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생 50년 ‘가요무대’ 진행자로 현장에서 맹활약

“방송 인생 50년 중 거짓말 한 기억이 없어요. 후배들에게도 방송에서 절대 거짓말 하지 마라 당부하곤 하죠. 어떤 게 방송 중 거짓말이냐고요? 가령 예를 들면, 어느 화가가 나와 자신의 작품을 가리키며 ‘이게 뭘 표현했는지 아시겠어요?’라고 진행자에게 물었을 때 진정 그 작품에 대해 모른다면 방송 중이라도 ‘아니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얘기해야죠. 사전에 방송작가가 건네준 원고를 슬쩍 보고 그 작품에 대해 조예가 깊은 듯 이런 말 저런 말 하는 건 아니죠. 처음엔 그런 것이 통할지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자꾸 반복되다 보면 시청자들이 ‘저 진행자는 늘 아는 척 좀 해’라고 생각할 테고, 그렇게 되면 그 진행자의 말에 믿음을 갖게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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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사진기자

“50년간 시청자에게 거짓말 한 기억이 없다”

평생 좋아하는 일을 일관되게 쭉 하면서, 그것도 정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 하면서도 그 일을 상징하는 어떤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각인된다는 것은 정말 드물게 행복한 일이다. 올해 방송 인생 50주년을 맞아 일찍부터 언론의 조명을 받은 김동건(75·사진) 아나운서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가요무대’(KBS 1TV) 하면 ‘김동건’, ‘김동건’ 하면 ‘가요무대’가 자연스레 연상될 정도로 1985년 프로그램 시작 때부터 현재까지 ‘가요무대’의 터줏대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2003년 노무현정부 출범 당시 코드 인사 논란 속에 18년간 잡았던 ‘가요무대’ 마이크를 넘겨주고 시청자에게 한 마디 인사도 하지 못하고 돌연 하차, 7년의 휴지기를 거쳐 2010년 다시 진행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게다가 월화 드라마 시청률 전쟁 속에서도 10%대의 인기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선방하고 있다.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난 후배들에게 아주 약하다”고 말하곤 할 정도로 후배들에 대한 ‘엄격한’ 사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그에게서 느낀 가장 강력한 인상은 ‘말’에 대한 결벽증적인 완벽성 추구였다. “아나운서는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그가 뜻하는 완벽한 말, 즉 화법은 “말이란 곧 신뢰이며, 진정한 대화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의 다른 표현인 듯싶다. 그 전제 조건은 일체의 테크니컬 요소나 미사여구란 거품을 최대한 뺀 꾸밈 없는 말, 가식적이지 않은 말에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올해 유난히 속앓이를 많이 했다. 곳곳에 나온 인터뷰 기사에서 자신의 뜻과 달리 곡해해 해석한 부분, 즉 미화가 지나친 감이 많아 너무 화가 났다고 한다. 여성신문과의 인터뷰도 한참을 망설여 기자의 속을 태웠다. 다른 언론과 차별화된 얘기를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서다.

“난 지극히 상식적이고 평범한 사람이에요. 화낼 때도 있고 짜증 낼 때도 물론 있죠. 실제 내 삶이 방송같겠어요? 집에 가면 말에 지쳐 거의 말문을 닫고 사는데? 그래서, 나를 인터뷰한 기자가 때론 나를 잘 봐주는 게 아니라 (너무 나 같지 않게 잘 써줘서)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나 있지 않나 생각할 정도였죠.(웃음)” 

40여 년 전 맺어진 변종하(1926~2000) 화백과의 깊은 인연도 이런 남다른 솔직함 덕분이었다. 방송에 출연한 변 화백의 작품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직설적 답변을 한 후로 기분이 나면 소주 한 잔 걸치고 옛 중앙청 뒤에 있던 변 화백의 작업실에 들러 격의 없이 작품을 논하는 사이가 됐다. “이거 몇 점이라도 가지고 가라”고 강권하는 변 화백에게 그는 “형님, 잘 알지도 못하는 그림을 왜 가져가요?”라고 항변(?)했고, 그러면 변 화백은 “내가 유명하지 않아 네가 날 무시하는구나”라고 반격하곤 했다고 한다.

 

백 프로 픽션인 다큐멘터리, 늘 감탄하며 즐겨 봐

이런 그가 가장 즐겨보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다.

“다큐는 픽션이 거의 안 들어가 있어 아주 정직하죠.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이 제작한 다큐를 보면 시청자에겐 고작 1시간 남짓이지만 때론 수백 명이 한 장면을 10년에 걸쳐 찍은 경우도 있어요. 그만큼 장면 하나를 촬영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에 어떻게 저걸 다 찍었나 감탄하곤 하죠.

