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좌 완등 논란 후 명예 회복 중인 산악인 오은선

‘세계 최초 여성 14좌 완등’ 기록에

‘논쟁 중’이란 주홍글씨 남아

2011년 4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69·이탈리아)는 여성 산악인들을 다룬 신간을 통해 “나는 오은선의 진실함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며 “오은선이 굳고 확실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그는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될 것”이란 의견을 밝혔다. 이어서 지난해 말엔 산악저널리스트인 신영철 ‘사람과 산’ 편집주간이 50여 년간 현지에서 히말라야 등반사를 기록,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엘리자베스 홀리(90)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인터뷰에서 홀리 여사는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오은선이 자신의 등정을 믿듯 나도 100% 그의 등정을 믿는다”는 입장을 표했다. 이어 “오은선은 불쌍한 여자다. 믿을 수 없는 위업을 이뤄냈으나 제대로 평가를 받기도 전에 상처를 입었다”며 의혹 제기의 시작은 한국인들이었으나 구체적 증거가 없기에 이를 무시했다가 오씨의 경쟁자로 이해 당사자인 에두르네 파사반(스페인)이 14좌 마지막 봉 시샤팡마를 끝내고 찾아와 자신을 여성 최초의 14좌 완등자로 기록을 고쳐달라고 요구해 오씨의 완등 기록에 논쟁 중이란 부가 표현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체육교육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준비하고 강연을 다니는 한편 일반인들을 이끌고 국내 명산을 순례하면서 최근엔 서울시로부터 희망서울 홍보대사로 위촉돼 또다시 주목받고 있는 오씨를 만났다.

-근황이 궁금하다.

“(역설적으로)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해주셔서 오히려 힘을 내고 있다. 요즘은 거의 매주 국내에 있는 ‘낮은’ 산들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니며 즐기고 있다. 예전엔 하루 코스가 아닌 몇 날 며칠 코스로 텐트까지 넣은 30~40㎏의 배낭을 지고 대화를 나눌 여유도 없이 산을 오르곤 했는데, 지금은 한결 가벼워진 배낭에 마음까지 여유로워진다. 지난해 5월엔 한국여성산악회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알래스카주) 등정을 다녀왔다. 원정대 5명 모두 무사히 무산소 등정을 했고, 내 컨디션도 예전과 별반 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의미 있는 등정이었다. 한편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주제로 대학원 여가레크리에이션학과에서 석사논문을 쓰는 중이다.”

“명예에 대해선, 다는 아니어도 절반은 회복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그 상처는 영원히 갈 것이다. 함께 등정했던 셰르파가 의혹을 제기하기 전에 파사반 등 이해 당사자들에게 흥정했다는 말도 들리고, 제기된 것들이 하나도 안 맞는 얘기들이 많지만… 여기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기를 빼앗기기 싫어 어느 순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다 내려놓기로 했다. 앞으로의 삶이 중요하다고 자신을 추스르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다. 내가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처음 산에 갔을 때의 초심을 하나하나 기억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기록 때문이 아니라 정말 행복하고 좋아서 산을 쫓아다녔기에 나를 둘러싼 논란이 쓸데없이 느껴졌다. 어쨌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법. 손가락, 발가락, 손톱 하나 다치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서 14좌 완등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나를 공격한 이들에 대해선 그저 ‘그분들이 다닌 산과 내가 다닌 산이 다르구나’ 정도로 정리했다.”

에베레스트 무산소로 재도전

계획도 세웠었다

-대응이 소극적이었다는 말도 있었다.

