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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30대 미혼모가 생후 1개월도 채 안된 딸을 생부가 일방적

으로 다른 가정에 입양, 5개월간 혼자서 딸을 찾아 헤매다가 여성언

론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지 5개월만에 딸을 다시 품에 안는 ‘기

적’을 이뤄냈다.

지난 3월부터 여성신문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지원광고도 함께 게

재돼 독자들에겐 너무나 친숙한 진현숙 씨(34)와 딸 오름이. 한 월간

지에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창간됐다는 이계경 발행인의

글을 읽고 무작정 2월에 상경, 여성신문사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

고, 그의 사연이 모성인권의 박탈이란 측면에서 여성신문에 대대적

으로 기사화되기 시작, 한국여성의전화연합과 연결돼 5인의 여성공

동변호인단을 6월 24일 발족한지 20일 남짓만에 양부모의 양육권 포

기로 딸을 되찾게 됐다. 딸과 헤어진 지 10개월 만이었다.

양부모, 법정보다 ‘영원한 엄마 아빠’로 남기로 결정

13세 외동아들만 있어 평소 입양을 생각해오던 양부모는 친분이 있

던 오름이 생부 J의 여자친구 A가 J를 소개해 지난 9월 1일 오름이

를 입양, 양육해 왔다. 이후 진씨가 제주도경찰서에 아이를 찾아달

라고 낸 진정서 관계로 올해 4월 5일 담당형사로부터 오름이의 생사

확인과 인도를 요구한다는 말을 듣고 경악했다. 입양 당시 생부 J가

생모는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고, 아이 키울 사정이 안되는 사람이

니 절대 걱정말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미 아이

에게 정이 들대로 든 양부모는 즉각 입양을 알선한 A에게 확인전화

를 했고, 그간 생모가 애타게 아이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

게 됐다. 이들은 생모의 처지가 여의치 않을 것이므로 생모를 만나

자신들이 얼마나 오름이를 사랑하고 또 잘 키울 자신이 있는지 설득

하고자 했으나 생모측에서 연락이 없어 생모가 아이찾기를 포기한

줄로만 막연히 알고 있었다. 이후 6월 중순 진씨의 공동변호인단이

발족 전 미리 띄운 입양무효확인소송 및 유아인도청구소송장이 날아

왔고, 전재산을 털어서라도 끝까지 법적 대응을 하려던 양부모측은

“생모 진씨가 포기안하면 설사 법으로 이긴다해도 아무 의미가 없

고 딸만 불행해질 것 같아” 7월 11일 아이를 돌려주기로 어려운 결

정을 내렸다. 이후 7월 15일 오후 1시 30분 진씨와 여성의전화 관계

자들을 만나 오름이를 인도했다.

이 자리에서 양부모들은 오름이를 생모가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불면증에 시달려왔고, 양부 K씨는 아이를 돌려주기로 결심

한 그날부터 화사에 무단결근한 채 두문불출 중인 괴로운 심정을 토

로했다. 맞벌이부부로 소박하지만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은 애꿎게도

자신들이 아이를 돌려주기로 결정한 다음날인 7월 12일부터 중앙 일

간지들에 진씨의 얘기가 실명으로 대서특필되었는데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주변 사람들이 알려줘 충격을 받았을 정도로 순박한 사람들

이었다. 특히 K씨는 딸사랑이 지극해 떠나보낼 아이를 생각하며 진

씨와 대면한 순간부터 1시간 여 동안 투박한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

쳐내다가 끝내 오열을 터뜨려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들 부

부는 생부 J씨가 마치 옆구리에 가방을 끼듯 아이를 안고 나타나 자

신들이 그 아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디 다른 데라도 버리고 갈 것

같은 위기감에 입양 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후 아이에게 흠씬

빠진 이들 부부는 아이가 거의 방바닥에 발을 대지 않고 놀 정도로

배 위에서 놀리고, 매일 저녁 퇴근 후엔 아이 사진을 찍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정도로 아이 사랑이 극진했다. 백일잔치까지 이틀