일전에 미국의 거대 항공모함을 다룬 다큐를 봤는데, 한꺼번에 5000~6000명이 승선하는 규모 속에서 6시간마다 식사가 나오니 하루에 2만4000끼가 제공되고, 그중 달걀과 스테이크만 해도 2만4000개가 한꺼번에 없어진다는 것을 상상하니 재미있더라고요. 여기에 쓰레기 처리라든지 세탁 과정까지 더해 생각해보니 참 신기하더군요. 이런 항공모함을 발명해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시청자로서 저절로 호기심이 일죠.

나라면 어떻게 이런 것을 기획하고 찍을까 감정이입을 하다보면 몰입하게 되죠. 어쨌든 다큐멘터리는 하루아침에 속성으로 이루어지는 프로가 아니기에 존경스러워요.”

그의 화법을 두고 한 원로 언론인은 “그의 말엔 격조와 품격이 있다”고 평한 바 있다. 마침 한글날이 다가오기에 우리말의 격조와 품격에 대해 물어보았다. 역시 그는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물론 타고나는 것도 있겠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말이란 그 사람의 인품과 경력을 대변한다는 거죠.

대학교수의 말이면 품격이 있고, 저 시골 장터에서 물건 파는 아주머니의 말이면 품격이 없다, 이렇게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품격 있는 말은 만들어져 나온 얘기,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걸어온 길과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거죠. 알고 있는 어휘를 총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고 자연스러우며 믿음을 주는 말을 하는 겁니다.

가령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이 시중 농담을 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김 추기경의 말이 품격이 없다고 할 수 있겠어요? 또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이 고상한 말만 한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그 정치인의 말에 품격이 있겠어요? 인간적인 면과 신뢰가 결여된 말의 품격이란 있을 수 없죠.”

그는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 ‘11시에 만납시다’ 등 KBS의 간판 인터뷰 프로그램을 맡았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들의 진심을 끌어내는 노하우, 늘 궁금한 부분이다. 그의 노하우는 간단했다 “열심히 들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이 사람처럼 내 말을 열심히 듣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고 상대방이 느낄 정도가 돼야죠. 이런 믿음은 단순히 열심히 듣는 척하는 것으론 절대 못 줍니다. 육감을 동원해 전력투구해야 하고, 상대방도 그걸 느끼게 되면 물어보지 않은 말까지 해주곤 하죠. 진행자가 잠시라도 잡념을 갖는 순간 상대방도 그걸 느끼죠. 또 시청자들도 진행자의 말이 스스로 생각해 한 말인지, 남이 써준 원고에 따라 그저 읽는 것인지 다 알고 있죠. 그래서 육감이 무섭다는 사실을 종종 일하면서 실감하곤 합니다.”

돌발 질문은 때론 의외의 특종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도 그런 유혹에 빠져봤을까.

“사회에선 아무리 거물이라도 방송에선 아마추어, 긴장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 않겠다는 질문이 튀어나오면 당연히 당황하게 마련이죠. 그래서 내 방식은 가능하면 작가들이 미리 사전 인터뷰해 작성한 질문에 따라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특종 내겠다고 남이 진정 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억지로 강요할 순 없어요. 무엇보다 상대방은 내 프로에 초대된 손님 아닌가요.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하기 전엔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죠. 질문을 하기 전 상대방을 설득해 진심 어린 동의를 얻어내야 합니다. 안 그러면 프로 진행 중에 상대방이 벌떡 일어나 나갈 사태까지 예상하고 대비해야 될 게 아니겠어요.

돌발성을 재미로 삼아 튀려고 하면 오래 못갈 것이라는 게 내 지론입니다.”

 

“상대방은 초대된 내 손님”… 특종 유혹에 빠져 돌발 질문한 적 없어

그는 미국의 전설적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1916~2009)의 진행 방식을 생각하면 감탄하곤 한다. 우리 방송계에선 요원한 일이지만.

“분초를 다투는 긴박함 속에서 뉴스 선택의 절대적 결정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일이죠. 크롱카이트는 자신의 사무실이 곧 스튜디오였다고 해요. 책상 앞 스위치를 누르면 바로 자기 앞으로 카메라가 들어와 기존에 나가던 프로를 중단하고 자신이 진행하는 뉴스가 시작됐다니, 방송국으로부터 무한 신뢰와 권한을 받은 셈이죠. 그는 댈러스에서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정규 방송을 모두 중단시키고 4시간 생방송을 진행했고, 이후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이 총탄에 맞았을 때도 역시 정규 방송을 중단시키고 이를 생방송했죠. 상업방송국이라 모든 프로그램에 많게는 몇 백만 달러짜리 스폰서가 붙어 있었고, 방송국에 막대한 손실을 끼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랬죠. 뉴스 밸류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이 없다면, 또 이를 경영진에서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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