“대한산악인연맹 등 국내 산악계와는 부질없는 분란만 일어날 것 같아 말을 아꼈고 또 파사반과 어떻게든 만나 대화를 해보려 애썼지만 지금까지도 파사반은 이런저런 핑계로 나를 피하고 있다. 논란 직후 파사반에게 이메일로 만남을 제의했고, 2010년 말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산악정상회의(IMS)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회의 사흘 전 파사반이 미국 출장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유력 매체들도 우리의 만남에 주목하고 있었고, 자신의 세계 기록이 달린 일인데 그런 이유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납득이 안 됐다. 2010년부터 이 문제로 IMS에 참가해 나를 계속 취재했던 (파사반과 같은 국적의) 스페인 기자가 지난해 회의 때는 나를 만나자마자 ‘이젠 난 오은선, 당신을 믿기로 했다’고 말하더라. 나와 파사반의 논쟁은 국제 산악계에서 더 이상 이슈가 아니다. 2011년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부르너가 14좌를 모두 무산소로 완등해 그게 핫 이슈다. 나도 논란에 휩싸이지만 않았더라면 내 14좌 완등 중 무산소 완등이 아닌 에베레스트와 K2를 꼭 무산소로 재도전할 계획이었다.”

-개인에겐 가혹한 얘기지만, 차라리 칸첸중가를 다시 다녀오지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주변에서 아주 쉽게 ‘한번 갔다 오지, 다시 가면 되잖아, (기록) 깨끗하게 하고 와’라고들 했지만, 마음속으로도 ‘그렇지, 그럼 되지’라고도 생각했지만 결국 재도전 안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전까지의 등정 도전이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한 것이었는데, 논란 후 칸첸중가를 다시 간다면 그때는 독을 품고 가는 길 아니겠는가. 그런 상태에서 그 산에서 생존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죽고 나면 그 기록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단, 나를 응원해준 분들께는 지금까지도 너무나 미안하다. 그 많은 빚을 평생 다 어떻게 갚나.”

정상 30분 앞두고도 돌아설 용기

있어야 새 기록에 도전할 수 있어

-한국 산악인들이 세계도 놀랄 만큼 지속적으로 14좌 완등 기록을 내면서도 한편에선 끊임없이 희생자가 나온다.

“많은 이들이 영웅주의, 상업주의를 지적한다. 내 경우, 성공을 담보로 스폰서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실패할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분명히 말해왔다. 어떻게 보면 스폰서와 나 그리고 산, 이렇게 3자의 호흡이 잘 맞아 이뤄낸 성과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꼭 정상에 서고야 말리라는 야심 탓에 정작 자기자신을 철저히 체크 못하는 데서 비극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욕심의 한도는 등정을 하는 자신만이 정확히 알 수 있다. 끊임없는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 나도 늘 등정 떠나기 전마다 ‘욕심 부리지 말자, 살아서 돌아오자’ 다짐하곤 했다. 그래서 2006년 초우봉 정상 30분을 남겨두고 돌아서는 일도 감행했다. 당시 동행했던 셰르파가 ‘서티 미니트!(Thirty minutes)’를 외치며 계속 갈 것을 독려했지만, 난 죽느냐 사느냐를 판단해야 했다. 머리가 너무나 시려 이 상태로 정상에 갔다가 내려오면 뇌에 문제가 생겨 정상인 생활을 못할 것이라 직감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결정이 옳았다고 확신한다. 내가 기록을 계속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때 내가 한 일이 가장 정확한 최선의 결정이었어’라는 스스로의 독려와 자존감 덕분일 것이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특별히 산악인으로서 ‘여성’ 기록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지인의 “모든 스포츠가 남녀가 구분되지만, 산은 남자고 여자고 어린애고 어른이고 있고 없고 봐주는 게 없다. 누구나 다 자기 발로 걸어 올라가 자기 발로 내려와야 한다는 점에서 완벽히 평등하다”는 말을 인용하며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칸첸중가 논란은 내 인생의 바닥을 친 사건이다. 순간적으로 나락까지 떨어져 봤지만 한편으론 내 삶에서 더 이상 최악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제부터는 (‘14좌 중 8개 봉우리를 15개월간 오른 사람은 남녀 통틀어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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