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소원’은 성폭력 피해를 입은 9살 여자아이 소원(이레)과 가족,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소원 문구·슈퍼’ 집 딸 소원은 학교 가던 길에 앞을 막아서며 우산을 씌워달라는 아저씨를 만난다. 세차게 퍼붓는 비에 소원은 아저씨를 외면할 수 없다. 잠시 뒤 소원은 학교 앞 공사장 가건물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휴대폰 버튼을 눌러 경찰에 신고한다. 곧이어 병원으로 달려오는 동훈(설경구)과 미희(엄지원). 아이가 겪은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 병상에서 녹화 진술을 하던 아이가 경찰이 보여주는 용의자들의 사진 중 범인을 지목하는 걸 지켜보는 장면에선 울음이 터져 올라온다.
다행히 범인이 잡혀 경찰 조사를 받고, 소원이도 성폭력 피해 아동의 치유를 돕는 일을 하는 정숙(김해숙)과 함께 일상을 회복해간다. 그런데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아 학교 갈 날을 앞둔 소원은 학교에 가는 게 두렵다. 자신이 겪은 ‘그 일’이 창피하다. 그러던 소원이가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소원이네 가게 문에는 놀랍게도 같은 반 친구들이 쓴 편지가 가득 붙어 있다. 소원과 티격태격했던 같은 반 친구 영석(김도엽)은 동훈 앞에서 “그날 같이 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건데…”라며 뒤늦은 울음을 터뜨린다.
가슴 아픈 소재를 다루지만 영화는 종종 관객에게 편안한 웃음도 준다. 소원에게 다가가기 위해 소원이가 좋아하는 코코몽 캐릭터 의상을 입고 뛰어다니는 아빠 동훈의 모습이 바로 그것. 이와 함께 이 영화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소원이가 고통스런 기억을 치유하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그 길에 함께하고자 하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 문제로 고민하는 동훈에게 선뜻 돈을 빌려주는 공장 동료 광식(김상호), 미희와 함께 캐릭터 의상을 입고 소원이 앞에서 땀이 쏙 빠지도록 춤을 추는 영석 엄마(라미란), 학교에 돌아온 소원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 멀찍이 뒤에서 따라 걷는 아이들까지, 영화는 소원이네 가족이 외롭지 않도록 다가서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이를 통해 어쩌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는 바람을 전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122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