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40이 가까운데도 남자직원들은 아직도 나
에게‘미스 박’이라고 부른다.”
“추운 겨울에 치마를 입고 벌벌 떨어야 하는 현실이 너
무 싫다.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양말은 교칙위반이 된다.
여학생도 바지입게 해주세요. 우리도 겨울엔 춥단 말이
에요.”
“남편에게 ‘돈도 못버는 주제에’라는 소리를 듣고 나
는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죽고 싶을 정도로 비참
했다.”
한국여성민우회(상임대표 정강자)가 벌이고 있는 ‘나
의 여성차별 드러내기’캠페인에 참여한 여성들의 체험
기록들. 이젠 성차별과 관련한 법과 제도는 제법 갖춰졌
다고 인정받고 있는데도, 일반 여성들의 실질적인 평등
체감도는 여전히 얼어 있는 모양이다. 가정, 대중매체,
직장, 학교, 공공기관 등 영역별로 묶은 차별사례모음난
에 빽빽히 적힌 여성들의 체험들은 하나같이 절절하다.
민우회가 5월 한달 동안 전국적으로 벌인 차별사례 조
사엔 총4백29명이 참여, 총2천39건의 차별사례를 고발했
다. 민우회는 기록된 사례들을 종합분석해 ‘20세기 버
려야할 여성차별 열한가지’를 선택했고, 이 리스트를
앞으로 7월 한달 동안 대대적으로 공표한다는 계획.
“여자앵커는 들러리, 이 관계는 왜 안 바뀌나요”
영역별로 보면 여성들이 차별을 가장 많이 느낀 곳은
역시 ‘가정내’에서였다. 전체 사례중에서 총550건
(22%). 가정내 차별 중에서 가장 많은 불만이 나온 것은
명절, 제사상의 차별(131건, 23.8%)이었다. 양육상의 차
별(23.5%), 여아낙태 아들타령(11.3%), 가사노동 전담
(8.2%), 아내 하대, 무시, 구타(7.6%), 호주제(6.2%), 친정
차별(4.9%), 결혼, 장례상의 차별(4.4%) 이 그 뒤를 따른
다.
가정 다음으로 차별사례가 많은 영역은 ‘대중매체’였
다. 광고(29.2%)와 드라마 영화(20.8%)가 1·2위를 차지.
여기서 방송진행자의 불평등한 관계(17%)가 성차별 보
도(12.3%)보다 더 많이 지적된 것은 다소 눈에 띄는 대
목. 여성들은 이제 ‘성차별적인 기사’보다 ‘방송진행
자의 평등하지 못한 관계’에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다는 증거다.
‘직장내’차별 유형에는 채용과 해고, 임금, 호봉, 업무
배치, 성희롱의 경우 보다 ‘커피, 카피, 심부름’을 불
만으로 호소하는 사례가 더 많아 눈길을 끈다. “회사에
선 여직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여자에게 시킨다. 사소한 잔심부름 일체도 물론이
다. 하지만 함께 입사한 남자 동기들에게는 안 시키는
일이다”
‘공공장소’에서의 차별유형엔‘도로상의 성차별’이
47.1%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말하자면 운전을 하는 여성
들이 받는 모멸감이다. “길이 막혀 다들 차들이 움직이
질 못하고 있는데 버스기사가 엄마를 보고는 눈을 부릅
뜨고 ‘집에서 애나 보지. 왜 길바닥에 나다녀’하며 반
말을 했다. 모든 교통정체가 우리 엄마 탓인양 말이다”
20년이 넘는 운전경력인 어머니를 둔 딸의 고백.
남자는 전부 ‘선생님’이고 여자는 무조건 ‘아줌마’
라니
여자이기 때문에 ‘생활관습상의 터부와 금기’도 빈번
했다. “MT 다녀와서 집근처 한 식당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 주인은 대뜸 나가라고 소릴 질렀다. 밖에 아침식사
된다고 해서 들어왔다고 했더니, 새벽부터 여자손님은
안받는다는게 아닌가. 정말 기가 막혔다.” “새벽에 서
울에 올라갈 일이 있어 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했
다. 몇대의 택시가 세워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심하지 않지만, 그때 태워준 기사 아저씨께 고맙
다고 인사할 정도였다. 택시 기사들 사이에 첫손님이 여
자이면 그날은 재수가 없단다. 그래서 피한단다. 이런 황
당함이...”
‘신용상의 성차별’도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
타났다. 대출, 신용카드, 부동산계약 등에서 성차별을 체
험한 여성들이 수두룩했다. 백화점 카드발급때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한 경우라든지, 10년간 거래를 해온
은행에 전세자금이 필요해서 대출신청을 했는데 여자라
안 된다고 거절한 경우, 마지막 도로주행시험만 남겨놓
고 미리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여성에게 남자에겐 조건을
달지 않으면서 여성의 경우 면허증이 없으면 안 된다며
차를 팔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경우 등이 대표적인 사례.
‘관공서’에서의 차별도 무시못한다. 동사무소에서 서
류를 신청하러 갔다가 불쾌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는 한
여성은 직원들이 남자에게는 이름을 불러주면서 자신의
경우 “아줌마 여기 나왔어요”라며 짜증을 부리더라는
것. 또 한 여교수는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50대 남자가
운행하던 트럭과 접촉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인근 파출소
에 갔는데 파출소 순경이 남자운전사에게는 “선생님”
이라고 부르더니 진짜 선생인 자신에게는 “아줌마”라
고 했다가 신원조사 과정이 끝난 후 신분이 밝혀지자 그
제서야 다시 “교수님”이라고 칭했다고 분개했다.
한편, 이런 사례를 토대로 민우회는 영역별 빈도수와
사회적 비중, 중요도 등을 고려해 20세기 버려야할 ‘생
활 속의 체험 성차별 열한가지’를 선정했다. 1위는 명
절, 제사상의 성차별, 2위는 양육상의 성차별, 3위 학교
직장 공공장소에서의 성희롱 등이다.(위 사진 참조) 민우
회는 이 열한가지 차별사례를 지점토 인형으로 제작해
캡슐속에 넣어, 7월3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20세기 차별버리기 21세기 평등세우기’여성축제에서
땅속에 묻었다. 그리고 그 캡슐위에 ‘21세기 평등나
무’를 심었다.
'최진숙 기자 jinschoi@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