇게 시작한 엄마들이 마을살이의 중심 일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