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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성/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얼마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갔던 외국의 한 도시에서 우연히 우

리과 선배분을 만났다. 마침 국제기구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따라나

선 우리 과 졸업생 여학생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고국을 떠

나 먼 곳에서 동창을 만난 반가움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 ‘남자’

선배분의 표정과 말씀이 못내 개운치 않았다. 여자 교수가 우리 과

에 있었는지 몰랐다고 하며 지은 씁쓸한 표정과, 최근 여학생이 이

렇게 많아졌냐면서 내비친 일종의 실망감 때문이었다. 여학생이 감

히 들어오지 못하고 여교수는 물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과

의 위상이 심히 낮아졌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씁쓸함과 실망감일

것이었다. 어느 사립대학의 총장님은 최근 그 대학에 여학생 수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요지의 발언을 공개 석상에서 했다

고 하니, 그 정도의 감정 표현을 숨기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왜 여학생과 여교수가 많으면 학과와 대학의 위상이 낮아지는 것일

까. 물론 이것은 질문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여학생, 여교수가 많은

것과 대학의 위상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당연한

상식이다. 우리 대학의 경우만 보더라도 여학생 수가 가장 많이 늘

어난 과는 소위 커트라인이 가장 높다는 곳이고, 여교수가 비교적

드문드문 눈에 띄는 한 단과대학에서 여교수가 가장 많은 과 역시

수능성적이 가장 높은 학생들이 몰리는 곳이다. 여학생 비율이 자꾸

만 높아지고 있는 어느 사립대학의 줏가는 오히려 점점 올라가고 있

다. 그렇다면 왜 남자들은 실제로 아무 근거도 없이 여자가 많아지

면 대학의 위상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마도 가장 그럴듯

하게 드는 이유는, 여학생은 졸업 후 사회진출이 약해서 동창조직도

약하다는 고정관념일 것이다. 졸업후 사회진출이 약하다면 그것은

사회적 성차별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남녀학생들 간에 아무

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여학생이 더 우수한 경우

가 많다가, 대학에 들어와 여학생들이 사회참여의 기회를 잡지 못하

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묻지 않고, 그것 때문에 학과와 대학의 ‘여

성화’를 경계한다면 그것은 차별의 악순환에 가담하는 것이다. 문

제는 그것이 경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막을 방안

이 적극적으로 시도될 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차별의 악순환이 새

롭게 생산되는 것이다.

여자들의 교수 취업이 힘든 것은 오히려 고전적인 경우이다. 여교

수의 비율을 높이라는 요구나, 구색 맞추기식의 한두명 여교수의 채

용 양태에 대한 비판이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

다. 그에 비해 학생 선발에 있어서의 성차별은 미처 관심이 가지 않

은데다, 은밀히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우수한 여학생이 합격선 상

위를 모조리 차지할 것이 두려워 남학생 쿼터를 정해 놓은 과도 적

지 않다는데 우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부당하게,

아무 정당한 이유도 없이 떨어지는 여학생의 목소리는 지금껏 들어

보지 못했다. 여학생이 없는 학과에 여학생 쿼터제가 실시되고 있다

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와 같은 쿼터제가 공식적, 비공식적으

로, 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조심해서 보면

찾아낼 수 있다. 학교장 추천 입학 전형에서 여학생이 유리하니 주

의해서 결정하라는 말이 조심성없이 떠돌아 다닌다. 완전히 객관화

된 시험 성적 외의 주관적 평가에 성차별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길도 없다. 이제 점차 대학 입학 전형에 주관적 평가의

비율이 높아질 예정이고 보면, 이러한 우려는 심각해진다.

우리 사회에 공정한 절차로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대학 입시에조차 성차별이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무심해서는 안될 것이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적당히 어우러

져 활기있고 동기부여가 충만한 대학, 졸업생들이 모두 함께 사회에

기여하면서 모교의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대학의 상을 사람들이

가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에 부심해야 할 것이다. 대학에

가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송구한 마음을 금치 못하면서도, 우

리 사회에 견고한 울타리를 치고 있는 성차별의 악순환이 또 한곳에

서 생겨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이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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