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여성 운전 금지하는 유일한 국가
거리 운전 시위에 60여 명 참여…
정부, 종교지도자, 해커 등 강력한 반대 부닥쳐
“여성들에게 운전을 허용하라!”
작지만 소중한 소망을 담고 거리로 나선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용기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60여 명의 사우디 여성들이 ‘여성 운전 금지’ 규정에 항의하기 위해 차를 몰고 거리로 나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14명의 여성들이 운전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 하지만 자신들이 운전하는 모습을 직접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전 세계에 이들의 의지를 알렸다.
킹사우드대 교수이자 ‘October 26 driving for women’ 캠페인 참가자인 아지자 유세프는 주최 측이 여성들의 운전 모습을 담은 13개의 동영상과 50여 건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접수된 동영상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캠페인 이름으로 게시됐다.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직장인인 메이 알 사우얀(32)은 리야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슈퍼마켓까지 운전했다. 지역 방송국의 여성 리포터가 그의 차에 동승했고 남편과 가족은 집에서 기다리며 전화로 그의 안부를 확인했다. 그는 “짧은 거리를 택해 오래 운전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며 “매우 행복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구상에서 여성에게 운전을 허가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다. 남성 친족의 허가 없이는 결혼이나 취직, 해외 여행도 불가능하다. 성문법상에 여성 운전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지만 여성들은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으며 무면허 운전에는 벌금형이 부과된다.
사우디 여성들은 10년 전부터 여성 운전은 인간의 기본권임을 주장하며 허용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지난 2011년에도 마날 알 셰리프가 자신이 운전하는 모습을 소셜네트워크상에 올려 체포돼 주목을 끌었다. 이번 캠페인은 지금까지의 여성 운전 허용 시위 중 최대 규모다.
1990년부터 여성 운전 캠페인에 참여해 온 60세의 심리학자 마디하 알-아즈루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평범한 삶을 찾고 있을 뿐”이라며 “내게 있어 운전은 카푸치노를 사러 가는 사소한 일인 동시에 아이를 응급실에 데려가야 할 경우 필요한 엄청난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날 캠페인에는 애초에 더 많은 여성이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캠페인을 앞두고 정부와 고위 성직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다. 시위 당일에는 거리 곳곳에 경찰이 배치돼 차창을 통해 운전자가 여성인지 확인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내무부는 캠페인을 앞두고 “사회 평화를 해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한다”며 “여기에는 여성 운전을 요구하는 집회나 시위도 포함된다”는 강력한 경고를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종교지도자 나세르 알-오마르는 100여 명의 성직자들을 이끌고 왕궁을 방문해 여성 운전 캠페인의 금지를 요청했다. 또 다른 종교지도자 모하메드 알-누자이미는 이 캠페인이 “심각한 위험”이라며 “여성 운전을 허용하면 결혼과 출생률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간통을 증가시키며 미용용품에 지나친 지출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주의자 해커들은 캠페인 웹사이트에 침투해 사이트를 다운시키고 여성 운전자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담은 페이지로 바꾸어버렸다.
이렇듯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캠페인 주최 측은 이제 시간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고 있다. 해외 유학이나 여행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사우디도 변화를 맞이할 시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번 캠페인은 사우디 내 소셜네트워크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우디 출신의 코미디언이 밥 말리의 ‘노 우먼 노 크라이’의 가사를 바꿔 여성 운전 금지 등 보수적인 사우디 사회를 비꼰 패러디 송 ‘노 우먼 노 드라이브’ 뮤직비디오는 인터넷상에서 큰 인기를 끌며 조회 수 500만 건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들의 운동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독재자를 실각시켰던 ‘아랍의 봄’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참가자들도 정치적 시위가 아니라며 국가권력에 맞서는 일도 피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운전면허를 발급하지 않는 현 교통법을 존중해 이번 시위에도 해외에서 운전면허를 딴 여성들만 참여했다. 마디하 알-아즈루시는 “우리는 법을 어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이 캠페인은 혁명이 아니고 앞으로 혁명이 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