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왕진/그린벨트 살리기 국민행동 사무국장

지난 해 말 헌법재판소의 그린벨트 관련 판결을 놓고 많은 언론은

헌법 불합치 판정에 대해 주목했다. 그러나 헌재의 판결은 공적 규

제로서 그린벨트 제도 자체는 분명히 합헌임을 명시하고 다만 그린

벨트 지정으로 인해 원래 용도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된 토지에 대해

서 보상 규정이 없는 점을 들어 헌법 불일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토지의 소유권과 개발권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고려하면 매우 주목할 만하다. 헌재 판결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이 우리를 잠

시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유한적

존재를 넘어서 있는 이 영원한 터전을 지혜롭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탐욕적인 수탈과 무계획적인 개발을 제어할 수 있는 공공적

인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

그린벨트는 이러한 토지의 공적 이용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제도였

다. 실제로 지난 28년간 유례없이 급속한 개발과정 속에서 그린벨트

는 무질서한 도시 확장과 환경파괴를 막아내는 역할을 해왔다. 따라

서 그간 그린벨트 지정 및 운용에 있어 주민의 불편을 유발하는 운

용상의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린벨트 제도는 우리나라 국토 계

획 수단으로서 확고히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건교부의 전면해제 방침은 그린벨트 제도의 운용 문제

를 개선하는 차원이 아니라, 국토의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계획·관리라는 근본적 원칙을 폐기하는 입장에 다름 아니다.

건교부는 중소도시 전면해제 방침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였기 때

문에 전문가들에 대한 의견수렴을 요식적인 절차로 떨어뜨렸다. 시

민환경단체의 주장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 도시농촌계획학회 보고

서,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연구 결과, 제도개선협의회의 의견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건교부의 중소도시 전면해제 중심의 제도 개선안은 이것이

야기할 사회·경제적, 환경적 영향에 대해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

어 대도시권에 대한 해제민원 가중, 상수원보호구역, 국립공원구역

등 다른 규제 지역 주민들과의 형평성 문제, 마구잡이식 개발로 인

한 환경파괴 등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시킬 것이다. 지금과 같은 건

교부의 제도 개선 추진과정은 후대에 길이 “한치 앞을 못 내다본

졸속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그린벨트 제도 개선은 가까운 문제를 조정하고, 먼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로 임하되 그린벨트 제도의 유지·발전을 기본전제로 해야 한

다. 아울러 땅에 대한 인간의 오만한 소유 의식을 바꾸고 지속가능

한 이용을 가능케하는 장기적 국토이용계획을 가져야 한다.

그린벨트 내외의 모든 지역에 대한 세심한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입각한 개발만을 허용하는 것이 그 대원칙이 될 것이다. 건교

부는 중소도시에 대한 전면해제 방침을 철회하고 14개 권역 모두에

대해 환경평가와 도시계획을 통한 부분 조정을 하는 원칙을 수용해

야 할 것이다.

우리가 오늘만 이 땅위에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우리들과

미래의 자손들이 영원토록 살아갈 터전이라는 점을 정부도, 시민들

도 개발제한구역 주민들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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