에 걸쳐 성대하게 치뤄준 양부모는 8월 8일 곧 다가올 돌을 앞두고

아이에게 이제까지보다 더 큰 사랑을 보여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여성신문사, 진씨 모녀에게 정착자금 지원

이들은 그동안 듬뿍 정이 들었던 딸을 떠나보내며 진씨에게 자신들

이 이제까지 딸을 사랑한 것보다 더욱 더 많이 사랑해줄 것과 다시

는 딸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맡기지 않을 것, 그리고 자신들은 영

원히 오름이 엄마·아빠로 남을테니 언제든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예전처럼 실수하지 말고 자신들에게 달려오라는 다짐을 했다. 오름

이를 품에 안고 돌아온 진씨는 양부모가 차곡차곡 챙겨준 아이 용품

속에서 양부모의 애틋한 사랑과 격려가 담긴 편지를 읽고 다시 한번

감격했다.

7월 19일 여성신문사와 이계경 발행인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오

름이와 함께 공식적인 첫 외출을 한 진씨는 “이제서야 세상이 조금

씩 달라 보입니다. 마치 컴컴한 터널 속에서 빛을 따라 밖으로 나간

느낌이죠. 왜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어린아이를 희망의 상징으로 삼

는지 알겠어요”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이계경 발행인은 그동안 잘

버텨온 진씨의 용기가 많은 다른 미혼모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줄 것

이라고 격려하며, 한달간이라도 오름이에게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독

자들의 성원으로 모인 생활비 1백만원을 전달했다. 여성신문사는 앞

으로도 진씨 가족이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도록 일정기간 동안 생활

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 오름이를 위해 비교적 시간여유가 있는

세일즈로 직업을 바꾼 진씨는 어느정도 돈이 모이면 전원생활을 할

계획으로 근처 일하는 여성의 집에서 난재배 강습을 받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경찰의 가부장적 수사관행 문제로 지적

법적으론, 양자 간에 이미 합의가 된 상태지만 아이에 대해 이중호

적을 올린 셈이 되는 양부모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를 취하하

는 대신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판결문을 받는 절차가 남아있다. 진

씨의 공동변호인단에 따르면, 재판기일은 8월 17일 자로 잡혔고, 이

후 보통 2달 후에 판결문이 나오는데, 화의에 의한 판결문이기에

다른 미혼모들을 위한 판례로 적용되기는 힘들어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한편, 여성의전화 측은 딸을 찾는 과정중 진씨가 경찰서에서 겪은

수모를 통해 가부장적 수사관행의 문제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진씨

를 지원할 때부터 이 문제가 진씨 개인 차원이 아닌 미혼모에 대한

사회편견과의 한판승이라고 내다봤기에 앞으로 다른 미혼모들도 자

신의 혈육을 찾는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부딪칠 난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씨는 제주경찰서에서 “나 같아도 지 자식이 다른 남자

밑에서 자라는 것보다 생판 남한테서 자라는게 더 낫겠다”는 말을

수시로 들었고, 진씨가 딸을 본격적으로 찾기 위해 서울로 정착, 이

사건이 청량리경찰서로 이첩된 후에도 수모는 역시 계속됐다. 담당

형사는 제주경찰서에 1차적으론 진정서를, 이후 고발장을 접수했다

는 진씨의 설명에 “진정서나 고발장이나 궁뎅이나 방뎅이나 그게

그거인 거지”라는 성차별적 비하발언에 짜증까지 내 진씨가 조사중

경찰서 문을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진씨, “생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계획”

현재 진씨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미

혼모들을 위해서라도 미혼모만 정죄받고 주홍글씨를 다는 현실에 정

면도전해 미혼부도 기어이 그 책임을 묻게 하겠다는 것.

“오름이를 다시 찾은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양부모와 제가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이 사건은 제겐 아직도 완전히 끝난 것이 아

닙니다. 여력이 허락한다면 제주도에 있는 생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꼭 그 책임을 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박이 은경 기자 pleun@womennews.co.kr

사진 민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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