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마디로 풀어내는 이야기 할머니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중략)

아빠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같이 살자 그랬죠.”

많은 어머니들이 부르던 어효선의 대표 동시 ‘꽃밭에서’의 1절 시작 두 소절과 2절 끝 두 소절이다. ‘설날’ ‘고향의 봄’ ‘반달’ ‘파란마음 하얀마음’ ‘과수원 길’ ‘구두 발자국’…. 우리 어린이문학사를 보면 수많은 동시들이 동요로 태어나서 온 백성이 부르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이런 좋은 동요를 듣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안타깝다. 이렇게 사라지는 동요를 아름다운 동화로 되살리는 작가, 그녀가 바로 강화도 마리산 할멈 같은 이상교다.    

이상교는 1949년 아버지 이덕중과 어머니 소진원의 4남4녀 가운데 둘째로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1960년대 강화도 간척사업을 맡은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 되던 해에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로 가서 중학 2학년까지 살았다. 길상초교를 졸업했고 강남중을 다니다 2학년 때 서울 성동여중으로 전학을 했는데, 그 학교에서 소설가 이정호 선생을 담임으로 만나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성동여자실업고교를 졸업하며 습작을 시작했고, 1973년 가톨릭 잡지 ‘소년’에서 동시 3회 추천 완료를 받아 어린이문학을 시작한다.

이상교는 전업작가로 그동안 ‘외로운 오소리’(사계절), ‘옴팡집 투성이’(현암사)를 비롯해 어린이를 위한 동시와 동화와 그림책을 200여 권이나 낸 할머니 이야기꾼이다. 최근에도 ‘우리집 귀뚜라미’(고래가숨쉬는도서관),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봄봄), ‘개나리가 호호호 찬바람이 쌩쌩’(뜨인돌어린이) 같은 동시·동화집을 냈다. 9월 30일 세 책 출판을 기념하는 문학기행을 강화도 초지리와 길상초교로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중진 작가답게 그동안 한국동화문학상, 한국출판문화상, 세종아동문학상, 해강아동문학상, 불교아동문학상. 박홍근아동문학상을 받았다. 또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부회장, 한국동시문학회 회장, 불교아동문학회 부회장 일을 맡아보기도 했다. 이렇게 어린이문학 동네에서 많은 일을 한 그는 자다가 깨어 생각해도 ‘백 번 잘했구나!’ 싶은 일이 바로 어린이문학가가 된 것이라고 한다. 

이상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초지리는 마리산 동남쪽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고, 길상초교는 유서 깊은 전등사 바로 앞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상교는 스스로 자기 문학의 발원지를 강화도 초지리와 길상초교라고 한다. 집에서 길상초교까지 고개를 넘어 오가면서 놀았던 남자아이들과 보았던 동식물과 하늘과 구름과 달과 별과 바람과 바다 소리가 수많은 작품들이 끊임없이 솟아나게 하는 샘물이 됐다고 한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십리가 넘는 등굣길을 오가는 중에 참 많이도 넘어져 무릎을 깬 일입니다. 돌멩이 투성이에 움푹움푹 파여 나간 곳이 많아 걸핏하면 넘어졌던 것입니다. 물봉선과 쌀여뀌, 부들이 무성하게 나 있는, 조금 깊은 물가에 그물을 대고 발로 툭툭 친 다음, 물고기가 그물에 들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동안 바람과 물결, 둑 위 나뭇잎들은 숨을 죽입니다. 마침내 그물을 들어 올렸을 때. 파닥파닥, 파다닥! 송사리와 붕어, 버들치…. 검은빛을 띠며 가늘게 파닥이는 것은 보리새우입니다.”

1991년 현암사에서 ‘옴팡집 투성이’를 펴내면서 쓴 머리말에서 따온 글이다. 이상교는 이처럼 초지리에서 길상초교를 오가면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맞고 보내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이 평생 자기 작품을 쓰는 싹이 됐다고 한다. 

웬만큼 키 큰 남자보다도 훨씬 큰 키, 큰 바위 얼굴처럼 굵은 선과 거칠게 사방으로 날아갈 듯한 머리칼, 어느 자리에서나 노래와 이야기로 흥겨운 자리를 만드는 품새를 보면 마치 한라산 마고할미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마리산 이야기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다. 이상교 작품에는 어느 구석에나 마리산 할머니 치마처럼 펼쳐진 끝자락에 사는 풀과 벌레와 아이들 모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집 귀뚜라미를

나는 안다.

또록또록 또르르르….

처음엔

어느 귀뚜라미가

우리집 귀뚜라미인가

알지 못했다.

어제 나는 알았다.”

‘우리집 귀뚜라미’에 실려 있는 ‘우리집 귀뚜라미’ 일부다. 푸른 숲과 파란 하늘을 온통 울리며 숨가쁘게 노래하던 여름 매미들이 가고, 맑은 가을밤을 정겹게 물들이는 귀뚜라미 소리가 사방에서 우는데, 그 많은 귀뚜라미 소리에서 자기 집 뒤뜰에 사는 귀뚜라미 소리를 구별해낸다. 

이런 귀는 자연에 대한 마음이 살아 있을 때, 자연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 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만났을 때 열린다. 우리 옛 할머니와 어머니와 아이들은 이런 귀와 눈과 마음을 갖고 살았다. 그래서 이상교는 자기가 어린 시절에 할머니와 어머니와 아이들이 정겹게 부르면서 자연과 함께 사는 귀와 눈과 마음을 열어주던 동요들, 어느 틈엔가 각박하고 황폐한 도시 물질문명에 눌려 사라지는 동요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일, 동요를 아름다운 동화로 되살리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새로운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한인현 동시 ‘섬집 아기’를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이라는 아름다운 동화로 되살려낸 이상교가 꿈꾸는 세상은 이처럼 아이들이 자연의 품에서 자연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이 가을, 아름다운 할머니 이상교 작가를 품어서 키워준 마리산 자락 초지리 들바람과 전등사 단풍과 길상초교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만날 수 있는 문학기행 한 번쯤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 키 큰 코스모스 한 무더기가 반기는 연못 가운데 있는 대선장에서 나물밥 한 그릇 쓱싹쓱싹 비벼 먹는 정취 또한 제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