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먹는 것에 대해 원산지를 따진다. 공정무역으로 나온 커피를 사기도 한다.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라는 단어도 많이 얘기된다. 그렇다면 전기에 대해서는 왜 원산지를 따지지 않을까? 전기 소비를 착하게, 윤리적으로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운 곳이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전기의 대부분은 바닷가에 위치한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온다. 원전은 사고가 나면 국가 공동체가 붕괴되고, 수백 년 동안 땅이 오염되며, 수많은 어린이들이 방사능의 공격으로 질병을 앓게 되는 위험한 발전 방식이다. 그런 원전에서 나온 전기를 쓰는 것은 ‘착한 소비’가 될 수 없다. 석탄화력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가 다량으로 배출된다. 같은 화석연료라 하더라도 가스발전은 좀 낫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석탄의 절반 정도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발전 단계에서도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이들 문제는 지구와 한반도,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생명들에게 엄청난 짐이 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닷가에 거대한 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생산하면, 그 전기를 소비지까지 끌고 오기 위해 송전선로를 지어야 한다. 많은 전기를 보내려면 전압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765㎸, 345㎸라는 초고압 송전선로를 곳곳에 세운다. 이 송전선로들이 시골 마을들과 논밭, 산을 지나가게 되면서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은 갑자기 날벼락을 맞게 된다. 최근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경남 밀양의 765㎸ 송전선로 문제는 전형적인 사례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제발 살던 대로 살게만 해 달라’고 호소하지만, 정부나 한국전력은 이를 ‘님비’로 몰아붙이며 묵살한다. 보상금을 더 주겠다지만, 그것은 마을과 삶터를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얘기다. 작년 1월에는 억울함을 견디다 못한 농민이 분신하는 비극까지 있었다. 그리고 많은 어르신들이 다치고 쓰러졌다. 보건의료단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밀양의 송전선 경과지 주민들은 전쟁을 겪은 사람들보다도 더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한마디로 우리가 쓰는 전기는 시골 주민들의 눈물과 고통이 섞인 전기다. 사람들과 뭇 생명들의 목숨을 담보로 쓰는 전기다. 발전 단계에서도 그렇고, 송전 단계에서도 그렇고, 너무 많은 문제를 일으킨 후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전기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이런 전기는 안 쓰겠다’고 선택할 권리도 없다. 송전 그리고 소비자에게 전기를 전달하는 배전까지 모두 한전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주민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우리 마을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만 쓰겠다’고 결정하기도 한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얘기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전기에 대해 ‘먹는 것’만큼 생각하고 실천하면 된다. 밀양 주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자. 밀양의 진실은 동영상이나 각종 자료를 통해 많이 나와 있다.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전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생각을 하게 되면 변화가 가능하다.

실천하자. 나부터 전기 소비를 줄이고, 정부에 대해서는 발전·송전을 아우르는 전력 시스템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자. 우리나라 전체 전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 소비를 줄이면 초고압 송전선로도 필요없다. 그것을 위해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고, 전기를 많이 쓰는 대공장들은 자체 발전시설을 갖추게 하자. 그렇게 하면 70, 80 넘은 시골 어르신들이 전기톱과 포클레인을 몸으로 막는 비극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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