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면서 연애하기란 쉽지 않다. 시즌에는 ‘합숙소-경기장-훈련장’을 오가는 스케줄이 평일과 주말 내내 계속되는 경우가 많고, 시즌이 아닐 때도 꾸준히 몸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 훈련 등으로 항상 바쁘게 생활한다. 나 역시 그랬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선수·감독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연애’는 그야말로 ‘사치’였다.
그런 내게 그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당시 ‘기가 세고, 과격하다’는 시선을 받고 있던 나에게 꾸준히 호감을 보여왔다.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겪게 되면 누구나 그러듯 처음에는 경기력에 지장을 받을까 불안해하며 연애를 시작했다. 나는 일본에서, 그는 한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연애는 자연스레 ‘장거리 연애’가 됐다. 그렇게 전화기를 붙잡고 연애하기를 2년 반이 지나 우린 주위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다.
남들은 ‘현해탄을 오가는 스포츠 스타 커플 탄생’이라며 부러워했지만, 우리에게 결혼은 특별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하나가 됐음은 분명했지만 신혼살림을 따로 차리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이 흔히 누린다는 ‘깨 쏟아지는 신혼’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신혼은 괴로웠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나는 핸드볼에 더욱 매진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시드니올림픽이 열린 2000년 딸 세민이가 들어섰다. 문득 겁이 났다. 그와 같이 살지도 않는데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다. 그와 나는 체육계에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는 중이었고, 서로의 일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따로 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세민이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나와 살게 됐다.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남들은 뭐든지 해내고 마는 내게 “대단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힘든 세월을 보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 몸이 아플 때 의지할 곳이 없었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 외로움을 말할 수 없었다.
그 역시 나를 챙기지 않았다. 2005년부터는 나와 세민이를 찾아오는 횟수까지 줄었다. 특히 2007년은 내 생애 최악의 한 해였다. 그가 취미생활과 파친코, 골프에 빠지면서 사이가 서먹해질 정도가 됐다. 세민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 손이 덜 갈 거라 믿었건만 그렇지 않았다. 당시 너무 힘들어 세민이와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내가 일본에서 일궈놓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위기가 올 때마다 ‘핸드볼’에 집중하며 고비를 풀어나갔던 나는 그때도 핸드볼과 함께하며 힘을 냈다.
그 즈음이었다. 때마침 한국에서 감독직 제의가 들어왔다. 오랜 외국 생활에 지친 나는 망설임 없이 한국행을 택했다. 기쁨도 잠시, 나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열심히 세민이를 키웠건만, 이중생활이라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배신감도 들었다. 오로지 남편과 딸 세민을 바라보며 우울증도 극복하고 한국까지 달려왔는데…. 용서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남은 삶도 중요하다는 생각과 세민이를 위해 그와 나는 합의이혼했다. 내 생애 첫 연애는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나는 현재 중학교 1학년이 된 세민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자 ‘돌싱’(돌아온 싱글)이다. 그리고 코트와 방송국을 누비며 일하는 ‘워킹맘’이다. 가끔 ‘나도 어떤 누군가에게 여자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은 있지만 ‘돌싱 워킹맘’의 연애는 조심스럽다. 세민이는 “엄마, 좋은 남자 만나세요”라고 말하는 착한 딸이지만 새삼 ‘이번에도 실패할까?’ 걱정이 앞선다. 그럼에도 나는 연애하고 싶다. 이런 마음은 우리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선수들에게 연애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