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아, 고영욱, 고려대 교수... 피해자 유인 쉬운 위치 악용”
개정된 성폭력 특례법, 위계·위력 협박 살펴보는 추세로 변화
유명인 혹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성범죄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권력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피해자를 두 번 울린다. 가해자의 우월적 지위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선뜻 신고할 수 없게 하는 무언의 협박, 보이지 않는 위력으로 작용한다.
최근 배우 차승원(43)의 아들 차노아(24)가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으로 피소됐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 따르면 지난 2일 고등학생 A양(19)은 차노아가 자신을 오피스텔에 감금한 후 성폭행했다며 차씨를 고소했다. A양의 법률대리인 측은 “차노아가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할아버지 소유의 별장에서 A양을 감금하고 수차례 성폭행과 협박을 일삼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노아는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노아는 지난 3월 대마초 흡연 혐의로 팀에서 방출되기 전까지 프로게임단 LG-IM 소속의 리그오브레전드(LOL)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다. 차승원을 닮은 외모로 개인 팬카페가 만들어질 정도로 여성 팬들의 인기를 끌었다. 이번 차노아 성폭행 사건은 유명 배우의 아들이자 얼굴이 알려진 프로게이머가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라는 점에서 위력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성범죄는 캠퍼스 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지난 4일 고려대에서 교수가 여제자를 성추행한 일이 발생했다. 고려대 측에 따르면 학교 측은 지난 6월 보건과학대 소속 A교수가 진로상담을 빙자해 한 여학생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사실을 파악하고 양성평등센터를 통해 조사를 시작했다.
지난 2011년에는 서울 소재 모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게임을 시켜 논란을 빚었다. 당시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막장 OT’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상에 게재되며 논란이 일었고 해당 학교 총학생회가 사과문을 게시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대학에 막 들어온 새내기들이 선배들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항의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권력 관계 내에서 벌어진 성희롱으로 볼 수 있다.
2010년 취업전문 포털사이트 ‘커리어’가 대학생 76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활 중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했다’고 답한 여성 응답자는 33.3%였다. 이 중 78.0%는 주된 가해자(복수응답)는 ‘선배’라고 답했다. 대응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6.5%가 ‘그냥 참고 넘겼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 ‘가해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66.9%)가 압도적이었다.
연예계는 상황이 더 심각하고, 지저분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고영욱의 미성년자 성폭행 및 성추행 사건이 있다. 그룹 ‘룰라’ 출신 고영욱은 2010년 연예인을 시켜주겠다고 A양에게 접근해 함께 술을 마시고 성폭행, 성추행한 혐의와 B양(당시 17세)을 강제 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로 인해 조사를 받고 있던 중에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길가에서 이모 양(13)에게 가수 프로듀서라며 접근, 차량에 태운 뒤 이양의 허벅지 등을 만져 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고영욱은 총 3명의 여성을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 신상공개 및 고지 7년, 전자발찌 착용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고영욱은 이에 항소해 오는 8월 28일 4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연예지망생들의 순수한 꿈을 우월적 지위로 짓밟는 추악한 사례도 있다. 지난 21일 미성년 연예지망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연예기획사 대표가 징역 6년이 확정됐다. 장씨는 2010년 1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회사 건물 등에서 10대 미성년자 등 소속사 연습생 3명을 반복적으로 성폭행하고 강제추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6년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정보공개 5년을 선고받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유명인들의 성범죄에 대해 “일단 피해자들을 유인하기 쉽다. 본인의 지위를 이용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못하게 위력을 발휘하거나 합의를 받아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교수의 성추행 건에 대해서는 “채팅을 통해서 혹은 길 가던 사람을 유인해서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의 경우와는 남용할 수 있는 권력의 종류가 다르다. 단순 성추행이라 법률상 처벌 수위는 높지 않겠지만 사제지간을 악용한 점, 존경받아야할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한 점에서 도덕적으로 더욱 비난받을만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 성폭력 사건은 교육 기관에서 의지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에야 비로소 문제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기관의 명예 때문에 범죄 사실을 감춰온 것이 현실”이라며 피해자들이 이중고를 겪어온 상황을 꼬집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지은정 활동가는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에 대해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물리적 폭행이 없더라도 피해자들은 위계만으로도 위협을 느낄 수 있다. 최근 개정된 성폭력 특례법에서 위계·위력 부분을 신경 쓰고 있고 맥락상 협박 위협이 있었는지 살펴보려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