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청소년 20만 명, 여자 청소년 1.5배 많아
방임 속 청소녀들 건강 적신호 심각
위기 청소녀 맞춤형 건강 돌봄 정책 절실
젊은이들의 낭만과 열기가 출렁이는 홍대 앞 거리. 그 길에서 조금만 비껴난 골목으로 꺾어들면 널찍한 대문에 온통 초록색이 벽을 덮은 서울시립청소녀건강센터 ‘나는 봄’이 나온다. 지난 9월 26일 개관한 이곳은 가출과 성매매 위기에 노출된 청소녀들이 몸과 마음을 치료할 수 있게 마련된 공간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늘푸른여성지원센터 1, 2층에 설치된 ‘나는 봄’에서는 청소녀들이 산부인과, 치과, 가정의학과 등의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전문적인 심리상담도 받을 수 있다. 서울시는 5곳을 협력병원으로 지정했다. 센터에는 과목별 전문의가 요일별로 정기 근무하고 간호사 1명과 사회복지 전문 인력 3명이 상주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예쁜 카페처럼 꾸며진 대기실이 나온다. 진료나 상담을 받기 전 기다리는 공간으로 탁자와 의자가 아닌 방석이 놓인 좌식 대기실이 이채롭다. 가출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다리를 펴거나 편안하게 잠을 자지 못하는 환경을 고려해 편안하게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대기실 안쪽으로는 치과와 산부인과 진료실, 상담실 등이 마련돼 있고, 다목적 프로그램실에는 간단한 음식을 먹거나 생일상 이벤트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백재희 센터장은 “가출 청소녀들에게 임신·출산·성병과 관련된 산부인과 진료만큼 치과 치료가 중요하다”며 “반복 가출하는 아이들은 양치가 안 되는 등 위생 상태가 좋지 못하고 술과 담배에 노출되면서 치아가 더 나빠진다. 예전에 만났던 성매매 여성은 20대인데도 치아가 한 개도 없더라”며 안타까워했다.
가정의 방임 속에서 아이들은 아무도 건강에 관심을 가져준 사람 없이 살아왔고, 심지어 1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의료기관을 접해보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고 평소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치과 진료는 더욱 받기 어렵다는 게 백 센터장의 설명이다. 치아에 문제가 생기면 씹는 것에 장애가 생기고 내과 질환도 동반해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한다.
뿐만 아니라 가출 청소녀에 대한 낙인과 부정적 시선은 아이들이 병원을 찾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청소녀들은 “병원에 가면 날 어떻게 쳐다보는지 알아요. 다시는 안 가게 돼요”라며 병원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은 2007년 1만8636명에서 2012년 2만8996명으로 5년 만에 약 60%나 늘어났다. 신고되지 않은 사례를 포함하면 실제 가출 청소년은 약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여자 가출 청소년이 남자 청소년에 비해 1.5배 더 많아 위기 청소녀를 위한 맞춤 지원책이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28년간 성매매 여성을 지원해 온 막달레나공동체가 위탁운영하는 ‘나는 봄’은 전국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모델로 개관 전 테스트 진료를 진행하며 현재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청소년 상담기관을 통하거나 직접 거리에 나가 아이들에게 알리기도 하고, PC방 화장실에 포스터를 붙이는 등 아이들이 입소문을 듣고 센터를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거리의 아이들 외에도 직접 학교를 찾아 홍보도 한다. 학교에 다니지만 방임 상태에 놓여 건강을 돌보지 못하는 학교 내 위기 청소녀를 돕기 위해서다.
백 센터장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위기 가족의 아이들이다. 그들은 한 발만 내밀면 성매매를 하게 된다. 일테면 간신히 줄타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아이들이 센터를 많이 믿어주기를, 문턱이 높은 병원이 아니라 놀다 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여기기를, 더 많은 의료 자원이 들어왔으면 한다”는 희망을 전했다. 그는 “가출 성매매 아이들이 세상에서 낙인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