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과 짐머만의 어머니, 모두 여성인 배심원단까지
남성 대 남성 재판 과정에서 재판 이끌어간 것은 여성들
지난해 2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17세의 흑인 소년 트레이번 마틴은 편의점에서 나와 집으로 가던 중 자신을 따라오던 마을 자경단장 조지 짐머만(당시 29세)과 시비가 붙었고 짐머만의 총격으로 숨을 거뒀다. 짐머만은 마틴을 범죄자로 의심해 뒤를 쫓았고 마틴에게 위협을 느껴 발포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마틴은 비무장 상태였고 전과도 없었기에 짐머만의 주장에 의문이 제기됐다. 하지만 1년5개월 만인 지난 7월 13일, 플로리다주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짐머만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해 2급살인과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평결을 내렸다.
평결에 즈음해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났고 평결 이후 급속도로 확산됐다. 여성 6명으로 이뤄진 배심원 중 5명이 백인, 1명이 히스패닉이고 흑인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흑백 간 인종갈등이 심화됐고 이렇게 의심스러운 평결을 가능하게 한 ‘정당방위법’에 대한 재고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미국 페미니스트 진영도 이번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여성언론들은 매일 짐머만과 정당방위법을 비판하는 관련 뉴스와 칼럼을 쏟아냈다. 대부분이 인종차별 문제에 집중한 가운데 “이번 재판은 사실 여성 문제를 보여줬다”고 주장하는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인터넷 여성 뉴스 ‘페미니스트 와이어’에 게재된 칼럼에서 갈등 분석과 해결 전공의 박사과정 소속인 이 필자는 44일 동안 지속된 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인이 모두 백인 남성이고 마틴 대 짐머만이라는 남성 대 남성의 사건이지만 재판 과정을 이끌어간 것은 여성들이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주 재판의 주인공은 짐머만의 어머니인 글래디스 짐머만이었다. 필자는 “인종차별주의자 아들을 낳아 기른 것을 비난하고 싶었고 글래디스 짐머만에게서 아들이 가진 오만과 권위의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재판정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 충격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마틴의 어머니처럼 그 또한 재판 도중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공격을 받아들였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여성은 배심원이다. 모두 여성으로 이뤄졌던 배심원단은 이번 재판의 화제였고 여성 배심원으로 인해 흑인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인종차별적인 구성의 배심원단이라는 점은 묻혀버렸다. 마틴을 지지하는 많은 여성은 배심원이 여성이라는 점에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이들이 아들을 잃은 마틴의 어머니에게 자매애를 가지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들은 가해자인 짐머만에게 자유를 주기로 결정했다.
이번 재판의 결정적 주인공은 바로 배심원 여성들이었다. 필자는 "이 사건은 남성들에 대한 것이었지만 재판 과정에서 가장 긴 여운과 충격을 준 것은 여성들이었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